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Oct 19. 2022

내가 아는 경험을 나눌때 그때가 가장 글쓰기가 좋아진다

엄마 에세이

2년 전 블로그에 쓴 글이 있었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할 때가 19년도인데 무슨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 인생 자체가 글감이오 이야깃거리라고 믿었으니깐.


매일 하루 1편씩을 글 썼는데 그 글에는 내가 겪어온 투병 이야기였다. 내가 투병할 당시 누군가는 이미 겪고 이겨낸 글이 절실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경험담을 들을 수 없었다. 투병하면서 내가 겪은 투병일기를 써내려 가겠다고 다짐하며 입원생활을 했고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을 얻을 걸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가 절실한 그때처럼 지금은 더 절실하게 경험담이 필요할 만큼 정보가 난무한 정보시대이니깐. 내가 투병할 당시에는 온라인이 활성화되기 전이었고 활성화된 시기라 할지라도 내가 얻은 병에 대한 지식이 미비했다. 그 당시 병원이 하라는 대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병을 치료했다.


그 결과 좋은 예후로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경험을 밑바탕으로 쓴 글은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글쓰기를 잘했다는 생각과 뿌듯함으로 행복했다.


유튜브 역시 내가 복용 중인 약을 소개했다. 거기에 많은 분들이 질문했다. 블로그도 마찬가지.

누군가에게는 지금 가장 절실한 부분이라서 그들은 나에게 묻는다.


6년간 병의 호전을 물어보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하는데 이따금씩 병이 호전 반응을 관해기라고 한다. 관해기란 현재 병이 심각하지 않고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을 관해기라고 하는데 나와 같은 병을 투병하는 환우들은 최종 목표가 관해기다. 완치가 없으므로..


완치가 없는 병, 이유를 모르는 병은 희귀 난치성이라고 지칭한다. 그렇기에 일상생활이 가능한 관해기가 필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관해기를 유지하는 방법, 관해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환자에게는 최대 관심사인데 질문이 한결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단언컨대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뿐이었다. 식탐이 있는 내가 아니라서 음식에 대한 조언을 할 수 없었다. 발병할 당시 나의 주치의는 '스트레스'를 가급적 받지 않은 선에서 음식을 먹으라고 했다. 이때 주치의 말을 듣고 '만병의 근원은 역시 스트레스'라는 걸 뼈저리에 안 후였다.


스트레스 안 받는 선에서 음식을 먹고 내 몸을 실험한 결과 관해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비법은 그저 내 몸을 잘 알아야 했던 것을 절실한 그들에게 풀어서 답을 남겼다.


다들 자신이 왜 이 병이 왔는지 내가 쓴 댓글을 읽는 순간 깨닫는 거 같았다. 어젯밤 어떤 분의 댓글에 넋 놓고 읽었다. 댓글 단 그분의 심정을 백 프로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실함' '간절함'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 곁으로 가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읽었기에 공감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분의 질문은 이러했다.

'안녕하세요. 32살입니다. 5년의 관해기까지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현재 저는 5년의 관해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복통과 발열 , 빈혈이 심하진 않지만 하루에 10번 이상 혈변으로 인해 금일 입원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74일 된 딸아이가 있습니다. 입원해서 생각한 게 건강 해져야겠다입니다. 그래서 실례가 된다면 죄송하지만 병을 앓고 관해기가 오기까지 좋은 음식과 안 좋은 음식이 어떤 게 있었을지 궁금하고 현재까지도 관해기 유지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2020년도 글이라 답변이 없으실 수도 있겠지만 읽으신다면 두서없는 글이지만 제가 여쭤보지 않은 내용일지라도 알고 계시는 소중한 정보 공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분의 댓글에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이 병을 얻은 나이보다 어렸기 때문이다. 얼마나 절실할까? 병상에 누워 얼마나 간절했으면 검색을 하고 내 글을 읽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아픈 아이를 뒤로 하고 절실하게 댓글을 남긴 분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답 댓글로 남겼다. 


