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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Apr 10. 2022

분노 풀어내기에는 욕만한 것이 없다

엄마 에세이

오래전 친한 언니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멋진 언니를 알게 된 나에게는 영광 그 자체였다. 내가 가장 못했던 영어를 잘하는 언니였다. 그것도 고등학교 선생님, 영어 선생님이라는 말에 존경을 안 할 수 없었다. 그 언니와는 종교적으로도 잘 맞았는데 언니가 육아 휴직을 내고 집에 있으면서도 사찰 가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찰을 갈 때마다 같이 가자는 말에 고마웠다. 나 또한 절에 올라가면 맑은 공기와 산새 소리에 잠시 근심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깐.     


그 언니의 고마움에 점심을 대접했다. 진심은 통한다고 그랬던가? 언니가 나를 붙잡고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알려 주었다.     

“너 그러다가 속병으로 쓰러져. 마음에 담고 있는 화를 스스로 풀어내야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럼 언니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데”

“음, 난 나만의 해소방이 있어”

“앵, 그런 방이 있어. 그 방에서 언니는 뭐하는데”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거실에 티브이를 보게 허용한 뒤 아이들이 집중하는 틈에 나는 스트레스 해소방에 들어가지.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를 화나게 한 사람들 이름을 부르면서 욕해

“정말이야? 어떻게 욕하는데. 나는 욕하는 사람 경멸하거든. 근데 그런 욕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거야”

“그래. 너 안 해봐서 몰라. 일단 입이 트이면 내가 입에 담지 않은 욕이 술술 나오는데 그 쾌감으로 곧 내가 품고 있던 분노가 싹 사라지게 해. 일단 십자생부터 하거든. 네가 뭔데 나를 하녀 취급하냐며 내가 그 사람 앞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한 말을 혼자 하는 거야”

“우와. 그런 방법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하구나. 나는 처음 알았어. 그저 상대에게 받은 상처를 마음속에 담고 언제 어떻게 폭발할지 모르는 마음으로 살아온 거 같아. 이런 나이기에 곁에 있던 사람들이 힘들어한 걸까?”라는 내 말에 언니는 조용히 들어주기만 했다.     


스스로 분노를 풀어내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야만 아이들에게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해보지 못한 행동에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습관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에 그 언니가 알려준 방법을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안 언니는 카톡으로 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 아이들이 들리지 않게 소리 내어 욕을 하며 우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있다고 했다.     


언니와의 인연이 끊기지 않을 때까지 나는 욕 근처에 갈 수 없었다. 욕을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배우며 컸던 나이기에 입에 욕을 담을 수 없었다. 욕을 하게 되면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24시간 엄마와 함께 한 아이가 있었기에 종이에 욕을 썼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는 노트북을 켜고 오타를 생각하지 않고 쉼 없이 써 내려갔다. 8년 전 언니가 알려준 분노 해소 방법은 8년이 지난 후 욕을 하며 분노 감정을 풀 수 있었다. 


글로 표현한 분노 해소 방법은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해결되었다. 지금은 아이가 원에 가면 큰소리로 외친다. 뭐를. 욕을 마음껏 하며 등 긁기를 들고 베개를 두들기며 사정없이 두들겨본다. 후련한 기분이 들면 나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분노가 일어나지 않았다.


푸름이 교육을 전파한 최희수 소장님은 욕을 해서라도 분노를 풀어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상대가 있을 때 하는 욕은 공격성을 띠는 거지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욕하는 건 공격성을 띠지 않으니 분노를 끌어안고 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분노는 나보다 약한 아이에게 전달되는 악순환이 되는 비극의 시작이라고 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 언니가 했던 방법 그대로 지금 나는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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