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언장 연재 - 사랑과 기적, 그리고 그리움의 기록
너를 만나기 전, 엄마는 아픔을 견뎌야 했어. 이별하고 난 후 아픈 엄마 몸을 돌봐야 했고, 그때까지도 몸이 아팠거든. 엄마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게 서글프고 외로웠지.
직장보단 엄마 몸을 보살필 여유적인 직장이 필요했어. 체력도 부족했지만, 손 놓고 살 수는 없었지. 힘든 결정이지만, 잘살아보겠다고 덜컥 매장을 오픈했어. 그때 먹으면 바로 화장실을 가야 했을 정도로, 건강한 몸이 아니었거든.
언니들과 떨어졌을 당시, 아픈 엄마를 평생 보는 것보다 떨어져 지내는 게 언니들에게 더 낫다는 오만한 판단을 한 거야. 그렇게 떨어져 지내는 동안 매일 밤 별을 보며 기도했어. 보고 싶어 눈물을 짓다가, 어느 날은 가슴이 무너지는 감정으로 잠들기도 했지.
언니들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자책감과 후회가 매일 밤 되었어. 조금만 참고 살 걸, 조금만 이겨내 볼 걸 하염없는 미련으로 기도를 하고 또 하면서 계절과 계절 사이 오는 그 틈에 언니들이 겪었던 감기나 비염까지 걱정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일을 스스로 자청하며 엄마를 수령으로 밀고 있었지. 지금도 엄마는 언니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
사무치게 그립기도 하지. 언니들 못 본 지도 어느덧 11년이 흘렸네. 하지만 괜찮아. 여니가 옆에 있으니까. 그때 여니가 엄마 곁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 엄마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상상이 안 돼.
매일 밤, 이래서 울고 저래서 울면서 기도했어. 나약한 엄마가 불쌍했는지 약한 엄마 몸에 새 생명이 찾아온 거야. 네가 오기 전 이미 두 별이 떠나 하늘에 있다는 거 알지? 더는 엄마는 새 생명을 품을 수 없구나, 실감할 그때 네가 찾아온 거야.
기적이 아닐 수가 없었어. 엄마 나이도 문제였지만, 온갖 약을 먹으면서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으니까. 시들해지는 꽃처럼 엄마 몸도 시들해질 무렵, 행복의 싹이 틔운 거지.
사실 외할머니는 엄마 몸이 중요하다고 새 생명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셨어. 많은 약을 먹고 있었으니 몸이 아플까 봐 걱정한 마음이라는 걸 엄마도 알아. 하지만 엄마는 여니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어.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주위 반대를 이겨내고 너를 품었어. 매일 밤, 하늘을 보며 했던 기도가 너를 보내준 거라 믿었어. 언니들을 그리워하지 말라는 무언의 암시인지도 몰라.
여니야.
기적은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다. 절망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기적이 손을 내밀어. 그 손을 알아봐야만 잡을 수 있는 거라는 걸 잘 알아. 엄마는 너를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아마 엄마가 지금 살아가는 힘의 원천은 너야.
너를 낳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사 기도를 매일 했어. 건강한 아이를 품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너희들 대신 여니를 끝까지 키워내겠다고, 똑같은 실수는 없을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
살다 보면 너에게 절망적인 순간이 올 거야. 실수와 실패로 쓰라린 가슴을 안고 자신을 탓할 수도 있어. 하지만 엄마가 전하고 싶은 건 네 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거야. 그 힘을 보고 잡아야만 새로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거란다.
슬픔과 절망은 잠시만 하렴. 그래도 된단다.
엄마처럼 자기 자신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지 않아도 충분히 반성했다면, 다시 앞으로 걸어가는 거란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많은 경험을 통해 죽다가도 다시 살아났고 여자 몸으로 이겨내지 못할 일도 이겨내고 지금 삶을 얻었잖아.
인생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오는 행복으로 절망적인 세상을 다시 살아갈 수 있어. 내가 왜 세상에 왔는지 돌아본다면, 절망할 시간에 다시 일어서야 하는 거야. 엄마가 왜 무서운 사후세계에서 돌아왔는지 생각해 보면, 너를 만나야 할 운명이었고, 그전에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법을 배워야 했던 거야.
죽어가던 삶이 밝은 빛을 내며,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엄마는 너무 잘 알기에, 시련과 역경이 와도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있을 거야. 나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무게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안겨 준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이 글로 엄마에게 온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을 얻은 거 같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엄마 안에서 찾고 나면, 어려웠던 일이 자연스레 해결되었거든.
밤마다 언니들이 그리워 흐느꼈던 엄마에게 너를 보내준 것도 충분히 엄마 힘으로 안을 수 있었던 거야. 지금 너와 살아가는 것도 엄마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기에 고통을 안겨줬을 거야.
여니야, 너에게 온 고통을 못 본 체하거나 피하려고 둘러 가거나, 고통스러워 주저앉으려고 할 때 엄마 삶을 들여다보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세상은 고통으로 둘러싸여 있어. 절망으로 살아가면 그 인생은 패배로 얼룩지지만, 절망을 딛고 느리더라도 걸어가면 그 인생은 성공한 거야. 엄마는 여니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 넌 엄마 딸이니깐, 잠시 주저앉아 슬퍼하다가도 일어나 네가 원하는 곳으로 걸어가리라 믿어.
너라서 엄마에게 온 거라고, 생각해 주렴. 작은 빛이 모여 큰 빛을 만드는 여정을 이 엄마는 언제나 응원하고 있단다.
강한 여니는 두 별이 보낸 선물이라는 걸 잊지 말고 두 언니를 대신해 엄마의 아픔을 만져준 영웅이라는 걸 기억해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