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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16. 2022

그런 오후

엄마 에세이

늦은 오후가 어김없이 나에게 찾아왔다.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그런 오후, 포근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런 오후, 엄마가 맛있는 밥을 하고 나를 기다리는 그런 오후,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그런 오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런 오후,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오후, 오늘도 잘 보냈다며 웅크린 어깨 힘을 뺀 그런 오후가 늘 우리에게 온다.


30대 내가 가정을 꾸리고 나니 늦은 오후에서 이른 저녁으로 넘어가는 그 시간에는 주부가 가장 바빴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남편, 아이들을 위해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하는 그 시간이 바로 그런 오후였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면 상큼한 장조림 냄새, 포근한 갈치조림 냄새, 상큼한 순 깻잎 무침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는 이런 오후가 되면 상상을 한다. 굴뚝 있는 한옥에서 늦은 오후에 맡을 수 있는 음식 냄새가 그렇게 정겹고 포근해서 언젠가는 이런 집에서 살아보겠다고 언젠가는 포근한 집을 꾸리라 다짐했다.


지금은 충분하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면 음식 냄새로 인해 코끝을 자극한 아이는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오늘은 무슨 음식을 하길래 냄새가 좋아"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으면 마침 내가 원하는 그 풍경을 이루어냈구나 감격한다. 참 감사한 일이다.


집 형태만 다를 뿐. 지금 내가 원하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무의식에 저장한 그거, 잠재의식 깊숙한 곳에 고이 간직한 그거 바로 그런 오후였다. 


편안한 공간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그 공간은 내가 만들고 내가 이루어내고 있다. 현재가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을, 나는 오지 않은 미래를 갈망하고 살았고 힘겹게 싸우며 살았다.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오는 일을 기꺼이 맞아들이고 가는 일은 애써 붙잡지 않은 날들로 장식하려고 한다. 그런 오후는 항상 나에게 힘을 준다. 다시 살아내라고, 잘 살아냈다고 말이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그런 오후는 힐링이자 에너지다. 그래서 참 좋다. 그런 오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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