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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Sep 23. 2021

작년 가을과 올해 가을이 다르다

싱글맘의 가을 편


이제는 가슴이 아픈 일이 없는 나날들이 있기만을 간절히 소망했다.


작년 9월 중순.


나는 천안에 있었다. 상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무엇을 어떻게 처리하고 해결해야 할지 난감했다.


머릿속은 뒤죽박죽. 심장은 덜덜 떨렸다. 호흡과 맥박은 쉼 없이 담금질 쳤다.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었고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순리대로

흘려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일에는 순서가 있었고 순리대로 흘려야만 내가 원하는 자리에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작년 9월에

몸소 체험을 했다.


밤마다 가슴을 치고 다독여도 그건 내 안의 불안을 떨쳐낼 수 없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 보고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야만 순리대로 흘러가야만 했다.

그게 최선이었고 지름길이었다.


허공에 대고 '엄마'를 불러보지만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그 옛날 어린 시절 엄마를 찾아 눈물짓던 그 시절과 같았으므로..

이제는 내 위치가 그 시절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한 아이의 엄마였고 책임져야 할 가장이었기에 새근새근 자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일어서야만 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대범하고 덤덤하게 일을 처리하자고 마음을 다졌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일으키는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울 순 없었다.


그리하여 두어 달은 약의 힘을 빌어야만 했다.

약을 먹고 자야만 온전한 마음과 가슴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1년 전과 후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1년 전은 배신감으로 감정이 뒤죽박죽이었다면

1년 후 지금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니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발버둥 치고 있다.

그것만으로 1년 전 상처를 달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우울했던 그 시절

감정 기복이 심했던 그 시절

불안했던 그 시절은 나를 한 뼘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친정집에서의 생활 1년 3개월

천안의 생활 2개월

그리고 부산 정착 9개월


이 세월이 흐른 만큼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겪으면서 서러움으로 눈물을 지으며 살아야만 했다.

이 집 저 집살이를 하며 적지 않게 눈치를 보며 지냈던 세월은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기 계발을 위해 뛰었던 1년 6개월은 많은 것을 얻었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상승했다.

그 상승을 이어받지 못하고 2개월은 숨죽이고 앞을 위해 달려야 했다.

그게 우주와 신 준 소리였고 순리대로 흘려야 하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제는 그 시절 먹었던 약을 끊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주방 한편에 떡 하니 버티던 청심원.

그 해 가을, 약국을 지나칠 때마다 방앗간을 지나가지 못하고 몇 병씩 사야만 했다. 잠을 자야 했기에.

내일의 일이 있기에.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기에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으므로...

그때는 그게 최고이었으므로...


법원을 다닐 때도

법무부 단어가 나올 때에도

접견을 해야 할 때도

청심원은 유일한 안식처였다.

작은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안식처가 필요했으리라.


이제는 모든 것이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나 설렘도 그 사람이 준 사랑도 그 사람이 준 상처도 이제는 미련 없이 떠나보내야만 추억으로 자리 잡을 테니 가슴 깊이 간직한, 나 스스로 인지 못한 미련을 두 손 가득 담아 마음 가득 담아 떠나보낸다.


때로는 가슴이 아프다.

나도 인간이니까.

나도 미숙한 성인이니까.

너만의 잘못은 아니니까. 미안함으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네가 나에게 준 상처들 용서하노라고.


어느 날,

주방을 둘러보니 작년에 구입한 청심원 한 병이 놓여 있었다.

부산으로 이사하면서 더는 찾지도 보지도 않고 있었다.

다행이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니까..

조용히 그때 그 심정을 헤아리며 조용히 청심원을 먼 곳으로 치워본다.

과거를 용서하고 떠나보내는 의식이라고..


살아가다 보면 청심원을 찾는 날이 오겠지.

그 청심원을 바라보지 않고 굳건히 내 앞에 놓인 장애물을 처리하는 나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강한 나이며

나는 강한 엄마며

나는 강한 큰딸이므로.. 그렇게 스스로 위로한다. 때로는 무너져도 괜찮다고 다시 돌아갈 힘이 있다고...


겪지 말아야 할 무거운 일을 겪어야만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유를 찾아본다.  

그 이유를 찾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현재를 즐긴다.


아픔도

미련도

슬픔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지 않고 즐긴다. 그래야만 한다.

나는 건강한 나여야 하고 나는 건강한 엄마여야 하니까.


오늘도 내일도 그 필도 즐겨보자. 우울한 마음을 애써 지우려 하지 않고 그 마음 그대로 끌어안고 즐겨보자.

그래야만 나 다운 나를 찾으니까.



작년 가을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슬펐다.

올해 가을은 잔잔하게 물들고 있다. 그 해 가을만큼 이쁘지 않기를 그 해 가을보다 더 이쁘기를 바라며 더는 슬픔을 간직하지 않고 새로운 가을을 맞이해본다.



2020년 9월 안녕. 2020년 9월 가을 안녕

찬란하고 영롱한 가을 덕분에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모든 것들과 안녕을 고한다.


2021년 9월 어서 와. 2021년 9월 가을 어서 와.

내 곁에서 새롭게 물들어 줘.

새로운 추억과 새로운 설렘을 남겨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나를 맞이한다.

지난 몇 달 동안 힘겨웠던 슬럼프.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여름.

슬럼프는 아마도 오늘을 기억하는 거 같다. 애써 잊으려고 했던 그 추억과 배신을..

그래서 아프고 슬펐던 거 같다.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정신보다 육체가 먼저 반응하는 나를 알았으니 이제는 슬퍼하지 말자.


우주는 신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안겨준다고 했다.


병마와 싸워 이겼고

복잡한 물리적인 일들과 싸워 이겼다.

결국 우주와 신은 내 편이었음을..

그래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살아가기 위해 다시 힘을 주고 용기를 준 우주의 뜻을 생각하며 오늘도 난 쉼 없이 써내려 간다.

그리고 이별을 고한다.

안녕.. 내 모든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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