세계 최대 재즈 시장 중 한 곳인 도쿄에는 재즈가 넘친다. 집 앞 슈퍼, 대중적인 체인 커피숍부터 동네 치과 의원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을 본의 아니게 재즈를 접하게 된다.
이런 "생활 재즈"외에도 글로벌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 역시 부지런히 열린다. 신주쿠의 PIT INN 같은 소규모 라이브 카페와 재즈 바는 물론이고 NHK에서 주관하는 대 규모의 도쿄 재즈 페스티벌 (Tokyo Jazz Festival)도 매년 도쿄의 가을을 설레게 만들기도 한다.
마누라상과 나도 가끔 블루 노트 도쿄 Blue Note Tokyo, 도쿄 커튼 글럽 Cotton Club을 찾곤 한다. 그런데 이곳의 불편함은 테이블의 밀집도가 너무 높아(특히 블루노트) 옆 사람이 와인 넘기는 소리까지 들린다는 점이다. 코로나 이후로 좀 개선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닥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어제는 이런 좁음, 불편함이 걱정 없는 아름다운 야외 정원에서 열리는 재즈 콘서트를 찾아 편안하고 끈적한 재즈를 즐겼다. 게다가 맛난 와인까지 실~컷 마시고...
Garden Jazz Night with Takuya Kuroda Jazz Band
Co-hosted by Asia Society Japan and International House of Japan
아시안 소사이어티 재팬과 일본 국제 문화 교류 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번 공연의 밴드는 트럼펫 연주자 TAKUYA KURODA가 이끄는 타쿠야 쿠로다 재즈 밴드로 리더인 타쿠야 쿠로다는 블루 노트 뉴욕의 무대에도 오른 적이 있는 뮤지션이다. 나도 애플 뮤직에서 다운 받아 가끔 듣고 있기도 하다.
장소는 롯폰기에 위치한 인터네셔널 하우스 오브 재팬 International Haouse of Japan으로 200년 된 일본식 정원인 I-House Garden. 잘 관리된 잔디와 조경수들이 솔솔~ 품어내는 풀 향기가 재즈와 구수하게 어우러졌다. 작년 10월에 에가미 에츠의 스피치가 있어서 이곳을 찾고는 반년만에 다시 찾았는데 정원은 처음 나가보았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한잔하여 좀 둘러보았는데 정원 참 멋지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오늘의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밴드는 트럼펫, 색소폰, 키보드와 베이스로 이우어진 쿼텟 밴드로 일본인 3명과 미국인 1명으로 구성되었는데 도쿄 출신의 말괄량이 삐삐 머리를 한 베이스와, 뮤지션보다는 변호사스러운 얼굴의 고베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들은 꽤 젊은 아티스트들이다.
음악은 트럼펫과 키보드가 멜로디를 리드하는 퓨전 재즈.
트럼펫의 청량함이 쾌청한 하늘을 가로지르며 1시간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을 즐기다 문득 본태 뮤지엄에서 열린 재즈 콘서트가 생각이 났다. 당시 "여름의 흔적"이라는 타이틀로 김나형 트리오와 피아니스트 조윤성 씨를 초대한 콘서트였는데 2013년 공연 기획부터 홍보, 티켓 판매까지 징그럽게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니 살짝 심쿵해졌다. 그래도 티켓은 솔드 아웃, 공연은 아름다웠고 콘서트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당시의 나에게 조용한 박수를...
와인도 맛나서 입에 쪽쪽 달라붙는다. 프로방스에서 온 와인으로 Lumière Rosé 2019, Estandon인데 캐주얼하고 상쾌한것이 봄밤의 재즈와 잘 어울리는 맛이다.
물론 도쿄 알코올 부부는 각 1병씩 가뿐히 날려 주셨는데 마무리 입가심으로 레드와인 두 잔을 더 마시니 걸쭉한 재즈의 선율처럼 머리도 걸쭉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사인회와 포토 타임이 있었는데 나는 세션 중 가장 연주가 좋았다고 생각되는 신디사이저 연주자인 데이빗군과 사진 한 장.
다소 여성스럽고 수줍음 많은 데이빗군에게 모자랑 셔츠가 예쁘다는 말을 몇 번을 했다. 공연 끝난 아티스트에게 연주가 좋았다고 얘기를 했어야 하건만... 이놈의 �
재즈에~ 와인에~봄밤에~ 기분 좋게 취한 우리는 전에 봐두었던 아자부 근처의 노천카페서 2차를 위해 이동했으나 웬걸 월요일 휴무!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씩 사서 워킹 음주를 즐기며 걸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분위기를 대신해 배를 채우기로 하고 돈코츠 육수로 유명한 "요코하마 라멘"에 들러 술 취한 아내는 오츠마미 5종과 하이볼, 술 취한 남편은 돈코츠 라멘에 하이볼을 오늘 첫 식사인 양 씩씩하게 먹어주시고 (갈지자로) 집구석에 도착.
집에 와서는 입가심을 또 해야 한다며 레드와인을 한 병 까서 회를 거듭할수록 집중도가 떨어지는 "우리들의 블루스" 9회를 보고(물론 내용은 머리에 남아있지 않음) 긴 봄날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재즈 공연을 보러 간 것 같기도 하고, 술을 마시러 간 것 같기도 하고...
쾌청하고 감미로운 도쿄의 jazzy, boozy 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