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Nov 24. 2022

고민하고 걱정한들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엄마 에세이

문득 수육에 김장 김치가 먹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엄마와 식사를 한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유는 다양한데 지금 내가 디톡스를 하고 있었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집에만 있는 이유가 가장 크다.

이번 주면 보식이 끝나고 일반식으로 전환되니 겸사겸사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엄마 이번 김장 안 해?"

"김장? 다음 달에 쉬면 할까? 많이는 안 할 거야. 10포기만 해서 너와 현이 나누어 주면 될 거 같은데"

말하는 엄마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분명 혼자서 해결되지 않을 걱정거리를 가득 짊어지고 있었다는 걸 맏이인 나는 안다. 걱정한다고 그 일이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해결되지 않을 걱정에 에너지와 시간을 쓰고 있는 엄마였다.


"현이 연락 있었어?"

"아니, 며칠 전에 연락 오더니 갑자기 연락이 없네"

엄마는 아픈 작은딸 걱정에 한숨을 내쉬며 지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동생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나올 거 같아 동생 집에 갈 수 없다는 엄마 마음, 8이라는 숫자만 머릿속에 맴도는 엄마 상념.


"요즘 내가 내 정신이 아니야"

"왜"

"뭐겠어. 동생 걱정이지"

"걱정한들 일어난 일을 과거로 되돌릴 순 없어. 그저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며 응원하는 수밖에. 처음 그 병이 발병될 때 그 아이는 자신이 가진 병을 검색해서 몇 년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글을 보고 우울증에 빠졌던 적 있었어. 엄마는 일한다고 바빠서 몰랐지. 그때 내가 얼마나 야단쳤는지 몰라. 책에 나온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어. 살아보지 않고 그들이 말한 대로 인생을 산다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 없다고 말이야. 살아봐야 아는 거야. 2~3년 보던 그 병이 10년을 훌쩍 넘겼잖아.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처음 병이 발병된 것보다 더 오래 살 거니깐 걱정 마"

"그러면 좋을 텐데"

"좋을 텐데가 아니라 좋아져. 단호하게 말해야지. 엄마 머릿속에도 현이는 80년을 산다고 세뇌시켜"


우울한 엄마.

동생 소식이 궁금해도 선 듯 전화하지 못하는 엄마.

눈물이 앞을 가려 딸을 피하는 엄마는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나타났는데 나보고 가자고 손을 잡는 꿈이었어"

"죽은 조상이 왜 엄마를 데리고 가려고 한 거지"

"글쎄, 할머니가 그러는 거야. 네가 여기서 힘들어하는 모습 못 보겠다. 나와 함께 가자면서 편안하게 살자고 자꾸만 끌고 가려는 거야"

"엄마 따라간 거 아니지"

"따라 안 갔으니 전화를 받고 있지"

"할머니가 속상했나 봐. 엄마가 걱정하고 속상해하니 할머니가 엄마 데리고 가려고 한 거 같은데"

"그런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할머니 손을 놓으면서 내가 이랬어. '엄마 나 못가. 현이가 많이 아파서 못가. 그 아이 살려내야 하잖아. 그리고 영아도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내가 도와줘야 해. 그래서 지금 못가'라고 말하니 할머니는 계속 이러는 거야. '내가 속상해서 못 보겠다. 너 고생하는 모습도 못 보겠고 그러니 엄마 따라가자'하는 거야. 내가 너무 걱정하니깐 헐머니가 나타난 걸까?"

"할머니는 다른 자식 다 놔두고 엄마한테만 그래. 사람 불안하게. 할머니가 보기엔 엄마가 불쌍한 거야. 마음이 아파서 이 세상 미련 버리고 데리고 가려고. 그러니 걱정을 하나만 내려놔. 왜 내 걱정을 해. 잘 지내고 있는데. 내 걱정을 내려놔. 할머니가 하늘에서 엄마를 보고 마음이 아파서 꿈에 나타난 예지몽 같은 거 같아"

"그렇겠지?"

"그래 엄마! 더는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하며 살자. 그 아이도 살려고 노력 중이니깐. 나도 내 일 하며 열심히 살고 있잖아"


엄마에게 아픈 손가락인 두 딸이 힘겹게 세상과 싸우는 것이 못내 마음이 아픈 모양이다. 엄마 마음은 자식 걱정뿐이라는 걸. 내가 내 아이를 위해 걱정하듯 엄마 역시 나와 동생을 걱정하고 있었다.


혹여, 자신보다 자식을 앞세운 일이 발생할까 봐 노심초사 살얼음판을 걷는 엄마에게 오늘은 그저 기적이고 내일은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나까지 걱정을 줄 수 없어 씩씩한 모습을 보였지만, 엄마 눈에는 내가 보일 것이다. 힘겹게 살아가는 것을 말이다. 안다. 부모의 마음을..


외할머니 역시 자식이 힘들어하니 꿈에 나타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엄마의 절규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잘 살 거 같았던 맏이는 혼자가 되었고 병들고 나이 들어 홀로 아이를 키우는 모습에 애통함과 갑자기 멀쩡하던 둘째가 몸이 마비가 되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말에 고통과 시련을 엄마는 스스로 감당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꿈 해몽을 보니 사고수가 있는 예지몽이었다.

"안 그래도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면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리는데 현이 걱정으로 깜빡하다 할머니 꿈이 찜찜해서 막내 삼촌한테 전화했더니 세상에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는 거야. 사람은 안 다쳤는데 차가 박살 났다고 막내 숙모가 그랬어. 천만다행이지"

"사고수 꿈이라고 하더니 정말 사고가 났네. 삼촌은 괜찮아?"

"응. 사람들은 다치지 않았다고 하더라."

"만약에 엄마, 엄마가 모르고 할머니 따라갔으면..."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무서워서 두려워서..

"내가 너희 둘 두고 못 간다고 할머니 손을 뿌려 쳐서 다행인 거지"


'그래 엄마, 할머니 손 뿌리친 힘으로 엄마 딸인 둘째는 잘 이겨낼 거야. 걱정 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고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어. 한 번 더 동생에게 하늘이 기회를 주신 거야. 걱정 그만하고 덤덤하게 살아가자'

엄마와 통화를 하며 중얼거렸던 부분이었다. 걱정한다고 일은 해결되지 않음을 엄마도 알고 있다. 그러나 예민한 성격이라서 일이 해결될 때까지 걱정하고 또 걱정하며 살 거 같은 엄마.


며칠 만에 한 통화는 걱정거리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지내는 엄마를 보게 되었다.

'엄마, 나, 동생 힘내자. 힘내야 병과 싸울 것이고 이겨내지'

매거진의 이전글 딸과 엄마 세상은 달라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