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Oct 14. 2022

노을은 나의 상처 일부분임을 알았다

엄마 에세이

어젯밤 밤하늘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카메라 눈이 아닌 직접 물든 하늘을 보면 세 가지 이상 색을 빛내며 고요하게 다가왔다.


어릴 적 이곳에서 살 땐 몰랐다. 이곳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곳이라는 걸.

어제 밤하늘을 곱게 물들인 빛을 바라보며 문득 어린 나의 상처가 보였다.


어릴 적 이곳은 나에게 평온함을 주는 곳이 아닌 그저 살기 위함이어서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참고 이겨낸 곳. 이곳은 내가 선택한 곳이 아닌 엄마가 선택한 곳이어서 자식인 나는 엄마를 따라온 거라고 생각하며 체념하고 또 체념하며 사춘기를 겪어 온 상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금 내가 지키고 있는 이 자리. 눈만 약간 돌리면 아름답다는 걸 알려주는 신의 목소리가 아닐까 하는 미지의 소리를 들었다. 어릴 적 난 미처 몰랐다. 이곳 어느 곳에서 아름답고 찬란한 빛을 보내고 있는지 말이다. 어릴 적 지낸 곳과 반대 방향인 곳에서 지금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은 석양을 볼 수 없었다. 아침이면 해가 쨍쨍 들어오는 곳,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던 어릴 시절. 이곳을 하루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해서 아침해가 싫었다. 내가 원치 않은 곳만 쳐다보며 힘들어했다. 


그 시절 어린아이는 시야가 좁았고 감추고 싶은 일이 가득한 곳이어서 이곳에서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고 어린 내가 생각했다. 이곳만 아니면 불안한 가슴, 불행한 사건들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무의식에 있던 생각은 먼 훗날 실행에 옮겨졌고 겪었다. 더 많은 고통과 시련이 따랐다. 상처는 다른 곳을 간다고 해서 아물 수 없었다. 상처를 방치한 결과 더 깊게 페어 더는 새살이 돋지 않았다. 상처 난 곳에 또 상처를 내는 일상이 반복이 되었다. 상처를 내고 주는 대상만 달랐지 아픔은 곱절로 다가왔다. 장소가 달라진다고 해서 대상이 달라진다고 해서 아파하는 상처는 아물지 못했다. 더 깊고 깊게 상처가 나서 피고름이 흐르게 되는 날에는 숨을 쉴 수 없었다. 20년 동안 아픔을 거치니 내가 가장 아파한 곳으로 발길이 닿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아픈 추억이 많은 이곳, 상처투성인 이곳에서 밤하늘을 보니 왜 내가 나이 들고 중년이 되어 이곳에 다시 왔는지 알았다. 이곳, 고등학생이었던 나, 20대의 나를 치유하기 위함이었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 신기한 일 투성이다.


이곳이 싫어 엄마 품을 떠났던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 그러나 40대 후반이 되어 떠났던 엄마 품으로 다시 왔다. 여기서 아팠던 상처를 고요한 밤하늘과 함께 들여다보며 자신을 다독여주라고 밤하늘이 속삭였다. 상처는 상처받은 곳에서 몸서리치며 처절하게 대면해야 비로소 내 안의 얼룩진 상처가 조금씩 새살이 올라온다. 나를 들여다보며 곁에 있는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넉넉한 마음이 생겼다. 우리 아기에게는 어느 지역에 상처가 가장 깊은지를 들여다본다. 뭐든 그냥 내 앞에 펼쳐지는 건 아닌 듯 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삼겹살 덮밥 먹어봤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