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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빈 작가 Jul 18. 2023

엄마와 의견 대립이 나은 일상과 염려

엄마 에세이


또 비가 오네요. 


어제 하루 비가 오지 않더니 오늘은 어김없이 비가 내립니다.



사실 남인숙 작가님 강의가 부산에 있어요.


신청을 했는데 아이가 가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으로


일정이 무너지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왜 저보고 가지 말라고 했을까요?


어젯밤 엄마가 저희 집에 오셨어요.


함께 저녁을 먹고 나서 자신이 산 반바지를 입어라고


하더군요. 근데 이 바지를 저에게 한 벌 준 적이 있다며


우기는 현장을 아이가 보고 나서 할머니가 집에 갔으면


좋겠다며 할머니 앞에서 말했죠.



엄마가 준 바지가 제 스타일이었다면 제 기억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하고 떠올려 봐도 기억 속에 문제의 반바지는 없었어요.



저는 어떤 사람이냐면요.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거든요.


며칠 전 엄마가 가져온 바지를 제가 입었다고 하는 거예요.


서로 말이 맞는다고 말하면서 소리가 커졌지요.


아이는 그 소리에 무서워 안방에서 큰 소리로 울었어요.



그 울음은 엄마와 할머니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는 말을


울음으로 했던 거죠.



엄마가 몇 년 전 약간의 치매 증상이 보이는데요.


금방 제가 한 말도 잊어버리고 또 물어보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요.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갇혀 


다른 사람에 준 기억을 아예 떠올리지 못하고


가까운 사람 즉 자식에게 준거라고 단정 짓는 착각 때문에


저와 잦은 마찰이 생겨요.



엄마는 자신이 깜빡하는 건 나이가 들어서다고


포장하지만 이건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걸


저는 이미 알고 있어요.



엄마가 하는 행동과 말을 시간차를 두고 다시 말하면


그제야 다른 사람에게 줬거나 나에게 주지 않았음을


인정해요. 인정하기 전까지 우기고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고


강하게 주장하는데 저는 미칠 노릇이지요.



이런 마찰 때문에 엄마를 밥 한 끼 정도의 시간만


내고 더는 시간을 내지 않게 되었어요.



제 기억이 맞는데도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며 우기는 통에


대화가 지속하지 못하거든요.


엄마를 이해하다가도 몇 해 전 잘하던 기억을 못 하는 


엄마 모습에 속상하기도 하고


엄마가 외할머니 모습 그대로 따라가는 


행동이 불편해요.



저녁에 와서 저녁밥만 먹고 문제의 반바지 때문에 서로


기분만 상한 대로 있다 다음날 비가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에


엄마는 집으로 가겠다며 갔지요.



비가 400미리 정도 온다는 소식에 놀란 것도 있지만 


불편한 상태로 있는 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어요.



아침에 강의장으로 가면 연락하라는 엄마 말에 알겠다며 대답했고


잠자리에 드는 아이가 내일 가지 말라고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했어요.



아이는 아마 할머니와 엄마가 함께하면 의견이 안 맞아


 언성이 높아지는 걸 막기 위함일 거예요.


그리고 큰 목소리가 자신의 가장 불편한 부분을 건들어서


엄마가 강의장 가지 않기를 바라는 거예요.



아이가 부탁까지 하는데 억지로 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에


결국 강의장으로 가지 않았어요.



이때 나를 들여다봐야 해요.


불편해하고 불안해하는 저를 봐야 다독일 수 있거든요.



벡스코 강의장에 가야 하는가?


정말 가기 싫었던 것일까?


가고 싶었던 것일까? 나에게 물었지요.



반반이었어요. 비가 거세게 오면 저는 아이 학교로 가야 해요.


최근 장맛비를 보면 바람과 함께 거세게 비가 쏟아져 


일 학년 아이 힘으로 비를 뚫지 못하기 때문이죠.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학교 교문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안전하게 학원차를 태워주어요.



