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 왜 이렇게 슬플까?

오래전에 끊었던 발라드 음악을 들으니 눈물이 난다

by 치유빛 사빈 작가


KakaoTalk_20200822_230750960_03.jpg 무알콜 맥주



저녁 무렵 나는 노을을 사랑한다.

여름을 뺀 나머지 계절의 노을을 미치도록 사랑한다.

아이와 잠시 동네 마트 다녀오면서 노을을 봤지만 노을은커녕 해님만 쨍쨍.

마트에 들어서자!

갑자기 주류 코너로 발길이 옮겨졌다.

뭐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건 바로 무알콜 맥주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직원에게 물어본다.


"저기요! 무알콜 맥주 없나요?"


"아! 제로 맥주가 어디에 있는데... 저기 있네요!"


그렇게 맥주 한 캔을 내손에 넣고 얼마나 행복했던지.

꿀꿀한 기분을 무알콜로 풀고 싶었던 무의식이 있었나 보다.

술을 끊은지도 20년.

지독한 급체로 인해 소주 냄새를 못 맡게 되었다.






20대 초반 다른 친구들은 의연한 대학생의 옷을 입고 다녔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 가장이었기에.. 나만을 바라보는 눈만 4명.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기에 일찍 감치 공부는 포기했고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을 해 엄마를

도와주라는 외갓집 식구들 이야기를 세뇌 아닌 세뇌에 결국 나는 그들 말처럼 이루어지고 있었다.

취업을 해 돈 버는 족족히 엄마손에 들어갔고 걸핏하면 일하지 않고 놀던 새아빠를 바라볼 때마다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엄마는 어린 동생을 봐야 한다며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


그렇게 사회생활 첫 발을 내디뎠던 19살.

언니들이 많은 곳에 입사를 하면서 직원들과 잦은 회식.

점점 나의 주량도 늘어만 갔다. 소주 2~3병은 거뜬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정신줄 놓고 떡실신한 적은 없었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정신줄을 붙들고 있다 집에 도착한 순간, 내 방에 들어가는 순간 긴장이 풀렸고 그때부터 비몽사몽으로 잠이 들었다.

이런 내가 술을 왜 끊었을까?


KakaoTalk_20200822_230750960.jpg 혼술 한 날


이종사촌 동생과 동생의 남친을 소개받는 날. 잘못 먹은 해물탕으로 술집 화장실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줄을 기다리는 화장실 사람들이 아무리 두들겨도 나오지 않는 나를 결국 문을 열고 들어온 종업원과 동생은 나를 부축해 집에 바래다주었다.


소주와 함께 먹었던 해물탕이 소주를 멀리 하게 해 주었다. 소주 냄새만 맡았도 역겨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맥주는 마셨냐고. 마시지 못했다.

알코올 냄새를 힘겹도록 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프기 시작했고 사경을 헤매던 나는 나를 위해서라도 알코올 섭취는 내 일이 아니라고 꺼려했고 임신과 모유수유로 점점 술과는 이별을 했다. 와인 한잔만 해도 가슴이 찌릿찌릿, 머리가 띵한 경험으로

가급적 와인도 뱅쇼를 만들어 마셨다. 이런 내가 오늘따라 무알콜 맥주를 찾다니..


너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거구나! 직감했다.

내 마음을 위로해줄 무알콜 맥주 한 캔으로 기분이 업 되었고 엄마가 만들어 준 김밥을 먹은 후 아이와 개운하게 샤워 후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지만 점점 멍 때리기와 권태기가 찾아왔다. 기운이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낸 무알콜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안주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돼지껍데기 볶음으로 결정한 후 안주 만들기 시작했다.


잠을 자지 않는 아이는 비요뜨를

쓸쓸한 나는 무알콜 맥주와 돼지껍데기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마냥 행복했다.

먹다 보니 뭔가 아쉬웠다. 그동안 끊고 살았던 발라드 음악이 듣고 싶은 게 아닌가?

오늘은 마음껏 슬퍼하고 싶다. 마음껏 울고 싶다. 마음껏 쓸쓸하고 싶다.



KakaoTalk_20200822_230750960_04.jpg 돼지껍데기 안주

이어폰을 꼽고 유튜브를 보다 추억의 인기가요를 클릭하여 따라 부르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입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꿋꿋이 나는 지금 이 감정을 글로 녹여본다.

슬픈 발라드는 나의 슬픈 감정을 한 순간 삼켜버린다. 그래서 노래를 멀리하며 살았다. 가수보단 배우를 사랑한 나.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발라드를 듣는 건 나에게 불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멀리하면 행복이 있을 거라는 착각. 노래를 멀리하면 할수록 감정은 메말라졌고 눈물 한 방울을 흘리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발라드 음악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노을을 동경하듯 발라드 역시 나에게 원동력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그러나 낙담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알아줘서 감사하고 고맙다.


넉 놓고 듣고 있는 추억 발라드.

오래전 잊고 살았던 술에 대한 글감이 소환되었다. 무알콜 한 캔으로 외로움과 슬픔, 쓸쓸함을 뒤덮었지만 괜찮다. 그동안 얼마나 애쓰고 살았던가? 이제는 애쓰지 않기 위해 슬픔, 쓸쓸함 외로움을 기껏 이 맞이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니깐.

나는 나를 믿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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