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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inArt Nov 01. 2021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에서

와세다 대학교 하루키 무라카미 라이브러리  탐방 후기

도쿄로 이사 온 이후로 가끔 재미난 상상을 해보곤 한다.


하루키 아저씨를 만나기로 한 날은 화창한 가을의 어느 날이었으면 좋겠다.

선선한 가을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눈부신 햇살을 비집고 표류하는 상실의 낙엽이 보이는 그런 날.


그를 만나기로 한 날은 잘 다려진 양복보다는 그의 글을 닮은 편안한 청바지 차림이 좋겠다.

하라주쿠에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헐렁한 체크무늬 셔츠도 하나 걸쳐야겠다.


그를 만나기로 한 날은 특별히 이야깃거리를 준비하지 않아도 좋겠다.

요요기의 숲을 지나 기타 산도 역 北参道駅 근처의 또 하나의 재즈가 흐르는, 위스키의 성지라는 재즈바에서 그가 좋아하는 침묵을 안주 삼아 진한 몰트 스카치를 마셔야겠다.

물론, 발등은 재즈의 비트에 맞추어 댄스, 댄스, 댄스~

그래도 이건 꼭 물어야겠다. "라프로익이 간직하고 있는 그 특별함이란 소독약 냄새를 말씀하시는 거 맞죠?"


하루키상을 만난 날에는 꼭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의 약속을 받아내면 좋겠다.

어디선가 아주 작게 먼  북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날, 다시 만나기로...




 올 10월 1일 일반 관람객을 맞이하기 시작한 하루키 무라카미 라이브러리는 도쿄 와세다 대학 신주쿠 캠퍼스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탄생은 하루키의 명성에 걸맞게 큰 형님들이 모여 가능했는데, 와세다 출신의 세계 최대 의류 업체 회장인 유니클로의 야나이 타다시가 120억 원을 기부하고, 건축계의 거장인 쿠마 겐고가 자신이 가장 경외하는 문장가를 위해 설계를 담당하였으며 무라카미 본인은 소장하고 있던 수만 장의 레코드판과 소설의 초판본 등 귀중한 수백 권의 책들을 기증하였다. 역시 큰 형님들스럽다.


화창한 도쿄의 가을날 오후, 와세다 대학교를 찾았다. 한 달여를 기다려 설렘으로 찾은 하루키 무라카미 라이브러리를 기록해본다.



다소 긴 정식 명칭을 가진 The Waseda International House of Literature, The Haruki Murakami Library의 실제 표식을 보자.  경쾌한 흥분감이 가볍게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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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책장(Stairs Bookshelf) - 도서관의 입구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도서관 건물로 직접 골랐다는 The International House of Literature의 건물은 5층 높이로 면적이 그리 넓지 않은 아담한 건물이다. 이중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가 관람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는데 출입 방법은 지하 1층의 카페 쪽 입구를 통하는 방법과 지상 1층의 메인 입구로 들어가는 두 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 중 지하 1층의 입구로 들어가야 건축가 쿠마 켄고가 의도한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그는 美術手帳(비쥬츠 테쵸)와의 인터뷰에서 "경외하는 하루키 상의 책을 펼치면 일상에서 비일상의 세계로 공간 이동을 하는 느낌이 든다. 나도 하루키 라이브러리에 들어선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라며 하루키 도서관의 대표 공간에 관한 자신의 디자인 의도를 소개했다.

나도 거장 건축가의 하루키적인 발상을 느껴보기 위해 지하 1층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하루키 도서관의 입구이자 메인 공간인 이곳의 공식 명칭은 '계단 책장'이다.  명칭처럼 책장으로 둘러싸인 계단이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곳으로, 시작 지점부터 커다란 책장이 좌우로 배치돼있고 책장의 맨 윗부분은 같은 원목 소재로 된 부드러운 아치형 곡선으로 이어져 끊어짐 없는 하나의 구조물을 이루고 있다. 한편 밝은 톤의 단단한 원목  바닥은 벤치를 겸한 계단의 역할을 하고 있어 이곳의 전체를 보면 나무로 둘러싸인 통로처럼 보이기도 하고 계단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면 나무로 된 새장에 들어와 있는 듯 느껴진다.  좌우의 책장에는 하루키의 책을 비롯하여 실제 꺼내어 볼 수 있는 책들이 촘촘히 놓여있어 앉은 채로 책을 읽거나 쉬어갈 수도 있다.  전체 길이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지상 2층까지 연결되는 높은 천정을 하고 있으며 경사가 꽤 가파러서 나무로 만들어진 언덕을 올라가는 느낌이다.  

나도 잠시 이곳에 앉아 책장의 책을 하나 꺼내보며 공간 이동을 준비해본다.





갤러리 라운지(Gallery) - 하루키 책의 전시실

터널을 지나 1층의 예약 확인 데스크에서 입장 태그를 받고 오른쪽으로 돌면 갤러리 라운지가 나온다.  가장 먼저 시원하게 중앙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20미터는  돼 보이는 원목 책상이 눈에 띈다. 그리고 테이블을 기준으로 좌우에 책장을 배치하여 마치 3D 데칼코마니 작품을 보는듯한 공간이다.  오른쪽에는 하루키 책들의 초판본이 진열장 안으로 전시되어있으며 그 위로는 5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된 그의 책이 꽂혀 있는데 막강한  팬을 보유한 한국어 책들이 앞쪽에 여러 권 자리하고 있다.


