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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17. 2022

타향살이를 하면 안다. 고향이 가장 포근하다는 걸

엄마 에세이

이제는 혼자서 거리를 배회하는 기회가 생겼다. 예전 나는 늘 아이와 함께 했다. 어디를 가든 내 곁에는 아이가 있었다. 3월부터 나에게 아이가 선물을 주었다. 5시간 동안 나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다들 혼자서 놀면 쓸쓸하지 않냐고 외롭지 않냐고 물었다. 혼자가 좋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 나를 인정했다. 함께 있으면 그 나름대로 즐겁고 행복하지만 오롯이 혼자가 되어야 나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 듣고 싶은 음악을 이어폰으로 실컷 듣는다. 집에선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며 청소를 하고 집안 곳곳을 정리한다.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5시간을 아주 알차게 보내기 위해 살림은 잠시 미루어두었다. 아이 흔적을 말끔하게 정리가 되면 무조건 나간다. 남포동, 광복동, 자갈치, 국제시장, 깡통시장, 부평시장 등 부산 중구 곳곳을 다닌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남포동은 으쓱하다. 빈 상가가 즐비하고 사람들이 없다. 4년 전만 하더라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여기가 부산인지 외국인지 헷갈렸다. 곳곳에 일본어, 영어, 중국어등 다양한 간판을 볼 때마다 입이 쩍 벌어졌다.


식당을 가더라도 한국어보단 외국어로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4년이 흐른 지금은 빈 상가가 즐비하고 사람은 없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오전 9시에 남포동을 향한다. 예전 젊음의 감수성을 느끼고 싶었다. 거기를 가면 그때 그 친구를 만날 거 같았고 내가 자주 찾던 액세서리 언니를 만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노트북을 가방에 욱여넣고 버스를 타고 남포동을 향했다. 광복동과 남포동 사거리에 있던 예전 상가를 찾았지만 없었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고 생각하니 우울했다. 나만 늙었다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내가 늙으면 그들도 늙었을 것이고 그 자리를 지키기에는 나이가 든 것이다. 한참을 광복동을 배회하다 카페를 찾았다. 오래전 느낌을 간직한 나에겐 오래전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남포동은 나의 친구이다. 태어나면서 줄곧 함께 했고 성인이 된 지금 함께 늙어가고 있다. 예전 그 느낌은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길거리 떡볶이와 길거리에 앉아 비빔당면을 먹을 수 있는 남포동이 참 좋다. 나의 어린 시절 잠시나마 행복감을 안겨주던 곳이 바로 남포동이다.


서면 번화가가 있지만, 나는 남포동이 사무치게 그립고 그리웠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자갈치나 부평시장을 가면 할머니들의 구수한 토박이 부산말을 들을 수 있고 정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어릴 때 종종 엄마 따라 자갈치 시장을 가면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처럼 입만 쩍 벌리고 구경을 했다. 이제는 내가 아이에게 그 경험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비린내와 징그러운 물고기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여니는 출생지가 충청도라서 바다와 친하지 않고 생선과 친하려고 하지 않는다.


엄마 고향은 부산, 아이 고향은 충남. 태생은 다르지만 우리는 한 가족이고 엄마 고향 향기를 맡아보라고 한다. 친정엄마 역시 부산 토박이다. 그래서 부산 사투리를 능숙 능란하게 한다. 어떨 때는 내가 못 알아듣는 사투리로 우리는 한바탕 웃고 만다. 부산에는 내 고향과 바다가 있다. 부산 사투리가 그리웠던 충청도 살이는 그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이방인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위로하는 건 그토록 그리운 곳. 번화가를 찾아 숨을 크게 들어마시면 된다.


오늘도 내일도 난 이방인이 아닌 오롯이 나를 느끼며 다녀볼 생각이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서의 생활 5년은 나에게 자극제이자 부산을 더 그립게 했던 것이 틀림없다.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타향살이로 외로움이 뭔지 절실히 느꼈다. 더는 타향살이를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란 그 고장이 가장 멋지고 가장 아름답다. 내가 눈을 감는 그날까지 부산을 눈에 넣고 가슴에 새기며 마음에 고이 간직해본다.


고향을 떠나봐야 안다. 소중함을.. 건강을 잃어봐야 안다. 소중함을..

사람을 잃어봐야 안다. 소중함을.. 사랑을 잃어봐야 안다. 그 소중함을.. 시간을 보내야만 안다. 다시는 그 시간이 오지 않음을..


더는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내가 받은 유일한 하루다. 하루를 건강을 챙기고 고향 향기를 맡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며 오늘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있다. 1분 1초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 고향이 있다는 것만으로,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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