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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Apr 25. 2022

육아를 하다보면 거울 육아가 자연스레 된다

엄마 에세이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났다. 목요일 아침 목이 따갑다는 말에 쉬었으면 했는데 아이는 원에 가겠다고 했다. 원에 아이를 보내고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 직감은 남달랐다. 결국 목요일 밤 최악의 컨디션으로 잠을 자던 아이는 아침에 고열이 시작되었다. 혹여 코로나인가 싶어 자가 키트로 검사했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고 아무래도 몸살인 거 같았다.


"엄마 밤에 쉬하고 왔는데 가슴이 벌렁벌렁거렸고 머리가 아팠어. 그리고 다리가 아팠어"라고 새벽 6시 50분에 깨어 엄마를 바라보며 하는 첫마디가 이러했다. 쉬다 아침밥을 먹자고 했던 엄마 말에 밥 맛이 없다며 먹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앉혀 밥을 먹이면서 아이 손이 만졌는데 정상 체온이 아니었다.


"너 열나는 거 아니야? 체온 재보자" 밥 먹다 놀라 체온을 쟀다. 열이 올라서 가슴이 뛰었고 머리가 아팠던 것이다. 열이 오르면 온 몸이 쑤시는데 아이는 자신만의 언어로 나에게 말했다. "여니야 열이 38.5야. 유치원 가지 말고 하루 쉬어야 해. 열나면 유치원 못 가" 엄마 말에 대성통곡을 하며 친구와 놀지 못하는 것과 간식으로 나오는 마카롱을 먹지 못하는 아이의 슬픈 울음이 그저 웃음이 났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마카롱은 엄마가 사줄게. 일단, 열부터 내리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병원 다녀와서 열이 나지 않으면 오후에 미술 학원은 가자" 말했더니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진정한 아이였다. 아침을 먹이고 해열제를 먹이니 30분 채 되지 않아 열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열이 내리니 놀기 시작한 아이는 "엄마 나 유치원 갈래"라며 말했다. 오늘은 그냥 쉬고 월요일 건강한 몸으로 유치원 가자고 달랬다. 아이는 두 돌 되기 전 입원한 적이 있다. 고열만 나는 아이는 다른 증상이 없었다. 병원에서는 고열로 인해 입원을 권장했고 탈수가 생기면 안 된다는 의사 말에 바로 입원을 했다. 


검사란 검사를 다 했는데 열은 나흘이 흘렸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의사 선생님 회진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이러스가 두 가지이더군요. 하나를 치료하니 또 다른 바이러스가 열을 일으킨 거 같아요. 감기 바이러스와 달랐어요. 일단 경과를 지켜봅시다"라는 말과 함께 일주일이면 되었던 입원은 14일이 되어서야 퇴원하게 되었다.


열이 쉽사리 내리지 않은 아이는 해열제와 싸워야 했다. 두 돌이 되기 전이니 천방지축처럼 걸었던 아이를 제지하는 일이 버거웠다. 혈관이 없던 아이 링거 줄이 뽑힐 거 같아서 아이를 업고 다녔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렇게 아이는 열외에는 그 어떤 증상을 나타내지 않았다.


지금도 역시 열이 내리니 목은 아프지 않고 몸은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머리도 아프지 않으니 병원 가지 말자고 말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목이 많이 부어 며칠간 열이 날 거 같다는 처방이 내렸다. 약만 먹으면 잠을 자던 아이는 토요일 오후 4시간이라는 긴 낮잠을 자고 일어나 개운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확진 후 쉬어야 하는데 곧바로 유치원을 다녀야 했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아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패턴 때문에 몸이 힘들었던 것이다. 


유치원 생활 한 달이 넘으면서 한계에 도달한 것이고 몸으로 반응한 것이 바로 몸살이었다. 삼일을 엄마와 지내면서 심심하다고 말했다. 몸이 좋아지니 유치원만 생각난 아이는 "여니야 아프면 밤이든 낮이든 무조건 어른인 엄마나 선생님에게 말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약을 주고 병원을 가거든. 너 금요일 열이 나는데도 유치원 갔으면 선생님에게 말했겠어" "아니, 참았겠지"라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참는 건 나와 닮은꼴이었다. 몸이 아프더라도 어떻게든 자신이 가야 할 그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인 아이는 가정보육을 하면서 무조건 참았다. 지금은 아이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상태를 말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참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니깐. 새벽에 아픈 아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나는 아이에게 미안했다. 혼자 끙끙대며 아침이 되기를 바랐을 아이 모습에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어린 시절 아파하는 몸을 어른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앓다 큰 병이 되고서야 어른에게 말했고 병원을 찾았던 그 시절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여니야 엄마에게 꼭 말해줘. 조금만 아프더라도 조금만 기분이 좋더라도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마음으로 보여줘. 그래야 엄마가 여니를 잘 돌볼 수 있어"라고 말했다. 아픈 마음, 기쁜 마음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말해주기를. 속으로 끙끙 앓지 말고 엄마와 함께 해결하자고 했다. 


항생제 약을 먹고 설사하는 아이는 제법 목 상태는 예전처럼 돌아왔고 내일은 자신이 원하는 유치원으로 돌아간다고 기뻐한다. 유치원 다니면서 살은 더 빠진 아이를 위해 기력 회복이 될 수 있는 음식을 찾아야겠다. 아픈 아이를 바라보며 나의 13살 그 아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아프지 마, 더는 너를 방치하지 마'라고 말했다. 아이는 나의 거울이다. 내가 잊고 있던 상처를 꺼낼 수 있어서 아이를 나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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