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빈 작가 Sep 29. 2023

가장 눈부신 순간의 기록은 나를 찾아가는 질문이겠지

도서 서평

추석이네요. 어제는 조부모님 산소에 찾았어요. 안 가려고 늦잠도 자고 아침을 먹으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막내 삼촌께서 연락이 왔었어요. 그리고 사촌 동생까지 연락이 온 거예요.

같이 양산 가자고요. 이래저래 아파서 못 가겠다고 했더니 집에 있으면 뭐 하겠냐며 바람 쐬러 간다고 생각하고 가자는 삼촌 설득에 못 이겨 외출 준비를 했어요.

막상 외출하니 지친 몸도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산소에 도착하니 어찌나 덥던지. 거기다 성묘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또 한 번 놀랐어요. 사촌 동생들과 큰삼촌 내외는 막내 삼촌 차를 타고 왔고 저와 엄마는 둘째 삼촌 차를 타고 양산에서 만났어요.

사실 어른들 모임에 여니가 가장 심심해해서 모녀만의 데이트를 하려고 계획을 잡았죠. 영상도 촬영하면서 하루를 보내려고 했는데 사촌 막냇동생과 딸도 함께한다는 소식에 친척 모임에 합류했죠.

저에게는 조카인데요. 여니와 한 살 차이였고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거 같아 막내 삼촌 설득과 사촌 동생 설득에 부랴부랴 준비했어요.

요즘 추석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고지식한 외갓집 식구를 보면서 알 수 있었어요. 밤 12시에 제사를 지내던 외갓집 어른들은 어느 순간 이런저런 이유로 제사 시간과 날짜를 바꿔가며 지내고 있었어요. 큰삼촌 댁에서 차례를 지내야 하는데 큰 숙모가 아파 노선을 바꾸게 되었어요. 큰 숙모가 몇 달 전부터 입맛이 없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소식에 온 가족이 걱정했죠.

맏며느리가 아프니 아래 동서들은 산소에서 차례를 지내기로 결정했고 산소에서 차례를 지내고 한우 먹기로 한 계획이 온 가족을 모이게 했던 모양이에요.

다 모이니 친척들이 무려 15명이었는데요. 어른 11명 소인 2명 유아 2명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어요. 시끌벅적 우왕좌왕하며 한우를 먹었고 다들 모이기 힘든데 이대로 헤어지기 싫다며 양산에 핫한 카페를 찾았어요.

주위 풍경을 보니 이제는 제사, 차례라고 해서 명절 전날 음식 하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간단한 차례상으로 산소에서 지내고 가족끼리 맛있는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오후 한때를 지내는 모습이 제가 그동안 그리워했던 풍경이었어요.

날이 더웠던 어제. 산소는 햇볕이 내리쬐었죠. 여름이 힘든 조카를 위해 큰 우산으로 햇빛을 가려주면서 조카 앞에서 삼촌 속마음을 털어내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어요.

"할머니는 삼촌을 좋아하지 않아, 할머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거든"

막내 삼촌 어린 시절 큰삼촌 사랑은 할아버지에게 받았고 둘째 삼촌 사랑은 할머니에게 받았음을 산소에서 토해내는 듯했어요.

옆에서 듣던 엄마는 "할아버지는 큰삼촌을 좋아했고 할머니는 둘째 삼촌을 좋아했거든. 그래서 막내 삼촌이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주워왔어. 도대체 나를 왜 낳았는지" 막내 삼촌이 간직한 내면의 상처에는 '나도 사랑해 줘. 엄마가 원망스러워'라는 외침을 들을 수 있었어요.

누구나 내면에 상처받은 아이가 있나 봐요. 사실 조부모님 자녀가 3남 3녀였고 유독 편애가 심했어요. 그러니 어린 막내 삼촌은 형제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은 듯했어요. 삼촌 얘기에 조카인 제가 뭐라 말할 수 없었어요. 그냥 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아니까요. 막내 삼촌은 조부모님 사랑을 받기 위해 사고란 사고를 치며 다녔다는 과거까지 듣게 되었어요.

사고를 쳐야 그나마 부모님 눈길을 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싸움과 고함이 오가던 명절은 더는 보지 않아서 좋았고 간소하게 차례를 지내는 모습에 후손인 우리들도 부담이 덜 했어요. 조만간 명절에 여행 가자고 할 듯한 분위기였어요.

외갓집 모임에는 가급적 끼어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때론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엄마 마음이 덜 불편함을 알아요. 엄마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내 마음이 불편하면 안 되니깐 조율을 잘해서 어른들 모임에 참석해야 할 거 같아요.

