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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14. 2022

딸은 엄마를 지적했다

엄마 에세이

엄마 머리가 왜 그래. 당장 풀어


몇 달 전 일이다.

한여름 덥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꾸미지 않은 모습이 은근 편안해서 편안한 모습 그대로 아이를 데리러 가던 날. 아이는 자신이 싫어하는 모습을 한 엄마를 보자 말자 인사는커녕 짜증을 냈다.


"오늘 머리가 왜 그래. 머리 풀어. 정말 보기 싫어"

"왜? 엄마는 이 머리가 시원하고 좋은데"

"제발 플어. 꼴 보기? 싫어"


'꼴 보기 싫다'라는 말에 살짝 상처를 입었지만 애써 덤덤하게 아이에게 물었다. 너의 마음이 어떠하길래 엄마 머리스타일이 싫은지..


아이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앞 머리가 좀 나와야 하는데 앞 머리가 나오지 않았잖아. 다 묶으니 보기 안 좋다 말이야"

"엄마는 잘 보일 사람이 없는데, 그래서 좀 편안하게 있었어. 엄마가 편안한 거 싫어?"

"난 엄마 이런 모습 싫단 말아야"


아이는 달랑 묶어 있는 엄마 스타일이 싫어했다. 잔머리가 나와 있던 예전 모습에서 잔머리까지 다 올려버린 스타일이 아이에게 낯설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당장 풀어라며 화를 냈다. 덥고 짜증 나지만 아이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고무줄을 풀고 목덜미에 머리카락이 들러붙었지만 웃었다. 


격하게 화를 내는 아이 모습을 보며 지금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낼까? 생각했다. 결론은 내가 잘 보일 사람은 나 자신과 내 아이라는 걸. 그걸 잊고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해 깨끗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는데 아이 반응에 새삼 내가 그러고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자신에게 엄마 모습이 아름답고 이뻐 보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매일 엄마 옷차림과 메이크업 한 모습, 배가 나왔는지 들어갔는지부터 점검하며 엄마를 자신의 눈 거울로 엄마를 평가했다. 


늙은 엄마라서

뚱뚱한 엄마라서


엄마 자신을 더 가꾸었으면 하는 아이 마음을 읽었다.

늙어 버린 나 자신을 다른 이와 비교하며 "엄마는 이제 돌아갈 수 없겠지" 말을 반복한 건 사실이다.


돌아가고 싶은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으니깐. 후회 아닌 후회를 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알아차린 것이다. 


이제는 외출하지 않아도 나 자신을 위해, 아이를 위해 이쁜 나, 이쁜 엄마만 보여야겠다.

공지영 작가 '딸에게 주는 레시피' 책에서 집에 있더라도 깨끗한 옷을 차려입어라고 했다. 세수를 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늘어진 옷이 아닌 외출할 것처럼 차려입은 옷에는 행동과 말에 교양이 묻어난다. 집에서는 누구나 조심스럽지 못하고 풀어지기 쉽다. 그러나 내 몸을 청결하게 하고 옷을 차려입으면 조심하게 되고 긴장하게 된다.


예전에 친정엄마가 한 말이 생각난다.

"집에 있다고 늘어진 옷에 고춧가루 묻은 옷 입지 말고 깨끗한 옷 입고 지내"라는 말이..

공지영 작가의 말과 같았다.


목이 늘어진 옷

요리하며 튄 양념장으로 얼룩진 옷은 그 누구에게도 이쁨을 받을 수 없다.

나조차도 그런 모습을 경멸했다. 근데 경멸한 그 모습을 어느 날 내가 하고 있었다.

'집에 있는데 꾸미면 뭐해. 화장하면 지우는 일이 귀찮아. 이대로 있다 잘 건데 잠옷은 왜 입어. 아침에 일어나서 옷 갈아입는 건 정말 시간 낭비야'라고 부정적인 생각이 그득한 예전의 나였다.


근데 지금은

'설사 외출하지 않더라도 만약을 위해서 씻자. 남들보다 유분이 많은 두피를 소유한 나니깐 조금은 번거롭지만 씻으면 기분 좋잖아. 이렇게 씻으면 가까운 브런치 카페라도 갈 수 있는 빌미를 만드는 거니깐 깔끔하게 있자. 늘어진 옷은 기분을 엉망으로 만드니깐 외출복을 입고 집에 있자. 소파 생활을 하니깐 원피스도 괜찮아. 일단 화장을 하는 거야. 기분이 나쁠 때는 더 나를 꾸며서 불쾌한 감정을 버리자. 어차피 저녁에 씻으니깐 메이크업해도 괜찮아. 잘 때만큼은 청결하게 자야 해. 음식 하던 옷 그대로, 화장실 청소한 옷 그대로 자던 예전의 나를 버리는 거야. 락스로 청소할 때는 얼룩이 많은 옷을 입고 청소하고, 음식 할 때는 앞치마를 입고 하자. 그리고 잘 때는 백설공주처럼 아름답게 잘 거야. 아침에 옷을 갈아입는 시간은 불과 1분이면 되는 걸 그때는 왜 안 했지'라며 요즘은 나를 공주로 대접하고 있다.


피곤하고 아플 때만 배제하고 꾸준히 하는 루틴이다.

매일 씻으면 기분이 상쾌하다. 하루만 건너뛰면 온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거 같은 느낌으로 하루 종일 찜찜하게 지내게 된다. 그 기분이 싫어 매일 씻는다.


나를 사랑하지 않은 예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요즘 조금씩 해본다.

변하는 내가 참 좋다.


나를 사랑하게 되면 일어나는 변화가 참으로 대단하고 근사하다. 공지영 작가의 글처럼 나를 소중히 대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내가 되기로 오늘도 약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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