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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Dec 12. 2022

올드팝은 과거 추억에서 희로애락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 에세이

몸이 춥다고 느껴지는 계절,

아주 뜨거운 물로 샤워해야 되는 계절,

잔잔하고 따스한 음악이 필요한 계절이 바로 지금이다.


갑자기 20년 전 회사생활을 하며 들었던 음악이 생각이 났다. 음악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원하는 음악을 찾게 되는데 나에겐 그게 올드팝이다.


올드팝을 듣고 있으면 얼어붙었던 마음이 사르륵 녹는 거 같고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올드팝을 찾는 사람은 진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누군가의 댓글에 씩 웃었다.


아주 오래전 들었던 추억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엔 올드팝이었다. 돈과 전쟁을 하는 곳인 경리부서다. 분위기는 삭막했고 늘 긴장감으로 모니터와 한 몸이 된다. 환율을 다루던 사장 덕분에 환율이 오르는 시점에 달러를 매도하고 환차익을 손익 대차 대조표를 작성하는 일과가 경리부서에서 이루어진다. 돈 단위가 일반인이 다루기 힘든 액수다 보니 웃음기가 없는 경리 직원들을 위해 오전, 오후 음악을 틀곤 했다.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힘든 곳이 경리부서라서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업무를 보는데 자주 틀었던 것이 올드팝이었다. 오전에는 집중해야 하기에 피아노 선율 곡으로 듣다 오후가 되면 노곤해지는 직원들을 위해 올드팝을 듣기도 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나는 자처했다. 경리부서는 큰 자금이 왔다 갔다 해야 하고 긴밀이 많은 곳이라서 긴장감을 놓칠 수 없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퇴근하는 몸은 천근만근 빵이 물에 젖어 축 처져 있는 모습으로 집에 가곤 했다.


퇴사를 하고 20년이 흘러 올드팝이 듣고 싶은지 까닭을 모르겠다. 그냥 추억이라면 추억이 된 회사생활이 그리운 거 같기도 하다. 그때가 나의 전성시대이기도 하고 도전을 해야 하는 시점에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나에게 늘 좌절을 안겨 주었던 회사생활이기도 했다.


교통편이 제법 편안한 회사가 산업공단으로 이전하면서 운전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을 깨지 못하고 결국 좌천되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이 20년 전 나였다. 지금처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부딪혔다면 아프지 않고 끝까지 회사생활을 했을까 미래를 상상했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나와 회사 운명은 거기서 끝이 났다. 희극에서 비극이자 비극에서 희극으로 전환되었던 것이 그때였다. 각도를 다르게 하면 마지막엔 희극이 될 수도 비극이 될 수 있는 운명이었다.


회사생활에 지금은 미련은 없다. 다만, 일을 끝맺지 못하고 병상에서 퇴직한 것이 한이 되어 남아 있다. 병상에서 퇴사 권고를 받았을 때 정말 억울했다. 본인이 아닌 타인으로 인해 퇴사를 하고 난 후 회사 꿈을 많이 꿨다. 회사 사람들이 내 꿈에 나오는 날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곤 했다. 아마 심리적으로 불안했기에 회사 꿈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퇴사 후 회사 꿈을 꾸게 되면 그날은 조용히 보내곤 했는데 가장 무겁게 다가온 것이 '책임감'이었다. 확실하게 끝맺지 못한 일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나를 힘들게 했다.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한 업무, 미루어두었던 서류, 장부 정리 등 미루었던 일은 언젠가는 정리해야 했던 것이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고 퇴사 이후 꿈으로 나의 심리를 알려줬던 것이다.


지금은 회사 꿈을 더는 꾸지 않는다. 8년 전쯤 회사 사람과 회사 꿈은 끊겼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심각하게 찾아온 불안한 심리를 알기 위해 책을 찾았고 글을 썼을 뿐. 글로 모든 감정을 토해낸 후 회사 꿈은 나의 불안한 감정의 일부분이라는 걸 알았다. 감정을 해소하기를 바랐던 나의 무의식이 꿈에서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회사 생활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기에 가장 힘든 장면이 꿈으로 나타났고 해결하기를 바라는 무의식의 경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는 아니다. 불안하면 글로 감정을 풀어낸다. 그 결과 나를 괴롭히던 꿈을 꾸지 않게 했다. 과거에는 불안한 감정을 해결할 수 없었고 방법을 몰라 마음속에 억눌렸다. 가장 힘들었던 회사 생활 한 장면이 꿈으로 나타났고 현실을 제대로 알기를 바라는 무의식의 소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안한 감정이 회사로 인한 거라고 알았다면 더는 꿈을 꾸지 않았을 텐데. 방법을 찾기 위해 돌고 돌아 알게 된 것에 기뻐하고 있다. 20년 전 다녔던 회사, 20대 젊음을 바쳤던 회사는 매정하게 나를 내쳤다. 20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울 때 꿈을 저버리고 회사를 위해 몸을 받쳤지만, 아프다는 이유로 쓸모없으면 버리는 매정한 회사의 태도에 감정적으로 아파했고 슬퍼했다. 


아픔 감정이 꿈으로 나타났고 해결하라고 했다. 하지만 미련한 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픔을 20년 넘게 끌어안고 살다 이제야 비로소 내려놓게 되었다. 이젠 홀가분한 나, 완전한 나, 미스 김이 아닌 이름 석자를 가진 진정한 내가 되었다.


올드팝은 추억이 있다. 거기에 희로애락이 담겨 있기에 20년 전 들었던 노래를 찾고 찾았는지 모른다. 아픔이 치유되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오래전 들었던 노래를 찾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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