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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Dec 06. 2022

겨울이 왔어요

엄마 에세이

올해 들어 제일 추운 추위가 왔어. 12월이 다가오는데도 찬바람은커녕 모기만 득실거렸단 말이야. 몸 이곳저곳 모기에게 헌혈을 하고 나니 짜증이 난 것도 처음, 모기가 죽지 않고 사람 몸에 들러붙은 일도 처음이라서 어찌나 황당하던지.


연! 너도 그랬지. 모기에게 물리고 와서 "엄마 유치원에서 모기가 나를 물었어. 선생님에게 말했더니 모기약 발라서 이젠 괜찮아" 엄마의 걱정스러운 눈빛과 사랑스러운 눈빛을 받고 싶어 걱정과 안심이 공존하는 말을 했지.


겨울답지 않은 날이 이어지다 비가 이틀 연속으로 내리더니 오늘은 영하로 기온이 떨어졌다는 소식에 엄마는 기뻤어. 왜냐고. 계절은 계절다워야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니깐. 겨울이 너무 따뜻하면 겨울잠을 자야 하는 동물이나 곤충들이 잠을 자지 못하고 활보를 할 것이고 봄에 펴야 할 꽃이 피거든.


이건 지구가 말하는 거야. "나 병들어서 더는 계절다워지지 못해" 환경오염이 심각한 거지. 연은 요즘 유치원에서 지구촌 아끼기 활동을 하잖아. 에코 대장 하려고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와 낙엽을 주웠지. 늦게 온 겨울을 위해 우리 지구를 아껴보자.


서서히 추워지면 얼마나 좋아. 우리 몸도 준비라는 걸 할 시간이 필요하거든. 한동안 낮에는 따듯해서 창문을 열어두고 지내다 갑자기 창문조차 열지 못할 추위가 오는 건 반칙이야. 뭐든 급하게 움직이면 탈이 난단다.


계절만이 아니라는 말이지. 너무 기뻐서 방방 뛰더라도 다시 내 페이스대로 돌아와야 하는 거야. 그래야 신중할 수 있거든. 엄만 너무 점잖아서 탈인데 딸은 기쁨으로 촐싹거리다 길거리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큰일 날 뻔한 일이 많았지. 그럴 때마다 엄마가 너의 기분을 망치는 거 같아 미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야. 하지만 엄마는 너의 건강이 먼저라서 기분 망치는 일을 매번 하는 거 같아.


"여긴 어디야. 기뻐서 온 몸으로 표현하는 건 좋은데 여기는 너무 위험해. 집에 가서 신나게 뛰면서 기뻐하자"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면 너는 엄마를 미워하는 눈빛을 보내지. 흥, 치, 뿡 그런 눈빛.


운을 끌어당기는 법칙 중 하나가 기쁜 일이 있으면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며 기뻐하고 환호하라고 하더구나. 너와 내가 반반 썩 섞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히 생각했었어. 어른이 아닌 네가 어떨 때는 부러워. 기쁜 감정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몸으로 표현하는 네가 있어 어른이 배우게 된단다. 너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저것 재는 어른은 기뻐할 타이밍을 놓쳐 억울해하며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 다짐한다.


부산 체감이 영하권이면 바람이 많이 분다는 소리야. 부산은 바람만 없으면 따스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지만 바닷바람이 불어오면 정말 춥거든. 춥기만 하지 겨울에 내리는 눈을 보는 건 별을 따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야. 겨울만 오면 눈을 기다리는 너에게 미안해. 엄마 어릴 적 눈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겨울 때마다 생겼거든. 근데 막상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 살다 보니 눈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거리는 더러워져 질퍽거리고 빙판 길 때문에 늘 조심해서 걸어야 했어.


연! 너도 눈을 구경한 적이 있었어. 첫돌 때 눈을 구경했지. 기억나질 않겠지만 말이다. 눈이 자주 오는 충청도권에서 잠시 살았었어.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눈에 대한 그리움이 없을 텐데 말이야. 그러나 그리움이 있어야 너도 꿈을 꾸겠지. 


만약 연이 서울로 이사 가자고 하면 엄마는 어떤 반응을 할까. 과연 고향을 버리고 타 지역으로 또 갈까. 안 갈 거 같아. 향수병에 걸려 밤마다 눈물로 지새우고 싶지 않거든. 정말 그런 상황이 온다면 깊은 고민을 할거 같아. 


덜컥거리는 창문을 바라보며 '얼음이 얼겠네. 추위다운 추위가 와서 기뻐. 계절은 늘 그렇듯 계절다워야 제맛이야' 아랫목은 없지만 따뜻한 이불 아래에 몸을 누이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군고구마와 호빵을 먹으며 비타민 가득 머금고 있는 귤을 까먹는 일이 엄마의 소소하고 평범함을 꿈꿨어. 추운 겨울 서로 온기를 나누는 일이 참 그리웠어.


소소한 평범한 일상 너와 함께 해보자. 할머니가 준비해준 화롯불에 옹기종기 모여 군고구마와 호빵을 먹다 목이 막히면 시원한 귤을 까먹는 동화책 주인공처럼 그렇게 따스한 겨울을 보내자.


숨겨둔 두터운 패딩을 꺼내고 코트도 꺼내서 입을 채비를 해둬야겠다. 얇디얇은 옷은 세탁해서 옷장에 정리하고 두꺼운 옷을 옷장에 진열해야 하는 계절. 계절다워지면 주부인 엄마는 바쁘다. 월동 준비를 해야 하니깐.


내일은 너의 생일이야. 그리고 고생한 엄마를 위해 생일상을 준비해야겠다. 네가 태어난 지금 이 순간 정말 추웠어. 진통으로 힘들었던 겨울이 겨울다웠거든. 출산 후 7년이 지났는데 몸은 기억하나 봐. 고통과 환희를..

이번 겨울이 지나면 넌 초등학생이 되는 거야. 기쁜 일이 줄줄이 올 거 같아서 추운 겨울을 기다렸나 봐. 즐기자. 부끄러운 일, 창피한 일, 두려운 일, 용기를 내어야 할 일이 기다리지만 그건 나에게 행복으로 다가오는 거거든. 너도 잘할 수 있고 엄마도 잘할 수 있을 거야. 이번 겨울은 아주 뜻깊을 거 같아. 신난다 신나. 엉덩이 실룩실룩거리는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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