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언장 시리즈 1 봄날, 너를 기다리던 이야기
이른 봄, 너를 알게 되었어. 평소처럼 아르바이트 준비를 하고 있던 엄마였지. 그런데 갑자기 생기지 않던 현기증이 느껴지고, 계절에 맞지 않는 복숭아가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어.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일을 했지. 하지만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후각 탓에 속은 점점 불편해졌고, 몸이 이상하다는 걸 직감했어. 바로 약국으로 달려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확인했지. 붉은 두 줄이 나타났을 때, 기쁨도 잠시, 이미 두 아이를 놓친 경험이 있기에 무조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
그 후, 아주 심한 입덧이 시작되었어. 속이 비면 더 울렁거리고, 먹으면 먹은 대로 소화가 되지 않아 힘들었지. 그동안 먹던 음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먹고 싶은 것도 없었어. 문득 떠오른 건 돌솥비빔밥이었어.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아빠에게 돌솥비빔밥을 사 오라고 했지. 다행히도 돌솥비빔밥만은 속을 조금 편하게 해 주었어.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복숭아가 너무 먹고 싶었어. 퇴근한 아빠에게 물었지만, ‘없지’라는 단호한 대답에 실망했어. 그런데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식탁 위엔 다양한 복숭아가 놓여 있었어.
빛깔이 곱고 은은한 향이 나는 그 복숭아는, 울렁거리던 속을 달래주는 작은 기적과도 같았어. 알고 보니, 단호하게 ‘없다’ 던 아빠는 친할머니의 한마디에 마음을 바꿨대.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지.
“너 임산부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아? 바로 눈이 짝짝이로 태어난다. 그걸 바라는 거야? 어서 복숭아 구해와” 그 말에 아빠는 곧장 일어나 여기저기 수소문해 복숭아를 사 온 거였어. 다 너를 위한 거였단다.
이른 봄, 복숭아 소동 덕분에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이 너에게 닿았고, 그 덕분에 너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어. 그 마음만으로도 엄마는 참 감사했단다.
냉장고 특유의 냄새에 속이 뒤틀렸지만, 복숭아를 먹기 위해 참았고. 엄마가 직접 차린 음식은 손대지 못한 채 매일 돌솥비빔밥으로 하루를 버텼지.
뜨거운 밥 위에 나물을 잔뜩 올리고, 고추장을 조금 넣어 비비면 그 따끈한 김과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입덧으로 메마른 엄마 마음을 달래주었어. 아마 네가 준 작은 휴식이었을 거야.
여니야, 엄마는 너를 늦은 나이에 품고 나서 깨달았어.
임신이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자, 매일 작은 기적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걸.
그 돌솥비빔밥과 3월의 복숭아는, 엄마에게 너를 만날 힘을 준 따뜻한 봄날의 선물이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