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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r 18. 2022

아이는 유치원 생활 공유에 난 그저 공감만 했다

엄마 에세이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아이는 유치원 다닌 지 불과 3일 만에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 매일 씻을래"

"겨울은 이틀에 한 번 씻잖아. 자주 씻으면 피부가 건조해져"

"그건 싫은데, 내 코에 하수구에서 나는 똥오줌 냄새가 난다 말이야"

"엄마 코에는 우리 여니에게 향긋한 향만 나는 걸"

"엄마 말은 못 믿어. 나 매일 씻을 거야"


이틀에 한 번 샤워하던 아이가 귀찮다고 말하지 않고 매일 씻기로 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아이는 무척 부끄러워했다. "너 혹시 유치원에 마음에 든 남자 친구 생긴 거야" 이 말을 듣던 여니는 부끄러워서 시선을 피했다. 엄마가 모르는 척해줬으면 좋겠다는 뉘앙스로 얼굴에 표을 냈지만, 엄마인 나는 모르는 척하고 계속 물었다.


"응, 우리 반에 눈썹에 상처 난 친구가 있어. 그 아이가 조금 마음에 들거든"


이제 75개월 아이가 한 말에 웃음이 났다. 그 친구와 다른 친구에게 좋은 향기만 나는 자신이 되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욕조에서 놀던 아이가 갑자기 거실로 나갔다. 그 이유를 모르던 나는 아이가 욕실로 들어오기를 바라며 문만 바라보고 있을 때 아이 손에는 티슈 한 장이 있었다.


"연아 그거 뭐하게?"

"나 팩 하려고"

"무슨 팩을 한다는 거야"

"나 이뻐지려고 휴지에 물 묻혀서 얼굴에 붙일 거야. 이러면 피부가 이뻐질 거 아니야"


황당 그 자체 말을 듣고서 어안이 벙벙했고 웃음이 났다. 일곱 살 여자 아이는 자신이 이뻐져야 하고 날씬해야 사랑받는다고 생각한 거 같았다. 살이라곤 없는 아이 몸에 살을 뺐다며 욕실에서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요즘 아이는 너무 빠른 거 같다. 생각을 거슬러 18년 전을 되돌아보면 그때 그 아이들은 얼굴에 관심이 없었고 몸매에 관심 없었다. 근데 요즘 아이는 얼굴에 관심이 많고 몸매에 관심이 많아져서 날씬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배 나온 엄마를 볼 때마다 뚱뚱하다며 놀린다. 작년 여름, 영도 바닷가에 갔는데 20대 여성이 딱 붙는 옷을 입고 나와 여니 옆으로 지나갔다. 아이는 아주 큰소리로 말했다.

"엄마도 저 언니처럼 날씬하고 싶지"라고 말이다. 얼굴이 새빨갛게 된 딸 얼굴은 옆에서 지켜보던 친정엄마가 듣고선 웃었다.

"엄마도 저 언니야처럼 날씬해지려면 밥 많이 먹지 말고 저녁에 아무것도 먹지 마."

곁에서 듣고 있던 친정엄마가 한마디 거들었다.

"여니 엄마는 많이 안 먹는데 관리를 안 해서 살이 찐 거야. 여니도 엄마가 날씬하면 좋겠어"

"응, 할머니. 엄마가 날씬하면 이쁜 옷도 입고 이쁜 얼굴이 될 거 같아"


아이에게 자주 듣는 소리가 '뚱뚱하다' '화장하면 엄마 얼굴 못 생겨진다' 등 다양한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다. 아이 말을 들을 때마다 긴장한다. 그리고 경각심을 갖게 된다. 아이 말에 거울을 한번 더 보게 된다.

확진되고 나서 제대로 먹지 못해 볼살이 빠졌는데 그걸 아이가 먼저 알았다.


"오늘 엄마 얼굴이 날씬해졌네"라고 말이다. 매일 나는 아이에게 평가를 받는다. '오늘은 살이 빠졌다.' '오늘은 얼굴이 이뻐 보인다'등 그때그때 다양한 말을 듣고선 크게 웃는다.


"엄마 나 핑크공주로 유치원에 갈 거야"

"핑크공주라면 옷을 핑크로 입고 갈 거야?"

"머리에는 핑크 고무줄, 티셔츠 핑크, 바지 핑크, 양말 핑크, 신발 핑크, 마스크 핑크, 그리고 팬티도 핑크로 입을 거야. 외투 핑크 있지?"

"있는데 다 핑크로 하고 갈 거야? 엄마는 이상할 거 같은데"

"나는 이쁠 거 같아. 남자 친구가 뭐라고 할까?'

"이쁘다고 하겠지. 근데 여니야 친구가 뭐라고 말할까 가  아니라 여니가 만족하면 그걸로 성공한 거야"

"치, 나는 그래도 친구들에게 이쁘다는 소리 듣고 싶단 말이야"


어제저녁에 했던 대화였다. 아침 눈을 떠서 핑크 옷을 점검하고 유치원을 갔다. 하원하는 아이에게 물었다.

"여니야 오늘 핑크 핑크 한데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이쁘다고 했어"

"아니. 속상해. 아무도 말해주지 않더라"

"엄마가 마구마구 말해줄게. 우리 여니 너무 이쁘다. 핑크 공주는 여니가 최고야"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듣고 싶다는 마음을 안다. 속상해하는 아이에게 "속상했겠구나"라고 마음을 위로해주니 아이는 속상하지 않다며 다음엔 노랑 옷을 입고 노랑 공주로 원에 갈 거라며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아이는 작은 사회 공간에서 자신이 뭐를 원하는지, 뭐를 바라는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배우고 또 배우고 있다. 남의 눈이 아닌 자신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기를 바라며 나 역시 엄마가 아닌 나로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나 자문했다.


나는 현재 만족하고 있다. 뚱뚱한 몸이라면 운동해서 빼면 되고 피부가 거칠하면 집에서 홈케어를 하면 된다. 나에게 주어진 5시간을 아주 알차게 보내는 것 또한 만족한다. 이렇게 만족하니 아이는 4월부터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오후 5시 10분에 집에 오겠다고 말했다.


이번 달 피아노를 그만두고 발레는 주말로 미루었고 미술은 금요일 하루만 일찍 하원하는 걸로 했다. 심리센터는 선생님과 시간을 조율하면 평일에는 유치원에서 원 없이 친구들과 즐길 수 있을 거 같았다. 여니 혼자 일찍 마치니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가지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던 아이가 드디어 늦게 집에 오겠다고 선포했다. 아이가 늦게 집에 오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해줘서 다행이고 고마웠다.


아이 마음을 공감해주는 날에는 내 마음까지 공감되었다. 내가 아이 마음일 때 우리 엄마는 내 마음을 공감해줬을까? 공감해주지 않았다. 내가 잘 못 했다고 말했다. 엄마 말 한마디에 마음의 상처가 났고 스스로 내 아픈 마음을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이유를 타인에게 찾으려고 했다. 타인에게서 잘 못을 찾았을 때는 잦은 싸움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화나고 짜증 나는 내 마음을 공감해주고 위로해 준 지금 짜증은 없어졌고 화는 잘 내지 않는다. 참 신기했다. 내가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니 타인의 아픈 마음을 공감해주게 되었다. 공감해주니 아이는 원에서 있었던 일, 속상한 일을 잠들기 전까지 읊어댄다. 아픈 마음을 엄마가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아이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생겼다. 아픈 마음, 행복한 마음을 공감해주면 세상에 짜증 나는 일도 화내는 일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아이와 나는 매일 환하게 웃으며 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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