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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ul 17. 2023

이별을 겪어내는 방법

엄마 에세이

저의 형제는 1남 2녀예요.

딸 둘에 늦둥이 막냇동생을 아들로 봤던 엄마는

자신이 원하던 자식을 가졌다고 했지요.

그러나 형제가 많다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같은 뱃속에서 같은 핏줄을

이어온 가족일지라도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

의견 충돌이 있거든요.

그중 여동생은 엄마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아이,

외로움을 가장 많이 탔던 아이였어요.

이 아이의 기질을 알았다면

엄마는 지금 미안해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제 다 지난 과거.

그리고 사랑이 고팠던 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곳으로 

좋은 곳에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사람만 만나고

아주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뿐이라고 말했죠.

정말 기도 말고는 그 아이를 애도할 길이 없었어요.

엄마 꿈에 나타난 동생과 외할머니를 

보고선 꿈속에서 한없이 울었다고 해요.

그 울음은 미안함과 함께 그 아이의

상처를 보듬어 준거라 생각해요.

엄마는 죽은 자와 꿈에서 대화하곤 하죠.

"할머니 여기 있음 엄마가 자꾸 울어. 우리 가자"라며

외할머니 손을 잡고 어디론가 사라진 동생 모습을 보다

잠에서 깼다는 엄마 말에 심장이 아려왔어요.

동생은 그곳에서 엄마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죠.

할머니는 엄마를 데려가려고 머뭇거리는 사이

동생이 할머니를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진 후

더는 동생과 할머니가 꿈에 보이지 않는다고

며칠 전 엄마와의 대화에 안도했어요.

좋은 곳에 갔을 거라고 믿고 싶고

믿어야 우리가 살 수 있으니 말이죠.

엄마와 대화 후

동생이 이곳을 떠난 지가 석 달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동생이 떠난 빈자리를 바라볼 때마다,

거실에서 자던 그 아이가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된 채

언니와 함께 보내고 싶어

매주 주말에 왔던 그 아이가 생생하게

떠올라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엄마 역시 동생 임종을 지켰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아이 마지막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어요. 모녀는 막내딸이자 하나뿐인 여동생을

잘 보내는 방법을 찾지 못했죠.

그저 시간만 흐르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책을 출간함과 동시에 동생의 안타까움 죽음으로

좀처럼 일상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렇게 저는 저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이겨내고 애썼던 지난날을 회상하면

참 대견스러웠습니다.

충분한 애도 시간을 가졌거든요.

석 달 동안 많이 그리워하고

많이 울고 동생 이름을 목청껏 불렀어요.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이별을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오은영 박사가 

그러더라고요. 며칠 전 티브이를 보다 알게 된

가족과 이별을 겪었을 때 제대로

애도하지 않게 되면 불안함과 죄책감으로

살아가지 못한다고 했거든요.

그 프로를 보며 저는 제가 했던 행동이

올바르게 이별을 겪어낸 방법이었어요.

사랑하는 동생과 이별, 육신이 떠나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는 현실을 현명하고 슬기롭게 그리고 지혜롭게

이겨냈음을 비로소 알았어요.

대화로

글로

슬픔을 애도하고

행복했던 추억도 꺼내어

회상하면 슬픔이 한결 편안해진다는 말에

한동안 했던 무의적인 행동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동생이 떠난 지 한 달 채 되지 않았을 때

숨겨둔 앨범 사진을 꺼냈고

동생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며

딸아이와 그때 그 추억을 나누었어요.

여니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이모를 회상하며

이모가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어린 딸은 죽음에 대한 이해를

 이모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살아 내고 있었어요.

울고 싶으면 눈물을 훔쳤는데 그건 아이가 학교 가고

나서였어요. 큰 소리로 대성통곡을 하며

동생 이름을 불렀죠. 애써 잊으려 하지 않고

자연스레 올라오는 슬픔을 밖으로 토해낸 과정이었습니다.

딸은 이모가 아파서 세상을 떠난 것에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여니 시선에서 여니가 이해하기 쉽게 

말해줬어요.

"병이 들어 일찍 세상을 떠나든

나이가 많이 들어 더는 살아갈 수 없을 때,

수명이 다했을 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는 거야.

너도 엄마도 언젠가는 하늘로 떠나는데

이모가 조금 일찍 간 거지. 

이모가 많이 아팠거든. 이제는 그곳에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엄마는 믿고 있어.

여니 이제 이해하니?"

"그럼 나도 엄마도 언젠가는 하늘로 떠나는 거야.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나는 죽기 싫은데."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어. 엄마가 꽃을 사 오잖아.

키우다 시들지. 시든 이유가 꽃의 생명이 다해서 우리 곁을 떠나는 거야.

강아지도 이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은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해. 그래야 새 생명이 탄생하거든.

이건 규칙이라고 말할게"

"규칙을 지켜야 해?"

"학교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잖아.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그러니 규칙을 지켜야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거야.

인간 생명에게 적용되는 규칙은 조금 다른데 어느 정도

살다 보면 나이를 먹잖아. 그 나이가 100살이 되든

70살이 되든 이모처럼 44살이 되든 자신이 살 수 있을 만큼 살다

가는 걸 규칙으로 정했대.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

지금 살고 있잖아. 즐겁게 살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재미나게 놀다 떠나는 것이 

인간에게 내린 벌이야.

지금은 엄마 말이 이해 가지 않겠지.

하지만 곧 이해할 날이 올 거야."

"그러면 엄마? 할머니도 하늘로 언젠간 떠나는 거야"

"그렇지. 그러니 사람들이 인생이 짧다고 말하는 거야.

