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Oct 30. 2022

시한부 선고를 뒤엎을 마음 가짐은 '살아야겠다'는 힘

엄마 에세이

조수석에 있던 나는 훌쩍거리는 소리에 "엄마 지금 울어?" 질문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운전하던 제부 얼굴 표정까지 굳어 있었다. 당사자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울음바다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이라 이런저런 해결방법을 말했다.


"지금 워니 엄마는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어"

"안 그래도 나도 그 생각을 했는데 지금 몸으로 더 힘든 치료는 무리야. 조금이라도 몸을 챙겨서 치료하는 게 좋겠고 기존 병원에만 의지하지 말고 다른 병원에서 진료 보면 어때?"

제부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내가 SNS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서울 대형 병원에서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는 피드를 봤는데 말이야. 환자 아버지가 발품 손품 팔아 여러 군데 병원에 문의하고 딸아이의 암을 치료해 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았다는 거야. '국립암센터'더라. 거기가 아니더라도 동생에게 맞는 병원이 어디에 있어. 내가 지인에게 물어봤으니깐 기다려보자. 거기는 소문을 발 빠르게 들을 수 있잖아. 명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자리잖아. 우리 희망을 잃지 말자"

가만히 내 말을 경청하던 제부는 어려운 말을 꺼냈다.

"삼성병원에서 그랬는데 통상적으로 보면 '신경교종증' 재발하고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커진 종양은 8개월 살기 힘들다고 했다"

아주 절망적인 숫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귀를 의심하며 재차 물었다.


"뭐라고? 8년도 아니고 8개월?"

"응"

"처음 그 병이 발병했을 때 3년 살기 어렵다고 했잖아. 근데 10년을 살지 않았니. 그럼 이번에도 8개월이 아니라 80년은 더 살지 않을까? 통상적인 건 그냥 통상적인 거지 그게 동생에게 딱 맞는 얘기는 아니잖아"

"그렇지"


제부는 아주 긍정적으로 대답을 하며 운전에 집중했다. 동생집으로 향하는 동안 엄마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동생집에 도착해 제부가 동생을 데리러 간 사이 엄마는 나에게 재차 물었다.

"금방 김서방이 8이라고 하던데. 그게 뭐야?"

"워니 엄마가 재발했잖아. 병원에선 통상적으로 이 병이 재발하면 8개월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대"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닥친 슬픔. 자식을 잃어버린다는 말에 동생이 오기 전 눈물을 쏟아낸 엄마는 다짐한 듯 힘 있게 말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내가 일을 쉬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야겠다. 가서 건강한 음식, 암을 줄이는 음식을 해 먹이며 단 하루라도 생명을 연장해야겠어"

"환자인 워니 엄마가 의지가 강해야 해. 근데 병원에서는 환자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통상적인 말로 시한부 선고를 하고 말았어. 그 아이 심정은 어떻겠어?"


손수건을 꺼내어 훌쩍이는 엄마를 바라보다 "동생 오면 그만 울어. 그 아이는 안간힘을 다해 슬픔을 참고 있을 거야" 동생이 나오기 전까지 훌쩍이던 엄마는 동생 모습이 보이자 아무렇지 않은 듯 동생을 향해 자연스레 말을 걸었다.


8년이 아닌 8개월이라는 말은 절망적이었다. 혈액종양내과에서의 치료는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가 아닌 현재 혹이 더는 크지 않게 하는 치료이지만, 이것 또한 미지수라고 했다. 그렇다고 생명이 연장되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약값은 주사 한번 맞는데 250만 원. 10차를 맞는데 생명 연장이 아니라 혹이 줄어들 확률이 낮을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은 병원 소견. 


고약한 신경교종증 종양은 독한 약일수록 생명을 갉아먹는 암덩어리였다. 그러니 동생은 치료를 거부했다. 거기에 경제적인 문제가 한몫했다.


"워니 엄마가 치료를 거부한 이유 중 하나가 약값이 너무 비싸서 포기한 거야" 제부 말에 동공이 지진 나는 듯 한 눈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없는 집에 이렇게 무서운 병이 찾아오다니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동생 모습은 덤덤하게 자신의 병을 받아들인 거 같았다. 

"언니야!" 하며 나를 바라보는 동생의 눈빛은 슬퍼 보였다.


식당에서 모인 가족. 모두가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엄마는 딸을 설득했다.

"지금은 네가 먼저다. 니부터 챙겨야 하고 네가 살아야 딸도 있는 거다. 엄마 집으로 가자. 오른손을 쓸 수 없는데 어떻게 음식을 챙겨 먹을래. 가자. 으이 엄마 집으로 가자"

"엄마. 아니 지금은 아니야"라고 더듬더듬 말하는 동생은 고민이 있는 듯했다.

