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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19. 2021

사쿠라(벚꽃) 김치는 외할머니의 추억이 묻다

투병인의 음식 라이프

아주 아주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 가면 냉장고에 있던 음식 중 유독 긴 김치가 있었다. 배추김치는 아니고 그렇다고 갓김치도 아닌 모양도 맛도 다른 김치가 항상 외할머니 집에 있었다.


이 김치가 할머니 집이 상징이라도 되듯 늘 한결같이 함께 했다.


외할머니 집에서 1년 정도 함께 살면서 쉼 없이 먹었던 김치가 그 시절에는 흔했다. 하지만 강산이 두세 번 바뀌면서 김치도 사라지고 있었다. 동물만 멸종되는 것이 아닌 식물도 사라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결혼을 하면서 사쿠라 김치는 볼 수가 없었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던 김치는 외갓집을 가면 볼 수 있었다.


외갓집은 부산 영도라 사쿠라 김치를 자주 접할 수 있었지만 영도가 아닌 다른 동네에서는 사쿠라 배추가 없다. 그만큼 희귀종의 김치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영도에서 살면서 사쿠라 씨앗으로 농사를 짓어 김치도 담그고 나물도 무쳐 먹었다는 할머니 말을 떠오를 때마다 사무치게 그리웠던 김치 중 하나다.


얼갈이배추보다 깊은 맛과 향을 자랑하고 배추김치보단 가벼운 맛은 갓김치와 또 다른 맛을 자랑한다. 


아마 먹어본 사람만 그 맛을 알 수 있다. 나는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고 외갓집이 영도라 사쿠라 김치가 익숙하다. 그 맛을 잘 알기에 엄마에게 늘 주문하기도 한다.


사쿠라 김치는 너무 익어버리면 맛이 없다. 그래서 친정엄마는 조금씩 사서 먹고 또다시 김치를 담그는 일을 힘들어하지 않고 하셨다.


늘 얻어먹던 처지라 사쿠라 김치 본연의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다. 부산에서 정착하면서 친정엄마가 사쿠라 김치를 사러 간다고 하길래 따라붙어 사쿠라 김치의 민낯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사쿠라 김치는 시장 가면 다 볼 수 있는 배추가 아니다. 귀하디 귀한 몸이라는 것이다.


사쿠라 김치를 판매하는 상인분이 따로 있을 정도로 흔하지 않은 배추라는 걸 방증했다.

친정엄마는 수소문 끝에 사쿠라 배추를 판매하는 상인을 우여곡절 끝에 찾았고 그렇게 몇 단씩 주문해 밥상에 올라올 수 있었다.




사쿠라 배추


5단을 구입하는 엄마는 자신과 나에게 주려고 먼 동네 시장까지 가서 사쿠라 김치를 공수했다.

일반 배추보다 더 길고 더 얇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잎사귀는 벌레들이 먹어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한단에 오천 원이라는 금액을 자랑했다.


사쿠라 김치를 볼 때마다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때 그 시절은 먹거리도 귀했고 지금처럼 가짓수가 많지도 않았다. 편식하는 나는 사쿠라 김치의 잎사귀로 쌈을 싸 먹으면 없던 입맛도 돌아왔다. 


그걸 안 외갓집 식구들은 내가 오는 날에 맞춰 잘 익은 사쿠라 김치를 꺼내 손바닥만 한 잎사귀에 고슬고슬 짓은 쌀밥 한 숟가락을 올려 쌈을 싸서 내 입속으로 넣어준다. 들어온 김치쌈은 침이 고일 정도로 풍부한 맛을 자랑한 김치다.


외할머니와 나만의 추억은 사쿠라 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힘든 살림에도 불구하고 사쿠라 김치를 담아 손녀를 위해 내어 준 할머니가 요즘 들어 그립다.




사쿠라 김치


길고 긴 김치 한 점을 따끈한 쌀밥 위에 올려 먹고 물에 만 쌀밥 위에 사쿠라 김치를 올려 먹으면 그날 밥은 두 공기는 기본이 된다.


익어가는 사쿠라 김치만큼 나도 익어가고 있다. 함께 늙어가고 함께 사라지는 그런 김치가 사쿠라 김치다.


이제는 재배도 어렵다는 사쿠라 김치는 어느 순간 내 곁을 떠날 것만 같아 기록해서 남겨 둔다. 





내 고향인 부산 영도




영도의 특산물이라며 혼자 말하곤 한다. 올해는 사쿠라 김치의 풍년이다. 김치냉장고 안에는 배추김치보다 사쿠라 김치가 가득하다. 그래서 올해는 마음이 넉넉한 한 해를 마무리 짓을 거 같다.


풍요로운 지금.

감사함과 함께 그 풍요로움을 즐겨본다.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없을 줄 알았던 그 시절 사쿠라 김치로 할머니 모습이 눈앞에서 그려진다. 먼 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으며 엄마가 준 사쿠라 김치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2021. 11월 19일 친정엄마표 사쿠라 김치를 바라보며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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