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Nov 26. 2022

석화굴은 과거가 되고 현재가 되며 미래가 된다

엄마 에세이

계절마다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가장 깊게 새겨진 계절은 바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쯤 꼭 먹어야 하는 제철 음식이 있다. 바로 석화굴이다.


아주 오래전 감나무집이라는 곳이 있었다. 거기는 도시와 뚝 떨어진 곳이 아니라서 자주 드나들 수 있었다. 감나무집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식당이 있고 마트도 있었다. 버스 편은 열악하지만 못 살 곳은 아니어서 그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분이 있었다.


감나무가 무려 4그루 넘게 있어서 그 집을 감나무 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감나무집을 빛나게 했던 계절은 가을이었다. 가을이 되면 주렁주렁 열리던 각종 감.


단감, 대봉, 홍시 등 다양한 감들이 열리는 모습을 고스란히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 넓은 마당에서 김장을 하면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가을쯤 되면 제철 음식인 굴은 김장할 때 배추 속에 넣는다. 그리고 석화굴은 고생한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데 그 맛이 꿀맛이다.


장작이 활활 피는 아궁이에 수육을 삶고 또 다른 화로에는 석쇠가 놓여 있다. 석쇠 위에 가리비, 석화굴, 새우등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각종 해산물을 가득 구워 먹는 재미가 곧 행복이었다.


이 시기만 되면 잠재의식에 고인 모아 둔 추억이 몸으로 반응한다. 침샘이 자극되면 머릿속에서는 석화굴과 대봉감이 둥둥 떠다닌다.


올해 초 코로나 감염이 된 후 갑자기 석화굴이 떠올랐다. 그 후로 9개월 만에 석화굴이 나오는 계절이 왔다. 석화굴은 내가 가진 추억 중 가장 근사하다. 그 추억을 먹으면서 그때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행복감에 젖는다.


한 망 그득하게 들어있던 석화굴. 지금은 한 망을 먹을 수 없어서 아주 소량으로 주문해서 구이가 아닌 찜으로 먹는다. 이게 바로 내 안에 추억을 꺼내어 추억을 먹으며 그 추억을 꼭 끌어 앉는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더 또렷해진다.


제철음식이 곧 추억이며 추억을 먹어야 생명이 유지되는 그런 추억을 먹는 여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때는 사실 모른다. 이게 귀한지 소중한지를.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리고 더는 그 추억을 만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가슴 깊이 사무친다. 그 음식을 다시 느끼고 싶고 그 공간에서 내가 바라던 시골 향을 못 맡아서 그립다.


언젠가는 추억대로 내가 원하는 집을 꾸며보고 싶다. 넓은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아궁에서 끓인 수육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그날을 상상하다 보면 곧 현실로 다가올 거라는 믿음.


사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고 구수한 청국장 냄새로 아늑함이 그득한 시골집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그래 그런 삶을 살아보자. 인생 한 번이지, 두 번의 기회는 없으니 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대중교통과 다르게 자가용으로 움직이면 고속도로나 낯선 동네에서 한정식집이나 보리밥 집을 발견하곤 하는데 그렇게 우연히 들어가 곳은 어릴 때 할머니가 해준 음식 맛을 느낄 때가 간혹 있었다.


엄마 역시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이 몇 군데 있다고 했다. 이제는 잊혀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종종 말을 하곤 했는데 청국장이나 된장찌개에 반해서 다시 그곳을 찾았지만 그 길은 더는 갈 수 없다.


그렇게 계절 여행을 하다 보면 뜻밖의 선물을 받는다. 그게 바로 음식이다. 김장하는 날은 고단하지만 그 고단함을 잊히게 하는 건 바다내음이 풍기는 음식을 먹으면 추억이 된다.


추억이 있어야 오늘을 살 것이고 내일을 위해 계획을 세우지 않을까. 조만간 항구 근처 횟집에서 석화굴을 원 없이 먹어 볼 계획을 세워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민하고 걱정한들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