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성향을 반영하듯 음식 앞에서 무릎 꿇지 않았다. 그러나 투병 자라는 명함을 부여받던 그 해는 음식으로 너무 힘들었다. 혼자만 생활하는 공간이 아니었기에 한 끼에 음식을 네 번 해야만 했다.
각자 식생활이 너무 달랐기에.
남편은 칼칼한 음식을 좋아하는 반면, 큰 아이는 밀가루 음식을 작은 아이는 한식을 좋아했다. 매번 음식 할 때마다 몇 시간씩 걸렸다. 칼칼한 국이나 찌개는 남편 음식으로 큰 아이는 밀가루 음식인 스파게티를 작은아이를 위해 된장찌개를 끓이고 나면 환자인 내가 먹어야 할 음식을 할 수가 없었다. 기운을 다른 음식으로 인해 다 썼기에. 궤양성 대장염이 몸에서 적응하기 전이라 무척이나 괴로웠다.
주방을 바라볼 때마다 매 끼니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소화가 잘 되고 기름지지 않고 맵지도 짜지도 않는 환자식 음식은 우리 식구 중 아무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원에선 음식을 가리는 것도 좋지만 대장이 영양분을 흡수만 해준다면 가리지 않아도 될 거 같다는 말뿐. 먹고 싶은 대로 먹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보내다 스트레스가 음식 때문에 오기 시작했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 때문에 가족 모임은 늘 죄스러웠다. 나 때문에 쉽사리 식당을 선택하지 못했다. 음식으로 병을 고치려다 오히려 음식으로 병이 더 악화될 거 같았다.
외래 진료하는 날 주치의와 상담을 했다.
"선생님 저 음식을 가려야 한다는 말에 이 음식 저 음식 가리다 오히려 스트레스로 병세가 약화될 거 같아요"
"왜요"
"식구들 식성에 맞게 음식을 하다 보면 제가 먹어야 할 음식을 못해요. 그들은 정상인이잖아요. 저처럼 소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그렇다 보니 각자 식성에 맞게 매 끼니 챙기다 보면 제가 먹어야 할 음식을 할 때쯤 피곤하고 지치더라고요. 환자식을 가족들에게 내놓기도 그래요"
한참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딱 한마디 한다.
"자 그럼 이렇게 합시다. 요즘 증세가 어떠세요"
"혈변은 그대로, 음식을 먹음 바로 화장실 가는 것도 같아요. 그러나 발병 당시보다는 좋아졌어요. 하루에 10번 이상 가던 화장실은 5번 정도 다니니까요"
"아직 염증 수치나 빈혈 수치를 보면 정상은 아니에요. 그런데요! 스트레스가 더 위험해요. 음식으로 병을 호전시키려다 오히려 음식으로 병을 더 얻으면 안 되니까요. 매 끼니 챙기는 것도 벅찰 거예요. 누가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음식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닐 텐데요... 자 그렇다면 먹고 싶은 거 먹어봐요."
"정말요. 밀가루 음식, 기름진 음식, 약간 칼칼한 음식 등 다 먹어도 될까요"
"다 먹는데 일단 몸상태를 살펴야 합니다. 대장은 아주 예민해요. 궤양성 대장염은 자가면역질환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정상인 세포가 나쁜 세포인 줄 착각하고 정상인 세포끼리 싸우는 거죠. 대장이 너무 깨끗해서 병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러니 스트레스받지 말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세요."
"처음 듣는 말이에요. 자가 면역질환이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줄 몰랐어요.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 냉동식품 등 다양하게 접하면 될까요"
"일단 먹어보세요. 먹어보시고 바로 몸에서 반응이 오거나 복통이 온다면 중단해야 합니다. 잘 아시죠. 이 병은 장을 쉬게 하는 게 목적이라는 거. 소화가 되지 않거나 복통이 오거나 평소보다 화장실을 자주 다니거나 혈변을 자주 보거나 양이 많아지면 바로 중단하시고 환자식으로 먹어야 합니다. 아니면 한 끼 정도는 굶어보세요."
