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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임신 7개월, 지진 속에서 다짐한 약속

엄마의 유언장 시리즈 1 연재 중

by 치유빛 사빈 작가


여니야,


네가 제법 사람의 모습을 갖춰가던 임신 7개월 무렵이었어.

그날 아빠는 회사 회식이 있어 집에 없었고, 엄마는 혼자 저녁을 준비해 먹으려 했단다.

조용한 집 안, 괜히 허전해 티브이까지 켜둔 채 밥을 먹으려던 순간, 갑자기 아파트가 크게 흔들렸어. 눈앞이 아찔해지고 현기증이 몰려왔지. 그때 엄마가 떠올린 건 단 하나였어.


“이 아이만은 반드시 세상 빛을 보게 하리라.” 였어.


흔들리는 20층 꼭대기 집에서, 배를 감싸 쥔 채 문을 향해 서둘러 나가려 했어. 그러나 계단을 따라 1층까지 내려가려는 생각에 다시 네가 걱정되더라. 무거운 몸으로는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엄마는 마음을 다잡고 침착해지려 했어. 엄마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식탁 밑에 몸을 숨겼어. 흔들림이 멎기를, 너의 작은 심장이 무사히 뛰기를 5분, 10분, 그리고 이어진 여진. 땅은 끝없이 흔들렸고, 엄마의 가슴도 쉼 없이 두근거렸어.


사실 겁이 났어. 옆에 있어야 할 아빠는 전화 한 통이 없었고, 외로움과 두려움이 몰려왔지. 하지만 그 순간에도 엄마는 너만을 생각했어. ‘부디 무사히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 기도만 되뇌었단다.


지진이 잠잠해지고 식탁 아래서 나오는데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눈앞이 아찔했어. 지진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에 꼽을 만큼 큰 규모였다고 해. 그 뒤로 엄마는 트라우마가 생겨, 땅이 흔들리지 않아도 늘 흔들림을 느끼곤 했어. 속이 울렁이고 어지러웠지만, 엄마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단다.


“이건 환상이야. 생각을 멈춰. 너는 지금, 가장 소중한 보석을 품고 있잖아.”라고 엄마를 다독여야 했어.


너는 엄마의 희망이었고, 행복이었어.

너를 품었을 때, 오는 계절마다 색다르게 느꼈어. 봄이면 눈부신 벚꽃 같은 새 하얀 네가 떠올랐고, 여름이면 푸른 잎새처럼 초롱초롱한 눈을 가졌을 거라 믿었어.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처럼 넉넉한 마음을 가진 너를 그렸고, 겨울이면 차가운 세상을 녹이는 따스한 마음을 가졌을 거라 믿으니, 세상이 모두 따스함으로 가득했어.

세상에서 강한 존재였던 너는 약한 엄마를 일으켜준 거야.

네가 웃으면 엄마도 웃고, 네가 행복하면 엄마도 행복해.

잊지 말아야 해. 너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귀한 존재라는 걸.


사랑한다, 여니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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