"워니 엄마! 어머니 말씀처럼 하자. 사실 워니도 이 상황을 알아야 하잖아. 만약을 대비해 워니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제부 말에 동생은 울음을 터트렸고 제부는 자리를 떴으며 엄마는 눈물을 훔쳤다. 울지 못하는 바보인 나는 동생 등을 쓸어내리며 "제부 마음도 이해되고 너의 마음도 이해된다. 제부 말에 상처받지 말고 제부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될 거야. 그러나 효나야 지금 엄마가 예전보다 조금 더 아파졌다는 것은 워니가 알아야 해"


동생은 자신의 병이 악화된 걸 조금 더 미루려고 했다. 그 생각은 아무래도 동생 마음이 준비가 되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그래 네가 하고 싶을 때 해" 울고 있는 동생 등을 쓸어내리며 내 가슴도 쓸어내렸다.


제부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거 같았다. 동생이 모르는 병원 측 소견을 들었으리라. 이미 병원에서 들었으리라 난 짐작하고 있다. 가족과 환자인 동생에게 말하지 않고 함구한 모습이었다. 올해 초 동생이 재발하면서 엄마는 늘 사위를 보며 맏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김서방이 우리에게 감추는 병원 소견이 있는 거 같아. 그러니 포기하고 그냥 동생만 지켜보고 있는 거지. 아니면 아픈 아이를 저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 같다"


엄마 말에 난 제부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니냐며 반문했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며 아픈 동생을 돌보는 일은 힘든 일이다. 제부 입장을 알면서도 엄마는 답답한 마음에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한 거 같았다.


10년 전처럼 기적을 다시 만들어보자고 동생을 설득했다. 조카 걱정을 접어두고 오직 너만 생각하고 다시 건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엄마는 동생 손을 꼭 잡고 잘 생각해서 엄마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동생은 울먹이며 알겠다며 답했다. 


내가 살고자 하면 길은 분명히 나타난다.

내가 의지만 있다면 8개월이 아니라 80년은 더 살 수 있다.

지금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성질 더러운 암덩어리는 몸집을 키워 더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지 않는다.


"효나야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하고 지금 생활 패턴부터 바꿔야 하고 음식도 바꿔야 한다. 강한 의지만이 너를 지켜주는 거 있지 말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좋은 의료진 좋은 약 그리고 좋은 음식으로 너를 살릴 거야. 우리 힘 합쳐서 노력하자. 너 혼자라고 외로워하지 말고 하루빨리 엄마 집으로 와. 나도 너와 함께 할게"


"언니 고마워. 난 언니 어려울 때 돕지 못하고 힘든 언니를 모르는 척했는데 미안해."

"다 지나간 일.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살아갈 날만 생각하자. 나중에 나 어려울 때 도와줘도 늦지 않아. 지금은 너만 생각해"

"알았어"


지인에게 부탁한 명의는 찾았고 제부에게 전달했다. 꼼꼼히 알아보고 진료 보라고.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절망하지 말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보면 분명 고약한 암덩어리를 없앨 수 있다. 


14년 전 후두암 말기를 선고받고 치료가 없다고 집으로 온 지인이 있었다. 그분 연세는 예순 후반이었다. 절망하지 않고 환자 본인이 살고자 하니 길은 열렸고 시골에서 살며 농사지은 음식으로 매일 먹으며 시한부 선고를 뒤엎었다. 1년을 넘기기 어렵다던 그분은 14년을 거뜬히 살고 계신다. 그분은 약도 없었다. 끽해야 진통제가 전부였다. 그런 분이 살기를 원하니 시골 생활이 시작되었고 일만 벌여놓고 마무리 못하는 아내 뒤처리를 수습하며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흙과 땅 그리고 공기를 마음껏 받았다. 그분은 오히려 병에 얽매이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 세상에 없는 엄마보다 아프더라도 자신의 곁에 있는 엄마가 아이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

말은 동생이 8년 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을 오늘 동생에게 되돌려 주었다.

"너의 그 한마디에 어렵고 힘겨워도 살아갈 힘을 얻어 살아냈다. 나도 너에게 이 말을 돌려줄게. 세상에 없는 엄마보단 아프더라도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엄마를 워니는 원할 거야. 그러니 나약한 마음먹지 마"

"응. 언니"


그렇게 힘든 마음을 끌어안고 지내는 동생을 위로하며 동생이 엄마 집에 오는 날을 기다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