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용서는 화해와 함께 오는 인생 트랙이다.

긍정 확언 필사 8일 차

by 치유빛 사빈 작가




[용서 편]



고통스럽고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에 대한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막다른 길에 서서 상황이나


사람을 원망하면서 살 수도 있다.


반면에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든지 기꺼이


나 자신을 용서할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 즐겁고 활기찬 삶을 누리는 인생 트랙으로


옮겨갈 수 있다.


나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이든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있다.










오늘은 최고로 더운 거 같아요.


여기는 기온이 30도인데 낮 최고 기온은


32도까지 올라갈 거 같아요.


어제 최고 기온도 32도였거든요.



점점 더워지는 여름.


짜증보단 시원함을


화보단 즐거운 것만


찾아 행하는 건


우리의 몫이겠죠.



아이가 방학을 하면서


진득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기가


어려워요. 때가 되면 아이 간식이며


삼시 세끼를 챙겨야 하고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보는


물음에 답하다 보면


글을 끝까지 쓰지 못해요.


쓰고 싶은 단어나 문장이 떠올라도


아이가 물어보면 금세 잊어버려


그 화가 아이에게 향하는데.



이러다 보니 쓰다 만 글들이 제 노트북이 그득합니다.



어떨 때는 아이에게 하소연할 때도 있어요.


이건 아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


그 원망이 아이에게 가네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질 못하는 상황으로


나쁜 감정이 올라와 아이에게


죄책감을 주는 예전 과거로


돌아간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저는 저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그런 소유자였나 봐요.


예전에는 몰랐어요.


제가 저를 모르니 상대도


모르는 건 당연한 거지요.



결혼 생활을 하면서 온전히 저를 위한


시간을 갖지 못했고 아니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걸 몰랐어요.


그저 상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니


마음이 힘들고


여유가 없어 얼굴 표정이


일그러져 결혼 생활을 이어갔던 거예요.


저는 왜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온전히 아이에게 맞춰진 초점이


저에겐 부담감으로


찾아왔다는 걸 알아요.



그리하여 제가 선택한 시간은


밤입니다. 최근에는


이른 아침 저의 일상이 시작되었는데요.



방학 한 달 동안만 늦은 밤, 이야기를


풀어내야 아이에게 덜 짜증을 내고


아이에게 덜 화를 낼 거 같거든요.



아이는 죄가 없어요.


못난 저의 성격이 문제인 걸로요.


문제를 알았으니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밤 시간이 어려우면


이른 아침 시간을 내 시간으로


찾아야 했거든요.


근데 아이가 늦게 자니 이것 또한


쉽지 않아요.



10시 30분에 자기로 해놓고 11시까지 버티다


자요. 여기서 문제점 하나,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다 제가


먼저 잠이 들어요.



딸은 보통 10시간 자는데


학교 다니고 나서부터 8시간 잠을


자니 2시간을 낮잠으로 채우려고 했어요.


학교 다닐 때는 낮잠과 전쟁을 치러야 했지요.


푹 잔 낮잠으로 밤잠이 안 와


혼자서 울었던 딸.



힘들더라도 낮잠은 가급적 재우지 않지만


잠이 참기 힘들 때는 30분이라도 재워요.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고


제 목청이 20층 아파트가 들썩일 만큼


큰 소리가 나요.


아이는 더 자고 싶은 낮잠을 못 자서


투정을.


저는 밤잠을 자야


학교 가서도 힘들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쳐요.



근데 지금은


방학한 딸의 패턴을 보면 밤엔 늦게 자고


아침엔 늦게 일어나지요.



이러니 제가 숨이 막히고 말더라고요.


오늘 아침은 딸이 10시간을 자고 일어났는데


이것도 제가 먼저 일어나서


사부작 거리니 일어났어요.



그리고 딸 앞에서 선언했어요.



"너 늦게까지 자니 엄마는 일찍 일어나서


글을 써야겠다"고요.


그랬더니 그래라고 하네요.



잠이라도 혼자 자면 좋으련만.


이것도 아이를 기다리고 믿어줘야 어느 순간


스스로 자겠죠.



혼자 자는 건 무섭다고 하니 억지로


밀어붙이지 못해요.