4일 동안 불면증과 표피 낭종 치료에 등이 따갑고 가려웠으며 입안이 헐어서 몸 컨디션은 밑바닥이었어요. 호르몬제를 복용한 후 기분이 널뛰었어요. 하늘과 땅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짜증이 최고치여서 더는 글을 쓸 수 없었어요. 어제 하루, 총무 역할을 한 나는 바쁘게 뛰어다녔고 불면증이 사라져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어요. 추석 당일 오늘은 토스트를 먹으며 뒹굴뒹굴 컨디션을 올리는 중입니다. 며칠 전 납골당을 찾아 동생을 보고 온 것이 엄마와 저에게 큰 위안이 되네요. 아마 동생도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산소에 오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조상을 잘 섬기면 조상 덕으로 하는 일이 더 잘 되는 거 같아요.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을 읊으며 먼저 그곳으로 떠난 동생을 회상하며 추석을 보냅니다.

명절 분위기가 바뀐 어제, 다들 편안한 모습으로 차례상을 차리는 어른들을 바라보며 더는 제사로 며느리들을 힘들게 하지 않을 올바른 시가집 모습이었어요. 

해피 추석은 싱글맘에게는 그저 평범한 날입니다.

나를 찾아가는 질문들

어디선가 알게 된 책이에요. 나를 찾아가는 질문들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중고책으로 구매했어요. 

중간중간 나조차 답할 수 없는 질문에 어찌나 당혹스럽던지요. 이로써 질문으로 나를 더 깊게 알게 된 책이기도 해요.

나를 찾아가는 질문들

일러스트 다이어리 북이라서 질문에 답하기가 수월해요. 절반 정도 질문에 답하기도 했고 답하지 못한 질문에는 나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해요

나를 찾아가는 질문들

감정, 생각, 느낌 등 다양한 표현으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그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에요.

오직 나를 위한 여정이죠. 

나를 찾아가는 질문들

명절에 책을 들여다보며 지내는 지금이 참 평온해요. 친척을 만나고 가족을 만나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는 사람에게 너무 시달려 지금이 가장 소중하고 매일이 선물 같아요. 돈이 많아야 행복한 거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지요.

내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안 가진 것이 없어요. 넘쳐흐를 지경이라서 매일이 선물이고 매일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몸이 아파 건강한 삶을 살지 못했을 때 다시 나에게 삶이 주어진다면 매일을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다짐했어요. 어떤 역경과 고난이 올지라도 주저앉지 않고 행복하다, 기쁘다 생각하며 지내야겠다고. 다시 삶이 주어진다면 더는 억울해하고 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결과 지금 매 순간 매시간 참 고맙고 행복해요.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저녁에는 뭐를 먹을까 고민하는 일상은 아주 평범한 일상이에요. 평범한 일상이 이런 거 아닐까요?

고난, 역경, 힘겨움, 시련 등 다양한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멘털이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문제를 해결하며 감사함을 잊지 않는 거. 감사함이 없었다면 건강을 찾지 못했을 것이고 새로운 삶을 누리지 못했을 거예요.

만약, 지금 결혼생활 중이라면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남편과 부모에게 말할 거예요. 현명한 내가 되어 삶의 주인을 뺏기지 않을 거라는 굳건한 마음.

딸은 어제 여파로 외출을 하지 않으려 하네요. 집에 있는 엄마와 저녁 한 끼 먹으러 가려고 했더니 집에서 먹자고 하는 딸. 피곤하기는 엄마도 마찬가지인데 딸은 집에서 우동이나 라면 먹자고 하네요.

변해가는 명절 풍경을 맞이하며 이제는 아주 간단하고 간소한 차례상과 제사가 며느리, 딸, 아들, 사위들 그리고 부모들조차 연휴에 여유를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예전에 명절에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부러움을 애써 피했거든요.

'아, 나도 명절이나 제사 때 간소하게 지내고 여행 가면 얼마나 좋을까. 저들이 부러워. 나는 이렇게 부엌 댁으로 튀김이며 나물을 하는 동안 여행 가는 그들은 조상을 제대로 모시지 않은 자야'라는 내면의 소리는 부러움과 비아냥 두 가지가 왔다 갔다 했어요.

지금은 알겠어요. 마음으로 준비하는 음식은 조상들도 충분히 이해할 거라는 걸요. 안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음식을 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차려낸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명절을 보내는 것이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명절 증후군이 없을 거 같네요.

문화가 점점 바뀌는 세상. 그걸 받아들여야 화병이 생기지 않아요.

해피 추석, 해피 연휴 보내기를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 사랑 노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