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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Apr 18. 2022

버킷리스트를 작성한 나는 아주 소박한 버킷이었다

엄마 에세이

2015년 버킷 리스트를 작성은 폰에 저장했었다. 폰에 저장하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손글씨를 포기하고 폰 안에 모든 정보를 입력했다. 그런데 어느 날 폰이 깨지면서 복구가 어려웠다. 내가 기록한 곳은 주로 카카오 스트리에 입력했다. 그 이유는 아이디나 비번만 알면 손쉽게 복구가 된다는 생각으로 카카오 스토리에 입력을 했었는데 카카오 스토리 아이디와 비번을 폰에 저장해두었다는 걸 깜빡했었다. 폰이 깨지면서 복구가 어려웠고 예전 카카오스토리 아이디를 몰라 새 계정을 만들면서 앞전 버킷 리스트를 날려버렸다. 이럴 때는 기계보다는 아날로그 방식인 수기가 가장 안전한다는 걸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상황에서는 쓰는 일이 버거웠다. 아니지. 쓰는 습관이 없었던 것이고 몸이 아파서 생각을 폭넓게 생각하지 못했다. 혼자 살아가는 일이 처음이라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벅찼던 그때였다. 아프면 몸과 마음이 나약해지는 법이다. 아프지만 다시 일어나서 출근을 했고 열심히 장사를 했다. 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손님은 오지 않았다. 그때 매장 책상 앞에 앉아 노트에 이것저것 쓰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본 좋은 글귀를 나열했고 지금 현재 기분을 나열하며 무너지고 나약한 마음을 다 잡았던 것이 쓰는 일이었다. 하지만 살아가는 인생이 엉망진창이다 보니 쓰는 일을 규칙적이지도 꾸준하지 못하게 되었다.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모든 것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혔다. 지금은 노트가 풍족하고 볼펜이 풍족해서 그런가 여기저기 쓰다 만 노트가 많았다. 


어떤 노트에는 필사를 하며 노력한 흔적이 있었고 어떤 노트에서는 그동안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정보를 글로 옮겨놓았고 어떤 노트에는 버킷 리스트와 꿈 아래 목표를 나열한 노트가 여러 권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노트를 보며 한 곳에 모아서 쓰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선 듯 다이어리를 사지 못한 이유는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책꽂이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다이어리 모습에 돈이 아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위해서라도 일괄성 있는 노트가 필수라는 것이 답이었다. (작은 노트 그리고 가방에 쏙 들어가는 노트를 원했다) 한 권으로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건 시간 낭비를 막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방법 중 하나였다. 나에게 있어서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SNS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다이어리 이야기를 보면서 일괄성 없게 노트에 적지 말고 내가 원하는 다이어리에 올해 목표, 한 달 목표, 하루치 목표를 기재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주일 스케줄을 기재하고 버킷리스트를 다시 작성하며 어떨까 하는 생각. 다이어리 한 권이면 내 일상이 다 보이는 것이 소소한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에 남아도는 노트가 아까워 눈에 보이는 대로 쓰다 보니 어디에 뭐를 적었는지 찾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여기저기 쓰다만 정보를 찾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결국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필사를 하라는 말에 필사를 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손으로 써야 기억에 남는 걸까? 노트북에 쓰면 안 되는 걸까? 정말 필사를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기억에 남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건 나만의 방식이 필요했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따라한 방법은 나와 맞지 않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글이 막히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글이 풀리지 않아 브런치 앱을 열고 글을 썼다. 제법 글이 술술 풀렸고 기억나지 않던 생생한 경험이 떠오르는 기가 막힌 경험을 하고서야 나는 브런치에 매번 글을 썼다. 나와 맞는 곳은 바로 브런치였다. 어떤 날은 이런 경험을 했다. 프린터 글을 읽고 필사로 글을 수정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감정을 썼다. 수정한 종이를 보며 한글파일에서 수정하는데 필사한 글과 다른 감정이 작용되었고 전혀 다른 문장이 탄생되는 경험을 했다. 참 신기했다. 나는 내가 가진 뇌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종이에 쓴 감정과 노트북에 쓰는 감정이 왜 다른지 궁금했다. 


기계에 쓴 꿈과 목표 그리고 버킷리스트가 종이에 쓴 꿈과 목표 그리고 버킷리스트가 달랐다. 이제 나의 종착지는 기계에서 수기작업을 한 다이어리가 되었다. 한글파일에 적어 둔 글과 다이어리 글을 비교하며 빠진 목록을 다이어리에 채워둔다. 나의 버킷 리스트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나 혼자 느끼고 싶고 가지고 싶은 그거. 바로 혼자 커피 마시고 혼자 서점을 가고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버킷 리스트에 나열되어 있었다. 이걸 올해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어떤 거는 오늘 이룰 수 있는 버킷이었지만 어떤 것은 제법 시간이 걸리는 버킷도 있었다. 하나씩 이룬 것을 기록하면서 버킷 리스트 목록을 지우는 그 쾌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다이어리를 구입했고 열심히 기록 중이다. 


20년 만에 자유를 얻은 나는 혼자 도서관을 가고 혼자 커피를 마시고 혼자 서점을 가고 혼자 영화를 보며 혼자 유명한 곳을 구경하는 것이 꿈이라는 걸 글로 쓰고서야 깨닫는다. 혼자 옷 구경도 실컷 하고 혼자 바다를 보며 멍 때리는 것도 하고 싶다. 그동안 제약이 많았던 삶에서 벗어나 제약 없고 제제가 없는 그런 삶을 위해 '혼자'라는 키워드를 안고 무조건 '혼자의 자유'가 되어본다. 혼자 자유를 글로 풀어내 듯 혼자 자유를 영상으로 제작해서 타인과 소통하는 내가 되어가기를 오늘도 나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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