한국어 책들


하루키 작품 중 가장 재미나게 읽은 먼 북소리


충격의 걸작 상실의 시대


하루키의 실제 서재를 촬영한 사진 작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댄스 댄스 댄스



모두 초판본이라는 귀한 책들을 보다가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양 사나이다" 그가 양가죽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쓴 채로 사각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다. 딱히 궁금했다기보다는 무언가 말을 시켜보고 싶어 "양 사나이, 주키타니 마을에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나요?"하고 물으니 "당신이 직접 가보지 그래?"라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하루키 작품 연대표


갤러리 라운지를 오른쪽으로 돌면 '의자 안에 앉다' 보다는 '들어간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커다란 의자들이 놓여있는데 사람들이 책 한 권씩 들고 들어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안쪽에서는 재즈의 선율이 발길을 유혹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조금만 참았다가 2층을 보고 마지막으로 관람을 하는 것이 좋다. 필을 조금 더 올려놓고 하루키가 직접 사용하던 LP판의 재즈를 듣는 다고나 할까.



2층 전시장(Exhibition Room) - 쿠마 겐고의 건축전




2층은 쿠마 켄고의 건축을 전시한 공간이다. 건축의 모형도와 설계 당시의 스케치, 실제 사용된 자재들과 건축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 특히 쿠마 켄고의 손이 거쳐 가기 전후의 사진들이 눈에 띄었는데 여고 괴담에서 나올법한 건물을 현재의 모습으로 바꾸어 논 것을 보니 건축의 힘이란 참 대단한듯하다.





한참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직원 한 분이 오셔서 이곳 건축과정의 주요 부분들은 하루키상과 쿠마 켄고상 그리고 야나이 타다시상 3명이 협의를 해서 결정이 되었다고 설명해주신다.  나도 궁금한 것이 있어 도서관 운영에 관해 잠시 간단한 대화를 나웠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호기심이 생겨 하루키상도 자주 오시는지 물어보니 이 분의 대답이 참 하루키적이다. "수십 번도 더 다녀가셨죠. 그래도 저희 같은 사람들은 실제로 만나 볼 수는 없었지만, 뭐~ 하루키상이 쉬다간 공기만을 느껴본다고나 할까"라며 손으로 냄새를 들이마시는 흉내까지 내신다. 하루키 도서관에서 근무하실 자격이 충분한 분이라 생각했다.

하루키 도서관에서의 자격이 충분한 직원분


2층에서 바라보이는 계단 책장의 상부




오디오룸(Audio Room) - 또 하나의 재즈가 흐르는 곳

이층을 둘러본 후 호기심을 꾹 누르고 지나왔던 오디오 룸으로 향했다. 열린 강화 유리문 사이로 또 하나의 재즈가 흐른다. 하루키가 기증한 수만 장의 LP레코드판을 전시하며 실제 음반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는데 실제 음반은 이십여 장 정도만 전시되어있고 주기적으로 교체한다고 한다. 오디오실의 음향 장비 및 세팅은  오디오 평론가이며 하루키상의 오디오 조언가로 잘 알려진 오노데라 코지가 맡았다고 하는데 오디오 문맹인 내가 들어도 뭔가 있어 보이는 소리다. 내가 들어갔을 때에는 MILES DAVIS의 Round About Midnight 앨범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루키가 재즈바를 운영할 당시 자주 찾아왔다던 일본인 아가씨와 미군 병사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으며 영감을 끌어내는 하루키 할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려보며, 보기만큼 느낌이 좋은 멋진 소파에 앉아서 잠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하루키의 서재(Author's Study) - 명칭만으로 설레는 곳

<우와~ 하루키의 서재를 들여다본다니!>

이곳은 사실 지하 1층의 계단 책상 옆에 위치해 있지만, 오디오 룸에서 하루키의 재즈를 듣고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좋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고 하루키 도서관을 하나하나 천천히 알아간다는 느낌이랄까.

대 스타가 되고 나서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아 그의 후속작만큼 궁금증을 자아내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서재가 재현되었다. 좁은 폭의 널찍한 직사각 원목 책상에 애플사의 데스크톱이 올려있고 책상 앞쪽에는 심플한 2인용 테이블과 1인용 의자 둘 그리고 3인용 의자 한 개가 놓여있다. 책상이 조금 높아서 무슨 접수 데스크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의자 깊숙이 들어앉아 약간의 인상을 쓴 채 애플 키보드를 두드리는 하루키를 잠시 상상해본다.


하루키 도서관을 다녀오니 왠지 뭔가 큰일을 하나 끝내고 나온 기분이다. 물론 거사를 치렀으니 축하주는 필수! 이날 저녁은 기분 좋게 3차까지 깊숙이 달렸다. 도쿄에서의 잊지 못할 하루다.


참~ 하루키상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마누라상 "같이 가주셔서 아리가또"







하루키 도서관의 관람은 현재 100% 예약제로 운영 중이며 올해의 예약은 완료된 상태. 향후, 코로나 상황 등

을 보아가며 예약 없이 운영할 계획이라고 함.


https://www.waseda.jp/culture/wi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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