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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Dec 22. 2022

시린 등을 안고 나를 위로하다

엄마 에세이

어릴 때 엄마는 겨울이 오면 "등이 시리네"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등이 왜 시려? 시리면 발가락이나 손가락이 시린 거 아니야" "너도 나이 들어봐라. 엄마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다"


엄마 말의 그 의미를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 설렁한 집안 공기. 보일러가 펑펑 돌아가더라도 집안 공기는 사람 온기보다 못하다. 


아주 오래전에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 아이고 등이 시리다 그 말 이제야 알 거 같다. 다른 곳은 모르겠는데 정말 등이 시리다. 등이 따듯하면 온몸이 따듯함으로 퍼진다.


아이는 유치원으로 향하고 덩그러니 거실에 앉아 있는데 오싹거렸다. 곧이어 등이 시렸다. 집에서 외투를 걸치지 않던 내가 주섬주섬 카디건을 걸치며 '내가 늙어가고 있구나' 실감했다.


카디건을 걸치고 나니 내 안에 흐르고 있던 따듯한 혈액이 순간 도는 거 같았다. '아!! 따듯하다' 왜 나이가 들면 등부터 시릴까? 등이 따듯하면 온몸 전체가 따듯해져 추위를 이길 수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요즘 등이 시려. 등만 안 시리면 추위가 추위 같지 않아" 어제 엄마와 추운 거리를 걷다 한 말이었다. 엄마가 내 나이일 때 느꼈던 시린 등을 지금 내가 느끼고 있었다. 엄마의 그 나이가 지금 내 나이임을 알았다.


서향인 집이라서 오전에는 해를 구경하지 못한다. 흐린 날에는 더 추운 서향집. 한 사람 온기가 절실한 집안 온기. 오후가 되어 창가로 들어오는 해와 아이의 온기가 더해지면 시린 등은 더는 시리지 않는다.


시린 등이 나에게 말하는 거 같다. 외로워도 슬퍼도 그 싸움과 이겨내라고 말이다. 엄마의 시린 등은 '엄마 인생이 왜 이렇게 고단하지'라고 물어본 말이었을 것이다. 지금 엄마는 등이 시리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맏이가 엄마 그 길을 따라가는 거 같다. 외로움과 싸우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인생을 걷고 있었다.


나! 이유 없이 등은 시리지 않은가 봐!

인생은 혼자 가는 거니깐 그거 나 잘 알고 있거든. 시린 등을 끌어안고 나를 다독이며 오늘도 열심히 내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을 거야.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걱정 마. 나는 강하잖아. 그 어떤 역경이 찾아온다고 해도 늘 그렇듯 이겨내고 승자가 되었으니 말이야. 나는 나를 믿거든. 아이를 잘 키울 자신감과 그 어떤 고난을 이겨낼 힘이. 지금은 근데 조금만 시린 등을 느껴보려고' 나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위로한다.


시린 등을 끌어안고 그동안 이겨낸 고난을 그리고 이겨낸 나를 기억해본다. 건강을 잃었다 다시 일어났던 그때를, 세상이 무너질 만큼 바닥을 치다 더는 나락이 없을 지점에서 바닥을 짚고 힘을 낸 것처럼,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느꼈을 때 또 다른 길을 열어준 세상을 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한 여행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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