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길을 바꾸지만, 용기는 길을 끝까지 걷게 한다
그동안 엄마가 선택한 길을 어떤 마음으로 헤쳐 나갔는지 궁금하니. 인생은 거대한 왕국처럼 보이지만, 내 인생을 들여다보면 매일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거란다.
큰 병을 맞았을 때, 이별을 결심했을 그때, 다시 가정을 꾸리면서 다짐했던 날들, 이 모든 것은 엄마의 선택이자 책임이 따르는 길이었어.
엄마의 첫 결혼과 동시에 큰 병마 앞에 죽음과 삶이 놓였지. 수많은 고통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병을 이겨냈어. 주치의가 시한부 판정을 내렸는데도 말이야. 마치 시간이 멈춘 듯, 6개월 동안 엄마 곁을 스쳐 지나간 병마는 모든 순간을 고요하게 만들었어.
어른들이 그랬어. 평생 아플 병이 이번에 다 아픈 거라고. 엄마는 그 말을 믿었지만, 10년 만에 또다시 큰 병마가 찾아온 거야. 이번에도 예사롭지 않은 병은 엄마를 삶과 죽음 갈림길에 놓이게 했어.
인생은 항상 두 갈래 길을 내놓지. 선택지가 한 가지라면 고민하지 않을 테지만, 두 가지 길 위에 엄마는 결정을 내려야 했어. 선택은 앞으로 살아갈 힘을 비축하는 일이었지. 설사 잘못된 길일지라도, 사람은 완벽할 수 없어. 인생 자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아니까, 엄마는 그 길을 후회하지 않았고, 꿋꿋하게 걸어갔지.
결혼하고 마주친 큰 병 앞에서, 약하고 여리던 엄마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던 것 같아. 살고 싶었지만 누군가가 엄마를 데려가려는 그 길 위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 애썼어.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우연처럼 찾아온 선택의 순간이 있었고,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랐어. 책임이 가벼웠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았어. 혹독하게 생과 사의 싸움에서 살아낸 후, 엄마는 다시 걸어가야 했어.
모든 병마가 지나가고 두 번째 결혼은 순식간에 일어났어. 아마 엄마의 마음이 나약했을 거야. 언니들이 보고 싶어 몸부림치던 시기에 아빠를 만났고 모두가 아니라고 외치더라.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는 상황 속에서, 엄마에게 온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엄마가 거부한다고 해서 눈앞의 삶이 사라지지 않아. 일어날 일을 피한다고 해서 내 앞에 놓은 산은 낮아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아. 피해 가면 더 큰 인생의 산이 기다릴 뿐. 엄마는 피하지 않고 거대한 산을 오르면서 넘어지고, 찢긴 살 위에 새살이 돋듯 삶을 다시 일으켰어. 상처와 회복은 수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어.
반복된 인생에서 엄마는 수많은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따라 책임을 졌지. 주위에 도와줄 사람도 없었지만, 도움을 원하지 않았어. 그것도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었거든.
결과가 해피엔딩이었다면 모두가 박수를 보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 엄마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직 엄마 자신과 너를 위해 심장이 뛰는 대로, 숨 쉬는 대로 결정했어. 이번 선택이 옳은 길이길 바라며, 마음이 부서질 듯 아파도 엄마는 이별을 선택해야만 했어.
이별 후 5년이 지난 지금, 내가 선택한 인생에 대해 더 집중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어. 선택에는 두려움이 함께 따라오지만, 두려움 때문에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어. 엄마가 살아야 너도 살 수 있으니 말이야. 순간의 용기는 그때만 존재하는지, 돌아보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신기할 정도야.
누가 그러더라. 병마 앞에서 무슨 생각으로 이겨냈냐고. 이건 병뿐만 아니라 인생의 고비 앞에서 가족을 먼저 떠올리며 이겨냈어. 모든 선택에서 어떤 길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지.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했잖아. 선택한 일은 엄마 힘으로 버텨낼 수 있었어. 삶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의 비밀을 알았거든.
엄마도 사람이기에 실패도 했어. 하지만 실패 속에서 배움을 얻고, 더 단단해졌지. 두 번째 결혼이 없었다면 귀한 너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며칠 전 넌 말했지. “엄마가 아빠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거잖아” 그 말에 가슴이 요동쳤어. '지금 네가 엄마 곁에 없다면'이란, 그 가정 자체를 상상하지 않았거든.
아빠를 만나 나를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맙다는 그 말에 엄마는 뭉클했어. 너를 만나고 엄마는 더 단단한 삶 위에 나다운 인생을 그리고 있으니 성공한 셈이야.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후회도 있어. 사업에 실패와 수많은 선택들. 하지만 실패 속에 깨달음으로 현재를 살아갈 자양분 같은 뿌리가 되었어.
길이 없는 산길 위에서도, 발걸음마다 흔적을 남기며 스스로 길을 내는 그것이 바로 인생이자 삶이야. 그 길 끝에 절벽일지, 들판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길을 걸어야 해.
돌부리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보면 상처는 아물고, 아문 그곳이 내가 만든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되는 거야.
엄마가 걸어온 발자취를 들어다 보며 너도 선택의 순간에 용기와 사랑을 담아 묵묵히 걸어가길 바라. 삶에서 중요한 건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묵묵히 견디는 거야.
어떤 선택이든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갖는다면, 잘못된 길이라고 알아차렸을 때, 다른 길을 선택할 용기만 있다면, 원하는 인생이 펼쳐져.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자신을 실망시킬 거야.
여니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 속에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겠지. 고민은 짧게, 신중하게.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걸어가야 해. 누군가 대신 책임져주지 않아. 오직 너만이 너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엄마가 선택한 모든 것들이, 너에게 용기의 불씨가 되어 먼 훗날 찬란히 타오르는 불꽃이 되기를 기도할게.
네가 무슨 선택을 하던 엄마는 늘 너의 곁에서 지지와 응원을 보태며 용기 한 스푼 더 얹을 거야.
너의 영원한 팬,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