'안녕하세요. 74일 아이를 떼어내고 입원을 했을 엄마 심정 저는 알고 있어요. 얼른 쾌차해 아이 곁으로 가기를 응원할게요. 저는 작년에 재발했다가 다시 관해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발병하고 4년 정도 힘들게 투병했고 발병한 당시 2년은 처절하게 아팠어요. 그리고 그 후 2년은 복통은 사라졌는데 혈변은 항상 봤고요. 음식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여서 담당의사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저의 주치의는 일단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게 우선이라며 먹고 싶은 음식 먹되 몸의 반응을 보고 음식을 중단하고 더는 섭취하지 말라더군요. 그렇게 저의 근본적인 스트레스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사실 저는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가릴 음식이 없었어요. 대장에 상처 주지 않은 음식을 찾아 먹었는데도 딱히 종류가 많지 않아서 더 스트레스였답니다. 한참 병이 진행 중일 때는 자극적인 음식, 소화가 힘든 음식은 저절로 먹지 않게 되었고 부드러운 음식을 될 수 있는 대로 스트레스 덜 받게 먹었어요. 두부나 단호박 기름진 음식이 덜 한 것들 먹다 소화력이 좋으면 시중 음식을 먹으며 저의 몸상태로 점검했어요. 여기에서 다른 음식을 섭취할 때 두려워하지 않기를 저에게 암시했고 점점 외부음식에도 크게 자극하지 않고 관해기를 맞이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어요. 지금도 내 몸이 반응하거나 신호하는 것에 무시하지 않고 곧장 알아차리고 중단해요. 작년에 재발 원인은 스트레스였어요. 저는 음식으로 인해 병이 온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고 해소하지 못해서 왔답니다. 선생님도 그랬거든요. 서구화된 음식으로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저 같은 경우는 직접 조리한 음식이 위주였고 한식이었기에 선생님은 스트레스라고 결론을 내린 거 같아요. 제가 님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얼굴이 저마다 다르듯 장기도 다 다른 거 같아요. 다른 환자가 좋다고 하는 건 나에게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저는 제 몸을 실험하고 관찰했어요. 그러니 음식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식습관이 좋지 않다면 자신에게 맞게 조절하시면서 편안하게 실행을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끔 소화가 안될 때는 한 끼 정도 굶기도 해요.. 저는.. 혈변도 지속적으로 보다 몇 년 전부터 좌약 처방받아 더는 변기에 혈변을 보지 않았어요. 재발할 당시 제 아무리 좋은 음식과 약이라도 혈변과 복통 설사는 어쩔 수 없었어요.
저의 댓글에 작게나마 도움 되시기를 바라며 회복하시기를 기도할게요.'


안타까운 마음에 아주 길게 답 댓글을 달고 말았다. 절실한 사람 마음을 읽은 나는 무성의한 댓글을 달수 없었다. 이렇게 남기고 오늘 오전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어느 지점에 포인트를 줘야 할지 알게 되었다며 감사하다는 글이었다. 


이럴 때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다소 무거운 글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병이 발병한 당시 유명하지 않은 아주 특이한 병이었는데 투병하는 그 시점에서 프로그램에 내가 얻은 병에 대해 나오기 시작했다. 참 아이러니했다. 그 후로 환자는 급증했고 내가 관해기에 접어 들 시점에서 블로그에 많은 글이 남겨졌다.


살아오면서 많은 질병과 싸워야 했고 이겨낸 장본인이다. 그 누구는 알지 못하는 희귀병을 여러 번 경험한 나는 그 어떤 고난이나 역경이 닥치더라도 슬기롭게 해결한 힘이 내 안에 있다. 그만큼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니깐. 그게 몸이 아파서 얻은 거라서 참담하지만 말이다. 


오늘도 내 글에 힘을 얻고 다시 살아갈 내일을 바라보는 이가 있어 행복하다. 이 맛에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나 보다. 나에게 온 고난과 역경은 무슨 이유가 되었던 온 이유가 분명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명확하게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 따러 가기는 나의 트라우마 부수는 약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