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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Dec 07. 2022

똥 손

엄마 에세이

몇 년 전 잘하는 게 뭐야 물어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사주를 보던 지인이 '손으로 하는 일은 잘할 거예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경단녀가 되어 있었고 매일 하는 일 중 손으로 하는 건 '요리' 뿐이었다.


'그럼 요리를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가'에 의구심이 들었다. 엄마가 요리를 잘했고 그걸 먹고 자란 터라 엄마처럼 요리한다면 손으로 밥벌이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힘들지만 일단 해봐야 아는 거라서 주위의 만류에도 주섬주섬 반찬가게를 해보았다.


어린아이를 업고 장을 보고 국 하나와 반찬 2가지, 일만 오천 원에 지역 카페에 올렸다. 어라 사람들이 주문을 했다. 도와주는 이 없이 혼자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끓이고 볶는 일은 내가 해 먹는 요리에서 몇 배로 힘들었다. 거기에 육아와 살림은 내 몫으로 남겨두고 말이다. 대책 없이 일부터 벌이는 나.


배달까지 해주는 친절한 반찬가게 아줌마는 한 달 두 달 하고는 주위에서 말리기 시작했다. 아이 다 키워놓고 해도 늦지 않으니 그때 가서 하라는 말이었다.


두 달이 접어들던 시점에서 혼자 지지고 볶는 그 일을 관두게 되었다. 손으로 할 줄 아는 일은 요리뿐인데 이마저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주위의 반대, 비난이  쏟아졌다. 도와주지 않겠다는 가족들의 선포에 슬쩍 포기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보여주기 식이 되고만 것이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지금에서야 지인이 한 말을 알게 되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요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저 엄마가 요리를 잘하니 나도 요리를 잘한다고 자만했던 거. 조리사 자격증이 있으니 요리를 잘한다고 착각에 빠진 것이다.


12년 전 블로그는 네이버 측에서 선정한 사람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은 블로그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때 제대로 알고 블로그를 했더라면 요리전문가가 되지 않았을까? 근데 이것도 다 연이 닿아야 했고 타이밍이 맞아야 했다.


요리는 내 거가 될 수 없었다. 그 후로 '똥 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뭐를 하든 내가 싫든 좋든 일단 결과물은 보지만 더는 그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긴 별명이었다. 똥 손 별명이 싫어 다시 손으로 하는 일을 찾았다. '리본아트' '냅킨아트' '뜨개질' '펠트'등 완성이 되는 작품만 고집한 것이다.


글쓰기를 왜 빼놓았을까, 글쓰기는 하찮은 거라고 치부한 걸까, 아니면 나는 글쓰기 재능이 없다고 스스로 단정 짓은 것일까.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글쓰기 또한 손으로 하는 작업이었고 10년이 흐른 후에야 지인의 말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줄 몰랐다. 이것이 천직이었는데 그걸 알아보지 못하고 빙빙 돌아 내 곁으로 온 것이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요리, 리본아트, 냅킨아트, 뜨개질, 바느질, 펠트 등 수공예는 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건 도전을 했기에 아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 일이 아니었음에도 결과물에 집착한 나는 자격증만 가득하다. 전문 자격증. 그동안 헛되게 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자격증. 

'손으로 하는 일을 찾으면 밥벌이는 해요' 말만 믿고 내 직업을 찾았다. 무의식에 새겨둔 지인의 말에 이것저것 두리번거렸다. 미싱까지 가지 않아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재단, 그러니깐 숫자만 들어가면 머리가 아팠다. 옷을 만들고 싶어도 그 치수 때문에 포기한 적이 많았으니 말이다.


"손재수가 많으면 여자 팔자가 박복해" 오래전 엄마가 한 말이다. 손재주가 많으면 여자 인생이 힘들다고 늘 말했던 엄마는 요리를 잘해서 사람들에게 늘 대접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이 엄마 곁을 떠나고 간소한 살림에 더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음식 대접을 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음식을 부탁하면 엄마는 해준다. 그게 바로 손재주가 많으면 안 해도 되는 일을 하게 된다는 엄마의 속 뜻일 것이다.


나에게 손재주, 그건 그냥 하루 일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쓰고 또 쓰는 작업, 글쓰기였다. 밥벌이는 될지 안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글쓰기가 재미있다. 글을 쓰라고 고난과 역경을 주셨는지 모르겠다. 아픔을 기억하고 글로 아픔을 써 내려가라고 말이다.


자꾸 이런 느낌이 드니 글을 떠날 수 없다. 가만히 있어도 자동적으로 손이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타닥타닥 뭔가를 쓰고 있다. 끌 적 끌 적 종이에 뭔가를 쓰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면 문장이 완성되어 있다.


똥 손은 결국 해냈다. 내 길을 찾았다. 멀고 험난한 길이지만 그동안 겪어온 고통보다 수월하다고 생각하면 못할 것이 없는 똥 손은 오늘도 힘을 발휘한다. 글을 써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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