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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Nov 27. 2022

겨울 왕국 1편과 2편이 나올 때 내 운명은 바뀌었다

엄마 에세이

이게 운명이면 운명인 걸까? 살다 보면 때론 트라우마처럼 다가오는 사물이나 배경이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겨울왕국 1편이 나올 때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많이 아팠다. 그 후로 불행이 해일처럼 덮쳤다. 앞뒤 잴 수 없을 정도로 몰아붙인 불행은 주인공 엘사 노래가 구슬프게 들렸고 아픈 가슴이 찢어지게 했다. 너무 아파서 더는 이 노래를 듣지 않으리라 애써 외면하고 지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후 정신없이 들이닥친 불행 앞에 굴복하기 싫어 앞으로 밀고 나갈 때 겨울왕국 2가 나왔다.


그때 아이는 겨울왕국에 푹 빠져 살고 있었다. 엄마가 가장 아파하는 영화가 노래에 심취해서 아파하는 엄마를 자극했다. 아이 또한 정신없는 엄마를 잠시 놓아주기 위한 방법이 뭔가에 푹 빠지는 거라 믿었다.


"엘사 틀어줘"

"엘사?"

"응, 아아 ~ 아아 하는 노래 말이야"

이때가 여니는 다섯 살이었다.


엘사를 어디선가 보고는 영상을 틀어달라고 졸랐다. 그해 겨울 아이는 겨울왕국 중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부분의 대사를 외웠고 동작을 외우고 있었다.


"나 엘사 드레스 입고 싶어"

그 당시 아이에게 온전히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엄마 마음을 알았는지 아이는 이것저것 사달라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이 자신에게 최소한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원하는 걸 사주는 일이었다. 엘사 드레스부터 구두 요술봉까지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엘사 화장대를 받은 아이였다.


겨울왕국 2 나올 때 불행만 있지 않았다. 물질적으로 마음껏 해줄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꼭 필요한 것만 사주던 엄마가 변했다는 걸 안 여니는 엘사에 관한 모든 것을 원했다. 다 해주었다. 그래야 마음 편히 일을 볼 수 있었다.


일을 처리하는 동안 나 또한 마음이 불안했고 두려웠다. '혹시나' '설마' 단어가 더 큰 불행을 가져다 줄 거 같아 부정적인 감정을 잠시 잊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쇼핑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사들이는 동안 마음은 편치 않았다. 불편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걸 사지 않으면 영영 사지 못할 거 같은 압박감. 무거운 일을 잠시나마 잊게 했던 건 엘사 드레스를 입고 이쁜 구두를 신고 엄마 앞에서 춤을 추는 여니 덕분이었다.


다섯 살 땐 메이크업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여니는 아이가 사용해도 무관한 화장품을 사줬고 (질릴 정도로 사용하라고 두 개나 사줌) 발레복이 입고 싶다고 해서 발레 슈즈부터 발레복까지 구비했다.


내가 지금 힘을 내는 건 단 하나, 너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으므로.


겨울 왕국 영화가 상영되는 날에는 아픔이 함께 공존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을 경험하고 나니 겨울왕국 노래가 나올 때마다 깜짝 놀란다.


불행은 정말 무섭다. 내가 견딜 수 있을 정도만 찾아온다고 하지만 불행은 끔찍 그 자체였다. 끔찍한 일이 발생할 때 트라우마처럼 찾아오는 건 겨울왕국이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까?


아픔이 다 추억이 되어 글감으로 전화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슬픔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불면증이 왔고 심장이 너무 뛰어 약의 힘을 빌어야 했다.


겨울왕국 1,2편을 수없이 반복하던 여니는 더는 겨울왕국을 보지 않는다. 노래도 드레스도 찾지 않는다.

"엘사 드레스가 너무 많은데 너 어쩔 거야?"

"몰라. 그냥 둬"라고 말하는 아이는 아무래도 정신이 반쯤 나간 엄마를 붙들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아픔도 추억이 되고 

행복도 추억이 되는데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아쉽게도 가장 아팠던 순간이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가장 아파할 시기에 자신은 여기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엘사 엘사' 노래를 불렀다. 


"겨울왕국 볼래"

"싫어. 이젠 안 볼 거야"

그렇게 많이 봤으니 질리만도 하지. 


불행이 휘몰아치던 그 해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흘러갔고 지금은 큰 불행 없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아이 역시 올인하지 않은 삶을 살며 적당하게 조른다.


'포켓몬 빵' '포켓몬 띠부실' 한번 꽂히면 그것만 보이는 아이는 아이다웠다. 엄마가 정신을 놓치지 않게 아이가 옆에서 적당히 조른다. 


'엄마 나 여기 있어. 나 잊지 마'


지금은 불편한 마음 없이 편히 겨울왕국 ost를 듣는다. 그 이유는 겨울왕국 1편의 상처가 2편으로 치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슴 저밀게 아팠던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겨울왕국 1편 음악을 들으며 남몰래 눈물을 흘렸고 2편에서 슬픔이 터졌다. 상황은 2편일 때가 더 힘들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느새 치유가 되었고 2편에서는 사랑과 상처가 공존했다.


나를 믿었던 겨울왕국 2

내가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상처가 다르게 왔기에 치유가 가능했을 것이다.


가을 겨울에는 유독 상처가 많은 나. 가을이 오면 시리도록 마음이 아파 땅굴을 파고 들어갔던 날을 청산하고 지금 당당히 걸어 나온다. 걷다 보면 상처가 뚜렷하게 보여서 쓰라린다. 하지만 회복은 급속도로 빠르다.


이젠 가을 겨울 계절에 상처 대신 기쁨과 행복으로 물들일 힘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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