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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Apr 23. 2022

믿는만큼 자라주는 아이와의 대화에서 나 자신을 믿기로

엄마 에세이

아침에 일어난 아이가 갑자기 목이 아프다고 했다. 코로나를 걸린 전적이 있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열이 나지 않아서 안도를 하며 따뜻한 물에 설탕을 약간 타서 먹이며 "오늘 피곤하면 유치원 쉬어도 돼"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조건 "노"라고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피곤해서 몸살이 온 거 같은데 이런 날은 집에서 쉬면 나아질 증상이었다.


게다가 날은 왜 흐린 건지, 아이는 이런 날을 창밖을 보며 말했다. "오늘따라 이런 날이야. 난 이런 날 싫어. 해가 나왔으면 좋겠어" 말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럼 오늘 발레 학원을 가지 마까?"라고 물었다. 그것 또한 싫다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6년 동안 집에서 놀던 아이는 세상이 즐겁고 재미있는 모양이다. 아픈 몸이지만 유치원을 꼭 가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오늘 밥 있잖아. 계란 오믈렛을 놓칠 수 없어. 그리고 사과 나오잖아. 그것도 놓칠 수 없단 말이야"라고 엄마에게 당당히 유치원을 가야 할 이유를 밝혔다.


그럼 발레는 왜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당연히 가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몸이 아프면 쉬어도 된다고 말했지만 아이는 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 의사가 확고하니 나는 아이 하원 시간을 맞추어 유치원에 가야 한다. '이런 날 (흐린 날)은 집에서 쉴까 말을 하다가 이내 아니야 나는 유치원 가야 해' 마음을 다 잡으며 자신이 가야 할 그곳으로 향했다.


열정이 대단한 아이는 늘 엄마를 깨닫게 한다. '엄마 나처럼 현실과 타협하지 말고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해'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흐린 날 축축 쳐지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뉘앙스의 아이 말은 무슨 뜻인 줄 나는 알 거 같았다. 해가 쨍쨍하면 없던 힘도 날 텐데 흐리니 주저앉고 싶고 늘어지고 싶은 그 마음. 아이와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도 이런 날 싫어. 비가 확 오던지 아니면 해가 나면 기운이 날 텐데, 이런 날은 하루 종일 자고 싶어" 말했더니 아이도 엄마 말에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린 날이어도 비가 오는 날이어도 자신은 유치원을 가야 하는 걸 인지한 아이는 학교 생활을 잘 할거 같다. 이제는 한시름 놓았다. 믿는 만큼 자라 주는 아이는 자신을 더 믿어보라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아이를 믿는 만큼 나 자신을 믿어주기로 했다. 늘 믿어주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만큼 나를 믿어주지 않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나를 반성하는 날이었다.


흐린 날 몸이 찌뿌둥한 아이, 행여 아프면 선생님에게 말하라고 했더니 아이는 "왜, 말해야 하는데. 나는 그냥 놀 거야" 말했다. "아니 아프면 병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먹으면 덜 아프잖아. 아픈데 참지 말고. 엄마 봐봐. 아픈데도 아프다고 말 못 하다 많이 아프잖아. 아프면 참지 말고 어른들에게 도움 요청을 해야 한다. 알았지" 아이는 말하기 싫다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등원했다. 


혹여 아이 상태를 선생님이 모르면 안 될 거 같아 알림장을 작성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아이와의 소소한 대화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요즘. 엄마와 대화가 된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어떨 때는 내가 대견스럽다. 아장아장 걸을 때가 엊그제였는데 이제는 엄마와 소소한 대화를 하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아이가 믿음직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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