만약 제가 강의 장에 강의를 듣고 있었다면 


내심 불안해서 지금 비가 많이 오는지 바람은 부는지 체크하게


되는 상황에서 강의는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되겠지요.



지금 강의장 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것도 불만이에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외출한 적이 없어요.


일찍 마쳐서 그 좋아하던 혼밥이나 혼카페를 가지 못했으니깐요.


오랜만에 내가 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서


아쉬움과 허탈함이 남았지요.



양 갈래에서 결국 저는 전자를 선택했어요.


후회는 짧게 하고 또 기회가 있을 거니깐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저의 집에서 벡스코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대략 한 시간가량


시간을 내야 해요. 왕복 두 시간인데 과연 두 시간 투자해서


나에게 얻는 건 뭘까라는 요점에 집중하니


내가 가장 존경하는 남인숙 작가를 볼 수 있고


작가의 강의를 듣고 여자에 대한 깊이를 배울 수 있지요.



하지만 이번 기회는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해요.


엄마가 가져온 반바지만 아니었더라면


오늘 상황은 어땠을까 이미 지난 과거를 회상해 봅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맏이인 제가 좋아한다고 생각을 왜 했을까요?


내가 입어본 적 없는 그 반바지가 엄마 기억에는 내가 입고선


"이거 나한테 맞는데"라고 말한 맏이가 엄마 기억 잔상에 왜 남았을까요?


내가 하지 않은 말을 왜 엄마는 내가 했다고 믿었을까요?



"내가 이 옷이 마음에 들었다면 내가 한 말을 기억해야지.


내가 치매환자도 아니고 내가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겠어.


그리고 이 바지 내 스타일 아닌데. 엄마도 알잖아.


바지는 잘 입지 않고 입더라도 긴 바지만 입는 거.


최근에 엄마가 가져왔다던 그 바지는 집에 없어.


엄마가 왔을 때 노란색과 핑크색 치마 두 개 택배로 배송되어


엄마한테 자랑한 거 말고는 없어. 


치마 한 장에 만 원이라며 괜찮지 않냐고 엄마에게 내가 물었잖아.


그 후 우린 칼국수 먹으러 갔었고. 기억 안 나?"



엄마는 최근에 가게를 그만두고 저희 집에 온 적은 딱 두 번이에요.


과일 가져다준다고 온 날 문제의 반바지를 가져왔다고 착각한 거지요.


그리고 어젯밤 온 것이 다인데 내 기억에 없는 문제의 바지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어젯밤 정말 황당해서 제 속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이 바지 안 입을 거야?"라는 엄마 말에 저는 두말하지 않고


안 입는 옷이라고 엄마 입으라고 했어요.



저는 옷을 쌓아두고 있지 않아요. 스타일이 아니거나


원하는 색상이 아니라면 그냥 가져온 사람에게 다시 가져가라고 하거나


받아오지 않아요. 근데 문제의 반바지가 제 스타일이 아닌데


 왜 저에게 올까요?



시간이 지나고 다시 물어보려고요. 누구한테 주고 나한테 줬다고 우겼냐고요.


문제의 바지는 누구의 손에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비워내고 필요한 옷만 가진 저는 물건 소유욕은 없어요.


다만 꼭 필요한 물건이나 옷은 구입하기는 하지만요.



어젯밤 오늘 오전 나의 하루를 살펴보면 가장 황당하고 가장 아까운 


시간이기에 기록해 둡니다.


엄마 치매를 방지하기 위해 내과에 함께 가봐야겠어요.


요즘 치매 예방 접종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주사가 싫으면 알약도 있다고 하니 엄마를 설득해


조만간 병원 다녀와야겠어요.



사촌 동생도 숙모를 모시고 치매 예방 접종을 했다고 하니


엄마와 자녀를 위해 치매 예방하는 것도 한 방법인 거 같아요.


할머니처럼 치매로 정신을 놓으면 저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듯해요. 저도 그 피를 약간이라도 받았으니 예방할 거예요.



엄마의 기억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지금도 금방 한 말을 잊고 또 물어보는 


엄마를 보면 속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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