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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23. 2022

딸과 엄마 세상은 달라야 한다

엄마 에세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주체가 내가 아닌 가족이 다였다. 엄마와 헤어져 서러움과 구박을 받았던 열세 살 아이는 생각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과는 떨어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그런가 아니면 맏이라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면 엄마가 나를 앉혀놓고 '너는 우리 집 살림 밑천이야'라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와 살면서 나를 위한 것은 없었고 결혼을 한 후에도 그러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전 지인과 약속을 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음식이 맛있으면 포장해야지. 나만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없잖아'였다. 그 시절 '촌닭'이라는 치킨집이 붐을 일으켰다. 사장님의 자체 브랜드인데 '고추장 촌닭'은 입 소문이 나면서 줄을 서서 먹어야 했다. 당연히 '효녀'인 나는 맛있다는 것만 골라 일찍 집으로 귀가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은 집에 비싼 꿀 숨겨놨냐며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들은 나의 아픈 과거를 모르기에 당연한 말이었다. 열세 살 아픈 이별한 나는 큰 충격을 받고 엄마를 다시 만난 후 집 밖으로 나가는 걸 꺼려했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밖을 나가면 집에 돌아가지 못할 거 같은 두려움이 마음에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20대는 친구와 약속을 해놓고도 취소하기를 반복했다. 신뢰감은 제로가 되었는데 그렇다고 밖을 아예 안 나간 건 아니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나가기 싫어하는 몸을 일으켜 나갔다. 그러나 일찍 귀가를 했다. 엄마의 걱정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했다. 성인이 된 나를 믿지 못해서 대문에서 서성이는 엄마를 차마 외면하지 못했던 그 시절.


"나는 너를 못 믿는 게 아니야. 세상이 무섭고 질 좋지 않은 남자가 골목에 있을까 봐 그래서 엄마가 나와 있는 거야" 나는 안다. 이 이유뿐만이 아니라는 걸. 새아빠의 급한 성격을 이기지 못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나와 여동생이 밤이 깊도록 들어오지 않으면 아빠는 엄마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중간 입장인 엄마는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 상태에서 만만한 나에게 "여자가 늦게 다니면 안 돼. 일찍 다녀"라는 핀잔을 종종 들었다.


우리가 이따금 친구 집에서 자게 되면 엄마는 딸을 이해했지만, 엄마의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고 불같이 화를 내고 결국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엄마는 우리가 들어온 것처럼 현관에 딸의 신발을 두기도 했다면서 어느 날 하소연을 했다.


그 후로 자의 반 타이 반 심정으로 자정을 넘기지 않고 집으로 귀가했다. 어떨 때는 있는 약속도 취소하고 행복하지 않은 집에 들어갔다. 행복하지 않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는 걸 알기에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다.


억압된 나의 자아는 이제 홀가분한가 보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기쁘다. 

"여니야 있잖아. 너는 대학생이 되면 여행을 많이 하고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경험 최대한 해보는 거야"

"난 싫은데. 엄마 옆에 딱 붙어 있고 싶은데"

"그 나이가 지나면 다시 안 와. 지금 엄마는 대학생 나이로 돌아갈 수 없어서 아쉬워.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세계 곳곳 여행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를 계속해. 여니는 언니가 되어서 엄마 걱정 말고 친구와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 친구와 잠도 함께 자고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접하고 문화를 경험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그럼 나 없는 동안 엄마는 뭘 할 거야"

"엄마는 정말 할 거 많아. 좋아하는 일을 늦게 찾아서 일분일초가 아까워. 너 없는 동안 그동안 못해본 것들 하겠지. 와인바에서 여유롭게 와인 마실 거고 밤바다 해운대를 갈 거야. 또 꼭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 공부를 너와 함께 할 거야"

"거기에 나도 끼워줘"

"어쩌다 한 번은 끼워주는데 자주는 안돼. 너는 너의 세계가 있을 거야. 그걸 찾아야 해. 엄마는 엄마만의 세계를 창조해서 살 거야. 그러니 각자 살자"

"그럼 밥은 누가 해줘"

일곱 살 아이와 대화는 밥 타령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아이에게는 지루한 말이었던 모앙이다. 아이는 늘 밥이 걱정이다. 엄마가 아프면 고사리 손으로 직접 나를 간호한다. 그리고 말한다. "밥은 누가 해"


생존에 결부된 엄마라는 존재. 일곱 살 아이는 열일곱 살 되어도 아마 밥 타령을 하며 엄마 아프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할 것 같다. 


내가 아이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엄마처럼 아까운 청춘을 바보처럼 허비하지 말고 너는 너의 세계를 창조하라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사춘기가 되고 생각과 감정이 독립되는 시기가 되면 엄마 마음을 알아줄 거 같다.  


엄마는 할머니와 엄마가 분리하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왔기에 내 아이만큼은 엄마가 아파서, 엄마가 외로워서, 엄마가 불쌍해서 라는 문장을 가슴속에 새기지 말라고 단단히 말해두고 싶었다.


"그럼 엄마가 지금 찾은 좋은 일은 뭐야?"라고 아이는 묻는다.

"그거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거지. 엄마만의 색깔은 가진 글이 최종 목표야. 그리고 또 하나, 공부할 거야. 못다 이룬 대학공부 말이야. 또 있어. 너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엄마만의 또 다른 부업 카페를 차리고 싶어. 좋은 사람들이 언제나 드나드는 곳이 엄마 카페였으면 하거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카페 말이야. 언젠간 이루어질 거야. 뜻이 있다면 언젠간 길이 생겼거든. 그건 우주의 법칙과 같은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럼 내가 언니가 될 정도로 크면 친구들과 여행 가거나 놀아도 된다는 거지"

"물론이야. 엄마는 반대 안 해. 엄마는 외롭지 않거든. 약간 외로움도 경험해야 된다고 봐. 그때는 엄마 곁에 좋은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아"

나의 마지막 말에 여니는 눈이 동그래졌다. 좋은 사람이 당연 성별이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한 모양이다.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모녀는 각자 세계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엄마와 지식은 분리되어야 마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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