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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Oct 22. 2022

일하지 말고 쉬세요 이 말이 힘든 이유

엄마 에세이

디톡스를 하면서 몸을 쉬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근데 난 쉬지 못하고 계속 일을 했다. 몸이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는데도 지금 당장 하지 않은 일까지 모조리 꺼내어 나를 괴롭혔다. 이런 나는 어릴 적 외할머니에게 들은 말로 인해 쉬면 죄책감이 들었다. 옛날분은 여자가 게으르면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말을 종종 했다.


잠시 누워 있는 내 모습에 "여자가 그렇게 게으르면 어디다 쓸래" 말하는 할머니 눈빛은 경멸에 차

있었다. 그분 역시 어린 시절 할머니의 어머니에게 듣고 자랐고 그게 올바른 교육이라고 여기고 손녀에게

했던 것이다. '여자'는 부지런해야 하고 집안일을 미루거나 엄마를 돕지 않은 딸은 불효를 저지르는 일처럼 말이다. 


외할머니가 아프기 전까지 나를 보면 했던 말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누구도 나에게 일해라는 압박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자식인 엄마가 나에게 동생에게 특히 할머니 말 그대로 했다.

남동생에게는 기분 상하는 말, '남자라서'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자매에게는 '여자라서' 말을 했다.


난 워낙 정리하는 걸 좋아하고 미룬 정리를 할 때마다 엄마는 별말하지 않았지만 여동생은 선천적으로 느린 편이라 엄마와 한 집에 살면서 수많은 비난을 듣고 있었다. 입었던 양말이나 옷을 숨기는 이상한 버릇을 목격한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며 하소연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동생에게 물었다. 그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자신 역시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엄마에 대한 반항과 함께 자신을 봐달라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디톡스를 하면서 몸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잠시 쉬어보라고 했다. 근데 난 쉬어보라는 말 한마디에 화가 났다.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만드려고 그러나'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디톡스를 하면서 처음 한주는 몸이 정말 힘들었다. 무기력함으로 눕고 싶을 만큼,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다. 쉬고 싶다고 생각들 때쯤 "힘들면 쉬세요. 쉬셔야 몸의 균형을 맞추어요. 왜 못 쉬세요?" 물음에 외할머니가 했던 아주 오래된 '여자는 게으르면 못써' 말이 떠올랐다.


쉬어보라는 말이 거슬렀던 이유, 

쉬면 하늘이 무너지고 집까지 무너지는 줄 알았던 이유,

난 게으른 사람이 아니야. 몸이 부서져라 일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쉬지 못하면 아이에게도 쉬어라는 말을 못 한다. 다른 사람이 여유롭게 쉬는 모습조차 꼴 보기 싫어 속으로 바난을 한다. 예전에는 그랬다. 


동생 집을 찾으면 설거지며 밀린 빨래를 보면서 한숨을 짓곤 했는데 그건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잘못된 잣대와 할머니에게 쉼 없이 들었던 게으르면 안 된다는 말을 되뇌며 도와주면서 잔소리를 퍼붓었다. 결벽증에 가까운 깨끗한 언니 모습을 보던 동생은 혀를 내둘렸다. 사람은 적당한 때에 쉬어줘야 다음 날 지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데 난 미련스럽게 살아갔다.


방바닥에 머리카락 한올을 용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픈 후로 용납되지 않았던 '여자는 게으르면 안 된다'는 말을 내려놓기 시작했고 적절한 게으름을 피웠지만 습관은 다시 살아났고 아프더라도 해야 할 오늘 일을 마무리 짓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성실함, 완벽에 가까운 결벽증은 나의 몸을 아프게 했다. 몸을 써서 아픈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나를 괴롭혀 아픈 것이었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게으름'은 다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건강을 찾기 위해 시작한 디톡스는 육체만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 건강하게 했다.


이젠 다 내려놓을 수 있을 거 같다. 집이 더러워도 집은 무너지지 않았고 한 끼 정도 설거지하지 않았더라도 싱크대가 폭발하지 않으니 '여자' '쉬면 안 돼'이라는 단어를 버렸다. 쉬어야 할 때 쉴 줄 아는 것이 나를 조금 더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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