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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May 25. 2022

늘 그렇듯,

엄마 에세이

늘 그렇듯,

친정엄마는 맏이인 나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한 음식은 목구멍에서 넘어가질 않는다고 나를 볼 때마다 말한다.

마음에 걸려 요즘 한가한 틈을 타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오늘 어디 갈 건데. 같이 갈래"라고 말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는 "언제 갈 건데?" 

묻는다.


가까이 살지만 매번 함께 할 수 없다고 엄마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늘 달고 살려고 했다. 여동생이나 남동생에게는 매달리지 않는데 반면, 나에게는 자석처럼 이끌림이 있는 건지 맏이와 하기를 바란다.


일찍 만나 일을 보고 엄마와 점심을 먹는데 남동생 이야기 나왔다. 엄마 말은 남동생 가족이 오면 귀찮다고 했다. 


"왜 귀찮은데. 딸과 아들 다 같은 자식이잖아"

"집도 좁은데 며느리와 손자가 오면 내가 귀찮아서"

"우리는 그 좁은 집에 여름이면 엄마 보러 왔고 장신인 사위도 여기서 잤어.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야"

엄마는 딸과 아들은 다르다고 했다.


난 아들을 키운 적은 없어서 사위와 며느리 사이의 괴리감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 다 같은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뭐든 편안할 텐데 말이다.


"그건 엄마 고정관념이야. 마음 편안하게 동생에게 하는 것처럼 해야 며느리도 편안하게 있다 가는 거야"

엄마는 밀면을 먹으며 말이 없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그러다 엄마가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텐데 그때는 남동생의 원망을 사지 않겠냐고 물었다.


"남동생 내외가 온다면 '오냐 오너라'하며 가벼운 마음을 받아주면 안 돼. 나에게 했던 것처럼 말이야. 왜 그렇게 부담감이 생겨서 오는 아이들을 못 오게 하고 동생 집으로 오라고 해도 안 가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렇게 아들 아들 했으면서 막상 손자를 보니 보기 싫은 거야. 이제는 나에게 그만 기대면 안 되는 거야. 동생에게는 '내가 한 밥이 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는 말했어"

"하지"

"뭐라고 말했는데"

"내가 입맛이 없어서 큰 누나랑 뭐 먹으려 왔다고 했지"

"그게 뭐야. 그러면 듣는 입장에서는 엄마가 입맛 없어도 누나가 있으니깐 괜찮겠네라고 생각하잖아. 나에게 하는 것처럼 징징거리며 말해야지"

"그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럼 나는 부담스럽지 않고. 그건 엄마 생각이 잘못됐어. 자식은 다 같은 자식이야. 엄마 상태를 자식 모두 알아야 하는 거야. 근데 엄마는 나에게 유독 책임감을 주잖아. 나도 힘들어"

"내가 무슨 부담을 주는데" 엄마는 자신이 맏이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에게 엄마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입맛이 없어서 하루 종일 굶었다 등 말을 하면 나는 마음 편안하게 보내는 줄 아는 거 같은데 아니야. 늘 걱정하고 걱정돼. 이것이야 말로 부담 그 자체야. 지금 동생들에게는 나에게 하는 말까지 하지 않잖아. 그러니 나는 속상한거야. 제발 동생들에게 엄마 현 상태를 제대로 알려줘. 그래야 그 아이들도 생각을 할 거 아니야. 엄마가 아프면 남동생 집에 가야 하잖아. 나도 아픈데 안 그래"

엄마는 내가 이런 말을 하자마자 바로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나는 내 발로 요양병원으로 갈 거야. 나 혼자 산지가 오래되어서 누구와 함께 산다는 건 힘들어"

"아니 허리가 말을 안 들어서 거동이 불편하면 어떻게 요양병원으로 갈 건데. 지금 보니 허리가 예전보다 더 아픈 거 같은데. 자식을 불러야 할 거 아니야"

"아프면 119 불러서 조용히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되지"라고 아주 간단하게 상황을 종료해버렸다.


"자식 가슴에 대 못 박지 말고 지금 건강한 것에 감사해하고 좋은 거 먹고 먹고 싶은 거 먹어. 그리고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경락도 받고 마사지도 받고 그러면서 스트레스 풀어. 외할머니처럼 치매 걸려 자식에게 대우 못 받고 마지막을 보내지 말고. 치매도 유전이래. 그래서 나도 치매 안 걸리려고 글을 쓰고 있잖아. 사람 앞날은 아무도 몰라. 신도 몰라. 그러니 제발 요양병원을 자식들 몰래 가네 마네 그런 생각 말고 지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만 찾아. 요양병원 가면 병원비는 누가 내는 건데"

엄마는 맏이 마지막 말에 웃고 말았다. 엄마 대답은 "몰라"였다.


