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미술계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성공한 아티스트가 된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예비 화가들이 미대 졸업 후 변변한 개인전 한번 열어보지 못하고 그림 그리기를 접는다.
세상은 아티스트, 화가라는 직업에 그리 녹녹하지 않다.
가끔, 아니 꽤 자주 겸업 작가들의 작품을 접한다.
사라지지 않는 그림에의 열정을 가슴 한구석에 쑤셔 넣은 채 매일 아침 작업실을 대신해 직장으로 출근하는 이들의 작품에는 때론 살아가기라는 냄새가 배어 있어 좋다.
올해 1월, 이런 짙은 삶의 냄새가 붉게 응고된 작품과 마주쳤다.
Title: Meltism C #9
Artist: FUJISAKI RYOICHI
Year : 2021
Medium : resin, styrofoam, urethance coating
D 260 x W 110 x D 300 mm
후지사키 료이치 (Fujisaki Ryoichi) 그는 그리고 조각하고 비디오 아트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다.
또한 그는 무대나 작품 설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목수이며 무대 설치 기사이다.
Ryoichi Fujisaki 개인전
An Action from the Void
2021.01.12-01.30
갤러리 마루에이도 재팬
도쿄 롯폰기 잇초메의 한 갤러리 쇼윈도에서 붉게 빛나고 있는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강렬한 색과 묵직한 중량감으로 다가오는 이 조형물들은 기하학적 형태로 태동하여
녹아내리며 소멸되어가는 형상들을 표현하고 있는데
단단해 보이는 작품들의 소재는 다름 아닌 스티로폼이다.
이 멋진 작품들의 영감은 작업실이 아닌 작가의 삶의 현장, 즉 무대 설치작업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떠올랐다. 작업장 주변에 버려진 스티로폼 덩어리들을 보고는 '잘리고 녹아 없어지는 아무것도 아닌 소재로
강하고 단단한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이 작가의 머리를 스쳤다고 한다.
이후 커다란 스티로폼 덩어리를 가져다 놓고 열선 절단기로 잘라내어 녹아내리는 추상의 형체를 만들고는 그 위에 합성수지로 색을 입히고 우레탄 페인트로 코팅을 하여 강하고 단단하며 빛나는 형상을 만들어냈다.
우레탄 코팅을 뒤집어쓴 보잘것없는 스티로폼, 하지만 이 보잘것없음도 소멸만은 눈부시고 강렬하다.
작가의 길을 향한 그의 뜨거운 열정과 고단한 삶의 냄새가 작품 속에서 향기롭게 진동한다.
1975년 오사카 출생으로 교토 시립 예술대학교에서 조형을 전공한 작가는
2015년부터 겸업 작가로 다시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는 용기 있는 결단을 하여
이제 40대 후반으로 들어선, 어떤 면에서는 늦깎이 작가이기도 하다.
이 당시 개인전 때는 좋은 작품과 전시였음에도 작품 판매가 적어 안타까웠는데,
요즘 그의 작품을 좋은 소식과 함께 자주 접하고 있어 기분 좋다.
지난달 일본 현대 미술 딜러 협회(CADAN)에서 개최한 10인의 현대작가에 선정되어
해당 전시회에서 발표한 비디오 작품이 모두(ed.5) 판매되고 2주 전 도쿄 3331 아트페어에서도
여러 작품이 판매되었는데 특히 일본 내 유명 컬렉터 집안인 요시히카 카와무라 상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게 되어 평론가들과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그가 언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지, 과연 빛나는 아티스트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삶의 향이 가득한 그의 작품들을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https://www.instagram.com/fujisakiryoi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