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태어났지만 여름마다 아픈 나
입덧이 심했던 엄마는 멀미약으로 입덧을 다스렸다고 했다. 멀미약은 임산부가 먹어도 되는지 아닌지 모르는 상황에서 속을 다스리기 위해 멀미약을 밥 먹듯 먹었다고 하니 기가 찼다. 그래서일까? 나약하게 태어나 어릴 때부터 병치레를 자주 했다.
입맛은 왜 그렇게 까다로운지? 까다로운 큰 딸로 자라고 있었다.
비위 역시 약해 이상한 냄새나 비릿 한 음식은 쳐다보지 않았다.
태어난 후 모유만을 고집한 나, 그리고 밥을 싫어했던 나.
먹지 않아 엄마 속을 상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고 자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 탓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은 내 탓을 해가며 비난을 했다.
세 번의 출산으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아이는 부모의 유전자로 태어난다는 걸.
부모를 닮은 거지 자녀 탓이 아니라는 걸.
내가 입이 짧은 것은 분명 두 분 중에 한 분을 닮았을 것이다.
1년여 동안 친정에서 지내면서 엄마를 관찰한 결과, 친정엄마 역시 입맛이 까다로웠다.
냉장고에 들어간 음식은 두 번 꺼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매 끼니마다 새로운 음식을 원했던 엄마의 입맛은 까다로웠다. 엄마의 입맛과 지금 곁에 없는 아빠의 입맛을 닮았다면 아마 최고로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임은 분명하다. (여동생은 아무 음식을 잘 먹는 먹성 좋은 아이이다.)
나는 두 분의 유전자로 태어난 딸이라는 걸 명확하게 증명이 되었다.
그러나 엄마는 부인한다. 자신은 잘 먹는다고 편식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존심은 아닐까?
제대로 먹지 못하고 태어난 나는 초여름부터 기진맥진한 몸으로 여름 나기가 누구보다 힘겨웠다.
뜨거운 햇살로 인해 현기증과 식은땀(땀은 나지 않지만 등에 오싹한 느낌)은 기본이었다. 햇살을 피하지 못하는 여름은 극도로 피해야 하는 계절이다. 봄 햇살 역시 힘겨웠다. 5월부터 9월까지 뜨거운 햇살은 죽음의 계절이다.
땀구멍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20대까지 찜질방을 가더라도 뜨거운 여름이라도 땀을 흘리지 않았다.
더운 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에 누구나 땀을 흘리며 몸을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지만 땀을 흘리지 못하는 나는 비정상이었다. 그래서 어지러웠을까?
사촌 여동생이 피부관리사로 일할 때 비싼 스파 케어를 받았지만 땀은 나지 않았다. 그때 사촌 여동생이 그랬다.
"아니! 언니는 땀을 안 흘리네! 몸에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가? 병원 가봐라! 이렇게 뜨거운데 땀을 흐르지 않다니! 이상하다 이상해! 노폐물이 빠져나와야 몸이 개운한 건데! 언니 몸이 무겁지는 않나?"
"몸이 무거워! 어지럽고 두통은 늘 달고 산다! 땀 흐르지 않으면 몸에 이상 있는 거가?"
"10명이면 10명 모두 이 기계애 들어갔다 나오면 땀 흐르고 나온다 아이가! 근데! 언니는 그대로잖아! 이상하다! 언니 여름에 땀 흐르나?"
"아니, 땀이 안 나는데" (난 경상도 여자! 부산여자였기에 사투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20대 초반 마사지도 좋아하고 피부에 관심이 많던 시절, 이종사촌 여동생이 운영하는 마시지 샵에서 길고도 긴 상담을 받은 후 내 몸이 비정상인 줄 그때서야 알았다.
남들은 더워 머리에 등에 겨드랑이에 땀이 젖어 옷에 표가 났다면 나는 그대로였다.. 은근 자랑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제기랄! 자랑이 아닌 병이라니!
어릴 때부터 20대까지 부모 그늘에서 함께하면서 엄마는 딸이 땀을 흘리는지 안 흘리는지 관심이 없었다. 아파도 크게 신경 쓰는 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걱정거리가 늘 존재했던 엄마, 가정에 관심이 없었던 아빠 그러니 엄마의 걱정은 먹고살기 위한 걱정이 24시간 지속적이었다. 딸들이 어디가 아픈지! 딸들이 원하는 건 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딸들이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 정도만 관찰한 엄마는 지극히 생존의 육아였다.
큰 딸이 아프면서 엄마는 한 발짝 더 알게 되었다. 2003년 큰 병마로 싸우면서 내가 나약한 딸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죽는다고 한 딸아이가 기적적으로 일어나게 되면서 생과 사를 넘나들던 그때.
땀구멍이 열리기 시작했다.
2003년 4월 봄.
생일을 코 앞에 두고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다가온다는 두려움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28살 여름은 죽지 못해 살아났다.
살아났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어서야 한다는 것.
고열과 싸우면서 강한 해열제로 땀구멍이 열리기 시작했다.
28년 동안 땀나지 않던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하니 이상한 냄새가 났다.
땀구멍이 열리면서 다시 살아났고 출산을 하면서 더 많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땀이 나면 건강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매년 다가오는 여름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야 하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만 했다.
뜨거운 여름을 피하기 위해 차가운 물로 샤워도 해보고 얼음물로 열을 식혀보기도 하고 외할머니가 타 준 미숫가루에 얼음 동동 띄워 먹어보기도 하지만 매년 다가오는 여름 나기는 그저 힘들었다.
그렇다면 에어컨은 어떨까?
처음엔 에어컨으로 더위를 식혀보지만 손발이 먼저 차가워졌다.
손발은 차가웠고 속은 더웠다. 에어컨 바람을 쐴 때마다 두통을 달고 살았고 호흡기에 이상증세를 보였다.
숨을 쉴 수 없는 이상 증세. 선풍기 바람 역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아직까지 알 수가 없다.
40대 중반이 되면서 출산을 세 번 하고 나니 몸은 예전의 몸이 아닌 더 강한 몸으로 재탄생 되었다.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는 면역력이 길러졌고 에어컨 바람으로 두통이나 힘겨움은 사라졌다.
선풍기 바람은 아직 숨 쉬기가 힘들다.
어릴 때 이불을 덮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트라우마가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 바람을 바로 쐬면 숨을 쉴 수가 없다. 폐쇄 공포증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45년 동안 찾아온 뜨거운 여름, 뜨거운 태양을 이제야 즐길 수 있다.
즐길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글쓰기다.
내 안에 숨겨둔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면서 공포증이 점점 사라졌다.
44년의 여름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나를 집어삼켜버렸다.
한약도 먹어보고 좋다는 영양제도 먹어보지만 그건 임시방편으로 그때뿐이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내 마음 안에 상처임을 알게 되었다.
더 깊숙한 내면을 마주하다 보면 공포나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더 이상 여름이 무섭지 않다. 다만, 한낮의 여름을 피하며 즐길 줄 아는 나로 살아가고 있다.
한 여름의 생일은 가장 행복한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