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과 상처,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법

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내 안의 새로운 뿌리

by 치유빛 사빈 작가

혹시 사랑 앞에서 흔들리고 있니?


사랑만 바라볼 때 세상은 눈부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빛나고,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었을 건만 같은, 엄마도 그랬어. 사랑 하나로 세상이 환하게 빛날 거라 믿고 시작했던 나날들 말이야.


엄마가 여러 번 사랑에 실패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사랑이라는 교과목이 있다면 실패보단 대비를 먼저 배우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 실패와 상처로 얼룩진 사랑을.


사랑은 부모에게서 배운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 엄마가 아빠를 존경하는 모습, 아빠가 엄마를 신뢰하며 사랑하는 모습을 자녀들은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배우고 마음에 담아두지. 그게 참사랑이거든. 맞는 말인 거 같아.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바람결처럼 머물러 주지 않아.


함께한 시간 속에서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는 생각보다 깊어지지. 이해받고 싶을 때 외면당하고, 지켜주리라 약속했던 순간들이 무너질 때 사랑의 형태가 변했어. 모양이 변한 사랑은 기쁘게 해주기도 하고 슬프게 하기도 하는 반복을 되풀이했지.


그렇다고 사랑을 미워할 수는 없어. 사랑은 동시에 엄마를 살아가게 한 힘이었으니까. 상처를 남기면서도 다시 일어설 이유를 주었지. 사랑은 때론 아픔이지만, 또다시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


연애와 결혼은 완벽하지 않다고 하지만, 모두 실패하니 절망스러웠어. 절망 속에서 만난 사람도 결국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거든. 훗날 너를 낳고서야 알았지. 아빠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모르고 살아갈지도 몰라. 사랑해서 아팠고 다시 회복하고 있는 지금을 말이야.


다시 말하면 아빠로 인해 한 뼘 더 성숙한 사랑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어. 처음 결혼할 당시 도피성 결혼인 줄 몰랐어. 자기 자신을 모르니 당연한 결과였지.


장녀라는 무게가 무거웠거든. 앞을 보나 뒤를 보나, 나만 바라보는 눈들이 많았어.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려면 엄마가 그 공간을 떠나야만 했지. 그때는 도피성 연애와 결혼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어.


너희 아빠를 만날 당시 두 언니가 보고 싶었거든. 가까이 살았지만, 만날 수 없었어. 언니들이 있는 곳을 떠나고 싶었던 당시 아빠를 만난 거야. 이것도 어찌 보면 도피성 결혼인지도 몰라.


그 결과는 실패로 마주하게 되었지만, 사랑을 배웠어. 사랑을 배운 것보다, 사람 보는 눈을 키웠는지도 몰라.


때론 남녀 간의 사랑보다 가족의 사랑이 값질 때도 있지만, 믿었던 사랑만큼 상처도 깊게 새겨지고 말더라. 남녀 간의 사랑은 남남이 만나서 이룬 결정체지만, 가족은 혈연으로 이루어졌기에 상처는 아팠어. 쉽게 이해할 거 같으면서도 남보다 더 이해하지 못하니, 아팠어.


우정도 마찬가지야. 사랑보다 더 아팠던 우정은 한순간 깨졌지. 우정과 사랑은 깨지면 다시 이어 붙을 수 없는, 정말 남이 되었어. 더는 우정이라는 이름 앞에 내 모든 걸 내어주지 않게 되었고, 친구를 곁에 두지 않게 되었어.


이래저래 치이던 엄마의 과거는 상처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야. 지금은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이 생겼거든. 상처로 인해 더 값진 선물을 받은 거지.


엄마는 곁에 다가오는 사람에게 호기심보다는 방어기제가 먼저지만, 그렇다고 마냥 외면하며 지낼 수는 없잖아. 너는 훌쩍 커버려 네 세상으로 갈 거니까. 조심스럽게 사랑이든 우정이든, 아이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마음으로 엄마도 아이처럼 걸어보려고 해.


아직 세상은 나쁜 것보다 좋은 그것이 더 많으니까.


실패한 사랑으로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고 신중하게 첫 단추를 끼우고 싶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상처에 또 상처를 덧입혔지. 마음 곳곳에 흉터보단 제각각의 이유로 낸 상처가 많아 시간이 걸렸어. 지금은 상처보단 흉터만 남았지만, 그 흉터 위에 포근한 사랑의 불씨가 살며시 내려앉으면 상처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거야.


이모를 하늘로 보내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상처가 선명하게 보였어. 모양이 제각각인 사랑으로 받았던 상처는, 마음에서 떠나보내야겠다 다짐한 날이기도 해.


오래된 상처에 고름을 짜내고 새살이 촉촉이 차올랐을 때, 엄마는 눈물이 나더라. 마음에 묻어두었던 모든 상처를 이모와 함께 보낸 거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며 살아가지. 삶에서 사랑으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게 해


엄마는 형태가 다른 사랑과 이별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건 상처가 깊다고 해서 삶이 끝나지 않는다는 거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돼 있더라. 다시 사랑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다시 일으킬 수 있게 되지.


엄마는 이젠 젊음의 패기로 덤빌 수 없는 사랑이지만, 넌 수많은 사랑에 부딪히겠지.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서 너의 사랑을 알아갔으면 해.


사랑은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마음을 아프게 하고 삶을 흔들어 놓지. 하지만 그 과정이 있기에 더 단단해지고,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될 거야.


너도 언젠가 사랑할 날이 오면, 상처가 두렵다고 사랑을 피하지는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 중요한 건 상처가 남느냐가 아니라, 그 상처를 품고 다시 일어설 용기가 있느냐 이거든.


엄마는 상처 속에서 다시 자신을 세웠고, 그 끝에는 너라는 귀한 선물을 만났어. 그러니 사랑은 결국 아픔을 넘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야.


사랑은 잘못이 아니라, 아직 덜 익은 우리의 마음일 뿐이란다.


너의 사랑을 언제나 지지하고 있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