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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ul 09. 2021

호산구병을 먼저 투병한 자는 희망을 선물을 한다

희귀병 호산구 투병하고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주다




20대 후반, 


이름 모를 병마가 코 앞에 있었다. 그것도 희귀병이라는 말을 들먹이며 마음 준비하라는 말과 함께 교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을 때였다.


결혼을 하고 석 달만에 닥친 불행 앞에서 3개월간의 긴 투병 끝에 이유모를 고열과 싸워야 했고 생기지 말아야 할 염증과 치열하게 싸우다 원인을 찾았다고 하는 의사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어릴 때 개구리를 먹은 적 있어요?" 


"워낙 밥을 잘 먹지 않아서 엄마가 장터에서 식용 개구리를 고아서 먹였다는 말은 들은 적 있어요!"


"그래서 그렇구나!"


자기네들끼리 알아들수 있는 의학용어를 읊어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3개월의 길고 긴 투병생활과 입원생활은 이 병 때문에 투병한 건 아니다. 다른 병으로 투병하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염증으로 인해 새로운 희귀병이 몸안에 있다는 걸 안 후, 교수님은 엄마를 조용히 불렀다.


환자인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고 있었으니까.


"마음 준비를 하세요. 이 병은 뇌나 심장으로 가면 사망할 수 있습니다. 수치가 꽤 높아요. 독한 항생제를 써도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여요. 뇌나 심장으로 가면 즉사하는 병입니다."


교수님 말을 들으며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는 엄마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염증을 유발하는 희귀병 호산구라는 백혈구 안에 있는 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이버 검색하면 여러 가지 증상을 볼 수 있는데 그중 두 가지가 나와 같았다.


첫 번째, 폐 쪽에 기흉으로 인해 구멍을 뚫어 호수를 끼우고 물을 빼야 한다고 

두 번째, 기생충이 발견된 것이다.


병원 측, 의사들은 그 어떤 말을 해주지 않았다. 이 병에 관해서...


그저 검색하면서 알게 된 병이었으니까.


죽을 고비 앞에 엄마 눈은 퉁퉁 부었고 딸아이 앞에서 그 어떤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죽을 준비를 하라, 죽을 수도 있으니 마음 준비를 하라는 말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멀쩡한 나에게 산소호흡기를 해야 한다고 하는 의사들,

숨도 마음도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호흡기는 왜 착용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병원은 그저 해야 한다고만 말을 했으니까.


회진을 하면 산소호흡기를 했다 사라지면 벗었다가 반복한 병원생활은 본인은 멀쩡하게 자가 호흡을 하는데도 의사들은 불쌍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신경외과 병동에 입원한 상태에서 호흡기 내과 진료를 보며 투병을 하고 있었다.


독하디 독한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며 경과를 지켜보는 걸로 가닥을 잡고 매일 이어지는 회진은 지겹기 짝이 없었다. 






염증 하나로 인해 알게 된 희귀병 호산구



그 당시 호산구 수치가 천 이상으로 치솟고 있었다. 정말 위험천만한 상태에서 해맑게 웃으며 병원 생활을 이어갔다. 기흉인 폐는 뚫지 않고 약물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역장이 무너지던 엄마는 그저 딸아이를 믿고 지켜보는 방법 말고는 없었으리라.










어느 날,


호산구를 치료하면서 염증 수치는 점점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호산구 수치는 천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내려가고 있었다. 입원생활 3개월 만에 퇴원을 하면서 호흡기 내과 치료는 이어갔다.


일 년 동안


스테로이드 약을 줄여가며 상태를 살폈고 약물 복용한 지 일 년 만에 약물을 끊으면서 선생님은 그랬다.


"일단, 약물을 끊을 건데요. 두 달에 한번 석 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피검사를 해야 합니다. 상태를 살피려면요. 약물 복용하고 일 년이 되니 호산구 수치는 정상범위로 왔고 추후 약물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지는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네, 그럼 피검사는 계속해야 하는 거지요?"