"정말 그렇게 하면 대장이 괜찮을까요?"
"먹거리보다 더 치명적인 건 스트레스입니다. 지금부터 음식으로부터 해방되시고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면서 지내세요"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잘 먹고 잘 자는 것들이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스트레스받지 않고 다음 달에 다시 뵈어요."
"그래요. 다음 달에 염증 수치가 좋아졌음 합니다. 스트레스 덜 받고 오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이처럼 의사 말 한마디에 천군만마를 얻었다. 음식으로 회복하려다 오히려 병을 더 얻을 거 같았고 진료 당시 상담 하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빠져나왔고 기쁜 소식을 식구들에게 알렸다. 될 수 있는 대로 소화가 잘 되는 음식 위주로 먹되 먹고 싶은 음식을 참지 않기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선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생각과 반대로 복통과 혈변은 잦아들었다. 신기했다.
급기야 고기를 구워 먹었던 날엔 소화까지 잘 되었다. 병의 호전이 보였다. 이렇게만 매일 보낸다면 아픔을 견딜 것만 같았다.
2012년 11월 초 겨울 접어들 무렵부터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부터 기름진 음식을 먹고 몸 상태를 살폈다. 스트레스를 받았던 날에는 어김없이 복통과 화장실 횟수는 늘었고 스트레스 없는 날에 먹었던 음식들은 소화가 잘 되는 편이었다. 2014년부터는 차츰차츰 회복되었다.
혈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복통과 설사 횟수가 잦아들었기에 아주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서야 몸이 회복되었다. 2015년부터는 환우들이 그토록 원하는 관해기가 찾아왔다. 현재까지 관해기를 유지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물론 매운 음식부터 면 요리까지 먹으면서 몸 관리를 하고 있다.
병은 정말 마음에서 오는 것이 맞았다. 병은 스트레스로 인해 오는 것이 맞았다. 음식이 아니라 마음의 병. 우리가 병을 대하는 자세만 제대로 알게 된다면 위험한 병일지라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 2015년 부산 모 대학병원에서 서울에 위치한 대형 병원으로 옮기면서 그 어떤 위험한 증상으로 입원하지 않고 정상인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변 신호가 오면 참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옷에 실례를 하거나 설사를 하는 건 아니다. 정상인처럼 정상적인 변을 보고 살아가니까.
병을 무서워하면 할수록 몸을 괴롭혔고 몸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병과 화해를 하고 타협을 하면서부터는 병에서 해방이 되었다. 궤양성 대장염은 오늘 증세가 좋더라도 내일 아침에 좋아지지 않는 병이다. 즉, 시한폭탄 같은 존재지만 투병 9년 동안 시한폭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곤하고 힘들고 지칠 때쯤 몸에서 반응을 한다. 복통이 오거나 혈변이 보이거나 이것도 아니면 대상포진이나 입술에 물집이 잡힌다. 그때는 몸을 위해 병을 위해 쉼을 선택한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고 싶은 일과 먹고 싶은 음식을 참지 않고 먹는다. 그렇다고 폭식하지 않는다. 폭식할 만큼 소화기 계통들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히 먹고 적당히 쉼을 선택했던 결과 관해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병을 대하는 자세를 바꿔보자. 하고 싶은 것들을 억눌리지 말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나를 느껴보자. 아마 잘했다고 칭찬할 것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병을 위로하고 몸을 위로하면 나처럼 관해기가 유지될 테니까. 병든 것을 수치심으로 가져올 필요가 없다. 아픈 것은 나를 죽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나를 알아가기 위한 좋은 도구다.
병을 위해 우리 모두 당당하게 대하자!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너무 좋다. 아픔에 무너지지 말고 아픔을 충분히 느낀 후 병과 타협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