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May 11. 2023

인생은 혼자 가는 거

엄마 에세이

어제 외삼촌 부부가 다녀가셨다. 집에 오신 이유는 딸아이가 쓰던 장난감과 책 그리고 옷등 작아진 것들과 딸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모두 챙겨가기 위해 집을 방문하셨다.


모녀가 살아가는 집을 처음 방문한 삼촌과 숙모는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은 모녀가 살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했을 거라는 걸.


모두 비워내듯 그리고 이사를 가듯 치우고 또 치웠다.

사촌 동생 자녀만 넷. 애국자다.

동생은 워킹맘이며 삼촌 부부가 손자 손녀를 돌봐주고 있다. 사촌 동생이 부러웠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친정엄마와 엄마의 남동생 즉 외삼촌 행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엄마를 비판하거나 삼촌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닌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은 차이인 것이다.

오롯이 혼자서 키워내는 나를 보던 삼촌은 나를 잘 안다.


어린 조카가 이쁘다고 삼촌은 친구를 만나거나 여자 친구를 만나는 자라에 늘 데리고 다녔던 것이 나였다. 그러니 삼촌 눈에는 아직도 여리고 어린 조카로만 보일 것이 분명하다.


혼자 아등바등 이리저리 뛰며 아이를 케어하는 모습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싸면서 숙모는 숙모대로 삼촌은 삼촌대로 집안 곳곳 손 볼 것이 없나 둘러보는 것 같았다.


"이건 임대인에게 말하면 돼요. 삼촌이 굳이 애쓸 필요 없으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너무 위험해. 드라이버 가져와" 결국 삼촌 말에 토를 달지 못하고 삼촌이 하고픈대로 지켜만 봐야 했다.


사촌 동생집에 가져갈 장난감과 그 외 물건들을 차에 실으면서 몇 번이고 나를 부르는 삼촌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모두가 가벼린 빈자리를 보며 그제야 긴 호흡을 내뱉었다. 

"이제야 정리가 되는 거 같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빈자리에 짐을 정리하면서 못 준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사진을 찍어 숙모에게 문자를 전송했다.

"이거 안 줬어요. 람이가 쉬는 날 집으로 와서 가져가면 좋을 거 같은데요"

여기서 람이는 삼촌 둘째 아들이다. 


"다음에 가져가면 되지" 숙모의 답 메시지였다.

"그럼 진이 아이들과 나누어 쓰면 되겠어요"라고 바로 회신 문자를 보낸 후 한참만에 숙모의 메시지가 왔다.


"정아 다대포도 아이 키우기 좋다. 현대로 이사 오면 여니는 식구가 생겨서 좋지 않을까. 삼촌이랑 차에서 그냥 이야기해봤다. 두 사람 보고 나니 짠해서"라는 문자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나와 여니를 보고 간 어르신들은 짠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모녀는 나에게 온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살아갈 뿐인데.

어떤 모습이 타인의 눈에 짠하게 보였는지 내가 나를 마주 보고 싶었다.


엄마는 자신의 인생이 맏이처럼 쉴 새 없이 뛰어다녔기에 맏이의 행보에도 짠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마음으로 짠하게 생각하고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삼자 눈에는 모녀 모습이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내 생일날이었다.

엄마와 엄마의 오래된 남자친구분과 조촐하게 생일 식사를 하는데 그분이 그러셨다.


"마음이 짠해"라고.


아직 사랑을 받고 있어야 할 자식이 혼자가 되어 스스로 생일밥을 차려 혼자 먹는다는 것이 짠하게 보였나 보다. 나는 다시 그분에게 물었다. (난 아저씨라고 부른다)


"아저씨 어떤 대목에서 짠해요. 생일은 그냥 화요일, 목요일 같은 날이에요. 거창할 필요 없는 것이 생일인 거 같은데요. 내가 나를 위해 생일 상을 차리는 거 이건 대단히 멋지고 아름다운 거예요. 누군가가 꼭 챙겨주고 사랑을 받아야지만 생일인가요. 이렇게 마음 맞는 분들과 간소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이고 생일이죠. 매일이 생일입니다. 저한테는"


생일을 그냥 평일로 여긴다는 말에 두 분 어르신들은 놀라 해 했다. 

누군가가 곁에서 챙겨주는 것.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불행한 결혼생활 속에 생일을 찾기란 참, 어려운 숙제와도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활을 하더라도 결국 혼자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를 사서 아이와 단 둘이 촛불을 끄는 그 행위가 더 쓸쓸하고 외로웠다.


지금은 나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도 참 행복하다.

생일날 밥이 아닌 커피 한잔 마셔도 생일 선물을 후하게 받듯 기쁘다.

생일이 뭐가 중요한데.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미역국 한 그릇이면 생일은 충만하고 기쁨이 넘쳐나는 것이다.


삼촌과 숙모 시선에서는 어쩔 수 없는 짠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 짠함을 덮어줄 나의 계획을 대충 적고 다대포도 알아보겠다며 안심의 문자를 전송했다.


혼자서 지내는 여니가 안쓰러웠고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조카가 안타까워 자신들이 돌봐주겠다고 손을 내민 것이다.


나를 생각해 주는 삼촌 부부에게 고맙지만, 이제는 아이들에게 행방되었으면 한다.

삼촌 숙모의 노후에는 아이들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셨음 하는 조카인 내가 간절히 바라는 일 중 하나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 가는 것. 

먼저 떠나보낸 동생을 보니 정말 인생은 혼자가 맞았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에는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하다. 여태껏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했던 나로서는 가족들에게 피해나 민폐를 입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아직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언젠가는 삼촌 가족에게 부탁할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에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기에.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


고맙게도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숙모와 삼촌에게 정말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부모 가정도 행복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