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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Oct 20. 2022

결핍은 언젠간 채워야 할 인생 활력소

딸에게 보내는 인생 메시지

"엄마 배고파! 일어나! 배고파서 배가 아파" 아이 말이 내 귓가에서 윙윙거리던 어느 날 아침.

너는 그렇게 엄마 귀에 대고 자신의 욕구를 충분히 상대에게 말하고 있었어. 


"오냐오냐 배 고픈 딸. 굶기면 안 되지" 제대로 뜨이지 않은 눈을 두 손으로 비비며 주방으로 갔지. 

너의 배고픔을 일분일초를 지체 못하는 엄마는 내면에 음식에 대한 불안감이 있단다. 


배고파 위장이 쥐어짜는 듯한 배를 움켜 잡고 지냈던 어린 내가 울면서 나에게 말했어. '어서 일어나.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잖아. 그건 너도 배고픈 거잖아. 너의 어린아이가 울부짖고 있어' 


엄마 어린 시절은 형편이 좋지 않았어. 지금 너처럼 "마카롱 먹고 싶어" 말하는 순간 그 음식을 사 올 수 없었던 시절이니깐. 엄마는 먹고 싶어 울어도 할머니는 그저 우는 엄마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고 했어. 너무 가엽게 울어서 옆집 이모가 분유 한통을 선물했다는 할머니 말에 그만큼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웠다는 걸 알게 되는 계기가 된 거지.


형편이 어려우면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못 가지구나'를 어린 나는 알아버렸고 보채더라도 엄마한텐 그 어떤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안 후였을 거야. 엄마 어릴 때는 생분유를 물에 타 먹지 않고 한 숟갈씩 입안에 털어놓고 분유의 고유한 맛을 느끼며 분유에 위안을 받고 자랐어. 위안을 받기 위해 분유가 먹고 싶다고 할머니에게 보챘는지도.


음식 결핍은 너를 낳고 채우기 시작했어. 물론 20년 전부터 조금씩 채워갔을 거야. 냉장고에 가득 채워놓은 음식. 먹지 않은 백일 떡. 누군가가 주는 음식은 내가 흔히 먹지 않은 음식이어도 받아서 냉장고에 채우는 엄마는 어린 시절 먹지 못해 울고, 구박받았던 시절을 채우기 위함이었어.


할머니가 너에게 부족함 없이 해주는 딸 행동에 한숨을 쉬었지.

"그렇게 부족함 없이 해주면 나중에 버릇없어져. 적당히 결핍을 느껴야지"

할머니 생각과 엄마 생각은 달라. 결핍이 심해 타인을 증오하는 것보다 원 없이 욕구를 충족하면 더는 거기에 미련을 갖지 않으니 엄마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


늦은 나이에 결핍을 알고 그걸 채워나가기란 어려운 일이었어. 몸은 늙어가고 먹고 싶은 음식은 다양하니 그걸 쫓아다니다 보면 엄마 위장은 소화력이 떨어지더라. 너는 음식만큼은 결핍 없이 살아갔으면 하는 엄마 마음이 커. 


돈이 없어 먹고 싶어도 먹지 못했던 시절

음식으로 구박받던 시절을 겪지 않은 사람은 음식으로 온 결핍을 알지 못해.


얼마나 초라하고 불행한지 말이야. 이모와 엄마는 그 경험을 한지라 먹지 않은 음식일지라도 모아놓고 넘쳐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지경까지 갔던 거야. 지금 엄마는 어느 정도 그 결핍이 채워졌고 많다고 생각이 들 때쯤 주위 사람들과 일찍 감치 나누어 먹어. 


결핍은 다른 사람에게는 욕심으로 보일 거야. 채워지지 않은 사랑을 끊임없이 먹어치우는 사람이 있듯. 먹지 않은 음식을 바라만 봐도 흐뭇함을 음식으로 사랑받으려고 했던 나의 결핍.


너는 음식 결핍이 아닌 사랑 결핍이 아닌 적당한 빈 공간을 비워두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걸 알아갔으면 해. 엄마 결핍은 다양해서 너에게 마구마구 사주는 물건과 음식은 엄마의 결핍을 채우고 그 옛날 그 시절 사랑을 채우는 일이라는 걸 여니가 알아주기를 바라.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던 시절

먹기 싫은 음식을 들이밀며 먹으라고 윽박질러 아이를 주눅 들게 했던 시절

엄마의 배고픔보다 이모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요구르트 한 병 훔쳐 가족에게 야단맞았던 시절

분유 한 숟가락 얻어먹기 위해 애원했던 시절

내가 좋아하는 연필과 사인펜을 사촌 동생이 먼저 가져 나에게 자랑했던 시절


그리하여 엄마는 이 결핍을 너에게 채워가며 결핍의 자리를 메워간다. 미술 재료들을 사들이는 걸 보면 엄마 어린 시절 부러워했던 것들이니깐. 냉장고 가득 너의 간식을 채워 넣어 놓고 뿌듯해하는 엄마 미소가 바로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이다. 


아직 결핍을 채우려면 멀었지만 조금씩 그걸 알아가는 것만으로 엄마는 제법 너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 약간의 결핍은 오히려 득이 되지만 마음 전부 결핍은 살아가면서 가여워지더라. 욕심, 시기, 질투 등의 반응이 바로 결핍이 많다는 증거가 되겠어. 엄마는 그랬거든. 질투가 많아서 '난 왜 다른 사람에게 질투를 많이 느끼나'라고 예전에 생각했을 때는 그 원인을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아. 결핍이 다양해서 그걸 채우지 못하고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어서 질투가 많고 시기가 많고 욕심이 그득했던 것을. 


가지지 못하면 포기는 빨랐지만 집착은 심한 편이었어. '악착같이' '끝까지' 결과를 보려는 승부욕이 강했던 거야. 이런 엄마를 잘 아는 이모는 한결같이 말해 "언니는 뭔가 한다고 결론을 내리면 끝장을 보잖아. 난 그게 안돼"라고. 이건 나와의 약속이기에 나를 이기기 위함이고 결핍을 다른 곳에서 찾는 거라고 말했어.


적당한 결핍은 오히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겠지만, 엄마처럼 다양한 면에서 오는 결핍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행위였다는 걸 너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아직도 엄마의 결핍을 찾아가는 엄마의 행동. 그걸 비난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며 나를 알아가지. 음식이 많았던 냉장고. 이젠 빈 공간이 보이는 지금 음식으로 받았던 상처가 치유가 되었고 결핍을 채웠다는 방증일 거야.


작년까지 냉장고가 미어터졌는데 올해는 비워내는 엄마를 보며 너는 그랬잖아. "이제 냉장고 음식이 많지 않네"라고. 그 말을 너에게 듣는 순간 음식 결핍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끝났다는 걸 알게 되었어. 여니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엄마 행동. 여니가 엄마 딸로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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