엄마는 나름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엄마는 늘 맏이에 대한 기대감이 컸고 책임감을 오로지 맏이에게 주었다. 그 삶이 버거워 나는 결혼을 선택하고 말았다. 하지만 결혼함과 동시에 엄마는 김치를 담아 계절마다 무거운 김치통을 이고 지며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자식들 집에 갔다 줬다.


결국 지금 측만증인지 협착증인지 알 수 없는 병으로 독한 약을 복용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자식을 돌보았는데 지금 자식들은 각자 삶을 산다고 멀리 있다고 늙어버린 엄마를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엄마라는 이름은 위대하고 창대하지만 끝은 늘 쓸쓸한 거 같다.


엄마의 깊은 속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던 어느 날 점심이었다. 동생들이 나만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아주 조금만 엄마에게 관심을 가지고 엄마가 못 오게 하는 건 속마음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맏이인 나는 늘 엄마와 같이 다니고 같이 먹을 수 있는 한 동네에 살아서 다른 동생보다 책임감이 더 크다. 그래서 걱정이 늘 있고 불안함이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 내색하지 않는다. 더 불안한 사람은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 생각으로 오려고 하는 아이들 막으면 엄마가 이 세상에 없을 땐 그 아이들 원망을 어떻게 감당할 건데. 온다고 하면 오라고 해. 좁은 집에서도 충분히 잘 수 있고 지낼 수 있어. 다 사람이 사는 곳인데 왜 그렇게 내외를 하고 그래. 매년 매달 오는 것도 아니잖아. 몇 년에 한 번 오는 아들 며느리를 막는 건 그건 어른으로써 하는 행동이 아니야. 오면 먹고 싶다는 음식을 하던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가. 잠자리가 불편하면 호텔에 갈 거고. 그런 것까지 걱정하면 더 불편해서 아들 내외를 볼 수 없어. 원망 살 일 하지 말고 그 아이들 선에서 할 수 있는 효도를 그냥 받았으면 좋겠다"


엄마에게 당부하며 식당을 나왔다. 엄마와 대화하면서 며느리에 대해 조금은 편안하게 생각하라고 나의 경험까지 말하며 설득했다. 나는 며느리 노릇에 더해 그 집 아들 노릇까지 하느라 온 몸이 망가졌다. 내 몸은 망가졌지만, 그들은 자신들 때문에 며느리 몸이 상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내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는 온몸을 장악했다. 날카롭고 예민한 성격을 지닌 나로서는 미움받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용을 쓰며 한 집안 며느리 노릇을 두배 이상 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경험을 엄마에게 말했더니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엄마 며느리는 편안한 거라고, 어버이날인데도 오지 않는다고 눈치 주는 사람 없고 엄마 생신인데도 오지 않는 며느리를 미워하는 사람 없으며, 새해, 연말에 오지 않아도 엄마나 가족들은 말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결혼하고 3년이 지났지만 한 번 오고는 그 후로 엄마를 찾지 않은 동생이 야속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말한다.

동생 집에 가서 손자 재롱도 보고 며느리 밥도 얻어먹으라고. 날마다 딸 밥만 얻어먹지 말라고 말이다. 엄마는 그저 웃는다. 어설퍼서 자신이 요리하고 만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엄마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니 남이 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한다. 내가 주방에 서면 저리 가라고 밀던 엄마는 이제는 식탁 앞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주방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한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자식에게 얻어먹을 수 있는 건 다 얻어먹으라고 한다. 나 또한 딸을 키우는 엄마라서 딸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주지 않으려고 지금도 노력 중이며 자기 검열 중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엄마로,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 아닌 당당한 엄마로, 초라한 엄마가 아닌 멋진 엄마로 살기 위해 삶 속에 녹아내린 일상을 글로 그리고 있다.


홀 엄마와 자식 사이는 늘 책임감이 무겁다. 난 홀 엄마의 맏이 딸로서 그리고 딸을 키우는 엄마 중간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나도 내 발로 요양병원에 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그냥 이대로 건강하게 살다 자식에게 웃으며 이 세상을 떠나기로 다짐한다. 믿으면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온다는 걸 아니깐 매일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건강하게 살다 자식이 보는 앞에서 웃으며 작별하기로 말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도 건강하게 살다 자식들 앞에서 웃으면 작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거 원 없이 하도록 도울 것이다.


세상에 미련이 남지 않도록 부지런히 아들도 보고 며느리도 보고 손자도 보며 남은 여생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맏이가 엄마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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