너도 엄마만큼 살다 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현재를 멋지게 살려고 노력해.

그래서 엄마가 여니에게 좋아하고 재미있는 것만

하라고 말하는 거야. 이렇게 살아도 시간은 짧거든"

"알았어. 엄마! 나는 맛있는 거 먹고

재미나게 놀고 즐겁게 하루를 보내도록 할게.

근데 어떨 때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나. 그래도 되는 거지?"

"그럼, 화가 나고 짜증이 나면 엄마한테 너의 마음을

말해줘야 해. 너의 마음을 말해주지 않고 화를 내거나

짜증 내면 엄마도 화가 나거든. 이유 없이 엄마한테

짜증 내면 엄마도 기분이 나빠져서 여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돼.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일이 어렵지만

자꾸 연습하면 자연스럽게 될 거야."

"알았어. 이모가 떠나서 슬프지만

이모가 잘 지낼 수 있게 기도하자.

우리 이모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그러자. 지금 할까?"

이런 날을 잘 보내게 되어 지금 이 시간이 주어졌어요.

영원히 살 수 없음을 이해하고

받아 들어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고

 슬픔이 한결 편안해진다는 것을

아이와 대화로 끌어냈어요.

아이와 죽음에 대한 말을 하고 나서야

동생 사진을 꺼내어 정리하며

저 스스로 동생을 애도하고 추억을 소환해

슬픔을 숨기지 않고 토해냈음을 알았어요.

슬픔을 인정하지 않고

속으로 삼키게 되면 정신과 마음이 아파져요.

우리는 육체의 아픔보다 정신적 아픔이 더 힘들다는 걸

누구나 잘 알고 있지요.

저는 저의 정신이 올바르게 되어야 어린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그 목표 하나로 책 홍보를 뒤로하고

이별을 열심히 했던 거 같아요.

때때로 그 아이가 보고 싶고

그 아이 목소리가 듣고 싶어

잠에서 깨기도 하고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 간간이 떠오르지만,

 그건 그 아이와 함께 한 추억이

떠오른 거라고 나를 다독여요.

그 아이와 함께 간 삼겹살집,

그 아이와 함께 간 카페,

 그 아이가 입었던 옷,

그 아이와 함께 찍었던 사진,

그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함께 했던 시간들,

모두 추억이 되어 추억 상자에 고이 모셔둡니다.

충분히 그 아이를 애도하고

충분히 그 아이를 슬퍼하고

충분히 그 아이를 기억하므로

내 감정은 건강하게 숨 쉬고 있어요.

인생의 고통은 예측할 수 없으니 아이에게

그냥 이대로 받아들여야 하다는 걸 인지시켰어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에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가 훗날 내 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있어요.

수많은 고통과 역경을 도움받지 못할 때 엄마 인생을

엿본다면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책을 쓰는 이유는 내 아이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녀들에게

나누고 싶었어요.

매일 일어나는 한 가지를 한 줄로 요약해서

기록하면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살아보지 못한 그 시간과 그 나이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엄마가 지내온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이에요. 

엄마가 살아온 인생 한 챕터를

자신 인생에 맞게 적용하다 보면 세상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저는 믿어요.

저는 맨땅에 헤딩을 하며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지만,

그 좌절과 다시 일어설 힘을 글로 기록해 둔다면

힘들게만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안심하고 자신만의 무대를 살아가지 않을까.

저는 저의 마음을 담아 글을 써 내려갑니다.

먼 훗날 후손에게 남길 글은

위대하고 위대하거든요.

저는 동생을 떠나보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그 과정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이별하고 있어요.

다양한 슬픔과 시련을 그냥 흘러 보내지 않고 

기록하고 담아냅니다.

더는 동생이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아요.

49재 때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날 밤

꿈에 나타난 동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거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 아이는

사진으로 자신을 남겨주었지요.

사진 찍는 걸 부지런히 했던 그 아이는

자신이 사라져도 기억해 달라는 뜻이

아닐까, 두루두루 잘 지내며 살던 그 아이는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알리는

시간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우리도 잘 살다 가는 걸로.

그 아이가 잘 살다 간 것처럼.

모두 즐기다 가요.

원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모두 걸 하고 간 그 아이는

더는 이곳에 미련이 없나 봐요.

오늘은 동생에게 편지 쓰려고 했는데

또 글이 삼천포로 빠졌어요.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지요.

그러나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한결같이 "힘내"라고 말합니다.

힘내라는 말속에 당신을 응원하고 있어라고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힘든 삶 속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힘내'라고 하는 말에 알 수 없는 헛웃음이 나요.

힘을 낼 수 없는데 어떻게 힘을 낼 수 있을까요?

하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있게 해석해서

위로로 받아 들어야 해요.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위로하고 싶은데

딱히 해줄 말이 없어서 우리는 '힘내'라고 합니다.

이럴 땐 "토닥토닥. 당신의 슬픔을 공감해요"라는 말 한마디가

더 값어치가 있어요. 힘내라는 단어를 내가 가진 슬픔을

공감하는구나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동생과 이별의 시간은 석 달이었고 

석 달 동안 

그림을 그려 성취감을 맛보았고

잊고 있던 친구를 만나면서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글을 쓰며 저에게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며 지내고 있네요.

이곳은 장맛비로 사람이 실종되고

산사태가 일어났지만,

동생이 있는 그곳은 평화롭겠죠.

동생이 보고 싶은 초여름 앞에서 이별을 겪어낸 방법을 여러분들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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