저도 어릴 때는 무서워서 혼자 자는 걸


꺼려했거든요. 그나마 여동생이 곁에


있어줘서 동생 숨소리를 들으며 잤지만


딸은 혼자라서 오직 저뿐이거든요.


그걸 알면서도 저는 저의 욕심을


내기도 합니다.



혼자 화장실 가서 뒤처리도


스스로 목욕하는 것도


스스로 옷 입는 것도


스스로 등, 하교하는 것도


이 모든 것들은 때가 되니 스스로 했어요.


딸을 보면 기다리기를 잘했다 싶어요.



지금 제가 원하는 그것.


스스로 자고


스스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또한


기다리고 믿어주면 어느 순간


짠하고 하겠죠.



딸이 스스로 하나씩 해내는 모습에


엄마인 저는 더 많은 것을 바라지요.


이렇게 글로 풀어보니


딸이 대견스럽고 장한다는 걸 또


한번 알게 됩니다.



아이는 성장 중이며


나 또한 성장하는 과정이겠지요.



저는 딸들의 육아가 큰 딸 여덟 살에


멈췄어요. 큰 딸이 여덟 살 때


사경을 헤매며 이 병원 저 병원 다녔어요.


결국 둘째 딸 넷 살까지 육아를 한 거죠.


멈춰버린 육아를 셋째 딸과 함께


하니 모두가 새롭고


또 많은 것을 바라고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있어요.



셋째 딸이 제 곁에 없었다면 아마


지금 제가 없었겠죠.



이렇게 글과 마주하고


소통하는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이런 삶을 원했던 거예요.


현실을 보면 내가 상상한


삶이거든요.



셋째 딸이 제 곁에서 지켜주니


가능한 삶이에요.



이 삶이 제게 오기까지


'용서'가 없었다면


아마 가능하지 않았을 거예요.



나를 힘들게 하며 급기야 상처를 준


그들을 계속 미워하고 있었을 겁니다.


나와 그들을 놓아주고 용서하니


저의 잘못된 부분을 적확하게 보였고


인정하게 되었지요.


인정은 용서와 동행합니다.



누구나 한 가지 사연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사연을 안고 살면서


남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부모를 탓하다 보면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하지만 성장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안고 있는 사연을 수치스러워


하지 않아요.



그 사연을 근사하게 바꿔놓지요.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살아오면서


나에게 상처를 준 그들과


상처를 받은 나와


나에게 상처를 준 나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그들에게


용서하고 화해하는 거지요.



나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과 같아요.



남이 준 상처에 내가 또 다른 상처를


내지 말고 상처를 보듬어 주고


연고를 발라주세요. 그리고 나를


용서하고 이내 상대를 용서하세요.



연고를 바르면 새살이 돋듯


마음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나면


용서의 새살이 돋아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내가 나와 친해야 하는 건


타인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그 이상으로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그러려면 독서를 하고 명상을 하고


내 마음을 먼저 알아야겠지요.



'용서'가 어떤 건지 모르겠다면


일단 명상부터 해보고


그것도 잘 안되면 책부터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4년 동안 독서 한 결과 기준이 생겼어요.


책에서 하는 말을


저만의 언어로 재 탄생되지요.



저도 처음엔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에


저항이 왔지요. 책에서 말한 전부 저항이 왔어요.



저는 책을 읽은 4년 동안


헛되이 보내지 않고


저항을 이겨내서 이렇게 소통하는 글을


쓰고 있어요.



자신을 먼저 사랑하게 되었고


딸에게도 너 자신을 이뻐해 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너의 미운 부분을 싫어하지 말고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라고


했어요. 여덟 살 딸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이쁘게 보이는 것보다


네 눈에 이뻐 보이면 되는 거라고 다시


풀어 말했어요.



네가 실수를 해서 엄마가 야단을 쳐도


너는 너대로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라고 마음속으로 말해주면 되는 거라고


말해주었죠.



이렇게 자신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 누구보다 자신과 친해지겠죠.


거기에 더해 자신이 안고 있는 상처를


스스로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않을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저도 그렇게 했으니 말이죠.




'용서'


상처를 준 타인을 용서하기도 힘든 그 일


나 자신에게 용서하라니.


힘든 여정이지만


못할 것도 없지요.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고


나를 용서해야 한다면


긍정 확언 용서 편을 여러 번 읽고


쓰기를 권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