"그럼요. 피검사 경과로 판단해야 하니 잊지 말고 진료 봐요. 그럼 다음 달에 봅시다."


결혼하고 석 달만에 병원 생활로 3개월을 보냈고 이름 모를 염증 재발로 또 다른 병마와 투병생활 3개월을 하고 나니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병과 싸워야 하는 생활은 주위 사람들이 먼저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1년 동안의 약물 복용, 그 후로 약물을 끊고 잘 견딜 거라는 확신만 남긴 채 생활을 했고 피검사는 안정적이었다. 약을 복용하지 않자 2세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1년 동안 몸을 살폈다.


호산구는 뚜렷한 증상이 없다. 다만, 아픈 부위에 염증이 낫지 않고 재발에 재발을 거듭하며 이름 모를 다른 염증으로 힘들었다. 호흡하기 힘들거나 폐가 아프거나 그런 증상은 없었다. 나에게는.....


약을 끊은 지 1년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아이를 낳아도 된다고 그러나 출산 후 피검사를 하자고 했다.

그렇게 1년, 2년, 3년에 걸쳐 피검사를 한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



"선생님, 혹여 재발할 가능성은 있나요? 그렇다면 어떤 증상이 있을까요? 증상이 있어야 병원 올 거 같은데요. 지금처럼 아프지 않으면 어떡해요?"


"증상은 뚜렷하게 없어요. 지금처럼 편안하게 생활하세요. 별다른 소견은 없으니.........."


선생님 마지막 말 끝으로 더는 호흡기 내과를 찾지 않는다. 그러나 호산구라는 걸 앓았기에 이유 모르게 아프면 호산구를 의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며 병원과 이별을 고했다.


무슨 병이든 무섭게 다가온다. 결국,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병은 이처럼 죽지 않아도 이겨낼 수 있는 삶이 있다고 내가 보여주고 있다. 


병원은 최악의 상태를 보호자나 환자에게 말을 한다. 왜냐고,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니까. 결국 최악이라는 말을 듣고 보호자나 환자 스스로 마음을 챙기고 다독여야 한다는 사실을 2003년 희귀병 호산구를 투병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죽을병이 설사 있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마음 하나만 있다면 죽어야 할 병이라도 다시 살아날 의미가 부여된다. 그래서 신은 살아야 할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병을 호전해준다고 지금껏 믿고 살아가고 있다.


18년 동안 단 한 번도 호산구로 재발하지 않고 세 번의 출산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블로그에 포스팅한 호산구 투병기를 읽고 많은 분들이 호산구 병으로 투병 중임을 알 수 있었고 안타까웠다.


암도 아닌 호산구라는 병을 알지 못해 이미 앓고 아픈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그들은 절실한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들여 댓글을 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8년 전에는 호산구라는 병도 참 드물 병이었다.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던 사연들이 요즘은 종종 보이기도 하고 먼저 앓은 내 글에 희망을 얻고 진료 방향을 잡은 그들이 있어 18년 전 미리 투병해버린 내가 참 자랑스럽니다. 병을 자랑스러워해야 병은 더 이상 내 곁에 머물지 않고 떠난다.


죽을병은 없다. 다만, 죽을 거야 마음을 정해버리면 신은 죽게 해 버린다는 걸 18년 전에 이미 알아버렸다.

지금도 투병 중이지만, '나는 아픈 몸이야' '나는 환자야' '나는 아무것도 못해' '나는 곧 죽을 거야' 마음 약한 생각을 오래전에 묻어두고 살아간다.


그건 나를 힘들게 하는 행위니까. 먼저 투병했기에 현재 투병 중인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소망을 하며 글을 써 내려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야만 하고,

나에게 부여받은 책임감과 사명감이 바로 남들이 알지 못하는 투병을 일찍 감치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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