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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y 16. 2021

지랄도풍년이네 말은내 안에 있는 솔직한 감정이다

주말드라마 오케이광자매를시청하다 나의 또 다른 감정을 알아차림



요즘 자주 보는 드라마가 있다. 막장 드라마 보단 주로 가족 드라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이유는 온전한 가정에서 자라기를 바랐던 어린 시절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형제가 많기를,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살아가는 일상 드라마가 참 좋다. 특히, 주말에 하는 주말 드라마가 참 좋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보단 (재벌집과 가난한 사랑 스토리나 억척스러운 여주인공 삶의 스토리는 가급적 보지 않는다)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나고,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드라마가 내 마음에 쏙 든다. 우울한 이야기가 많은 드라마는 뇌와 마음을 힘들게 하고 부정적인 스토리가 많은 드라마는 정신건강을 헤치는 거 같아 언제부턴가 그런 스토리를 피하고 있다.



주말과 휴일은 나에게 주는 시간이다. 틈틈이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르면 가볍게 글로 풀어내지만 웬만하면 뒹굴거리며 아이와 놀다 읽고 싶은 책 50페이지가량 읽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이 과정을 만들기까지 고심도 많이 하고 생각도 무지하게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거야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천지 빼까리였기에 당연히 생각 정리가 안되었다. 남들이 하니 따라 하는 것도 좋아야 행동했다. 그 후로 누군가가 멋진 프로젝트를 해도 손을 놓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남이 하는 일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었던 내면을 알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초기 정말 온라인에서 하는 프로젝트가 줄을 이었다. 너도 나도 온라인으로 뭉치고 배우고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 그들을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멈춤을 했다.



몸이 힘들고 생각이 지치고 있었다. 이때 내가 한 건 모든 걸 다 내거로 만들 수 없다, 고로 나는 내가 하고픈 일만 하며 즐기자 다짐하며 모든 걸 내려놓았다. 분기별 회비를 냈고 이내 주최 측에게 사정을 말하고 환불을 받았다. 2020년 봄, 아주 잘한 일 중 하나이다.



2020년 봄, 지랄도 풍년이었다. 지랄 발광을 하다 지치는 자신을 보며 수치스러웠다. 남들은 저 멀리 가는 거 같고 나는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며 하는 일마다 진전이 없었다. 그때, 한 출판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어버렸다. 남과 비교하고 있었으니깐.. 알게 모르게 그들과 비교하며 또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마음 한 구석에 박혀 있었다.



누구와 비교하는 삶은 이토록 나를 죽이고 힘들게 했다는 걸, 그걸 알아차리는 동안 마음이 아팠다. 지랄도 풍년을 맞았던 2020년 봄. 모든 걸 내려놓고 현실에 집중하니 티브이 출연도 하게 되고 온라인으로 인맥을 쌓으며 작가들과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단톡 방이 스무 개나 되었으니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유년시절처럼 아바타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을 알아차리는 거, 그게 가장 힘들다. 



'지랄도 풍년이네' 이건 최근에 방영한 '오케이 광자매' 중 광남이의 시어머니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함이 올라왔다. '지랄도 풍년' 무슨 뜻이길래 화가 나면 상대에게 '지랄도 풍년이네'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걸까? 혼자 불편함을 안고 드라마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때 한 감정이 쑥 하고 뛰어올랐다. 남과 비교하며 한숨짓듯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미안함을 안고 있었고 속내를 말하지 못해 자신의 불편함을 '지랄도 풍년이네' 말을 하며 불편한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드라마를 보다 보니 '지랄도 풍년이네'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함보다 속이 후련했다. 내가 그 말을 못 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억눌리며 참고 또 참았다. '나는 억울한 감정을 억눌리며 참고 있는데 저 아줌마는 쉽게 하는 게 너무 불편해'를 알아차렸고 '너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속 시원한 말을 하고 싶구나' 알게 되었다. 불편해하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너도 하면 된다. 공격적인 말이 아니면 되는 거야! 직접적으로 못하면 드라마에 나오는 아줌마처럼 혼자 말로 하면 되는 거야! 아무도 너를 비난하지 않아. 안전한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내뱉어보자! 아이가 하는 것처럼 말이야. 아이가 그러잖아. 엄마 싫어. 엄마 가. 엄마 나빠. 그 말은 뭐겠어. 엄마 내 마음을 알아줘, 진짜 가라는 말이 아니야, 나를 꼭 안아줘, 나를 더 많이 사랑해줘! 말이잖아. 너도 지금 그러고 있어. 아픈 마음을 들여다봐줘. 아야 하며 울고 있잖아. 우는 아이를 외면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지금 아주 잘하고 있어. 그러니 그 아이를 외면하지 말고 꼭 안아주며 상처를 만져주면 되는 거야. 지랄도 풍년이네 하면서 말이지' 



어릴 때부터 드라마란 드라마를 봤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와서 본 것도 있지만 나 대신 후련하게 소리 지르는 걸 보기 위해서라는 걸 다 크고 어른이 되고 이제는 중년이 되면서 깨달았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랄도 풍년이네' 못마땅한 상대를 향한 말이 아니라 내 안에 불편한 감정을 대변해하는 말이다.

드라마 대사로 나를 알아차림은 늘 영감을 받는다. 







어느 날 문득 아침을 먹다 말고 떠오르는 주제는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40년 넘게 글이라고는 카톡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다였으니까.. 나름대로 글쓰기 위해 일기장을 구입해 써보지만 참 안됐다. 나를 모르니 뭐를 써야 할지 모르는 건 당연한 거니깐...



이제는 감정일기를 쓰기도 한다. 공개적으로 쓰기 힘든 감정을 감정 노트에 마구 휘갈긴다. 그러다 이내 편안한 나를 찾아 평온하게 잠들기도 한다. 이게 바로 '지랄도 풍년이네'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때론 지랄도 풍년이어야 성장하는 거 같다.



부산은 비가 퍼붓고 있다. 마치 지금 지랄을 하는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오늘은 나를 위해 즐겁게 지랄을 풍년처럼 하는 건 어떨까?


 여기저기 지랄하고 있다. 나를 알기 위한 지랄은 매일 풍년을 내며 하고 있다.



친구들이여!!

나를 알려면 나를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려면 지랄을 하자! 지랄을 흉년이 아니라 풍년으로 하자! 그래야 새로운 삶이 눈에 보일 것이다.



나를 사랑하면 지랄도 참 아름답게 보인다.

나를 알면 지랄도 참 멋지게 보인다.

나를 지키면 지랄도 참 소중하게 보인다.



함께 지랄을 하며 아름다운 나를 만들어보자. 결코, 상대에게 해서는 안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랄을 하자. 나같이 글을 쓰며 지랄해도 된다. 이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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