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순간이 쌓여 기적이 된다
엄마가 눈만 뜨면 늘 먼저 하는 말이 있어.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로 시작하는 것. 그것은 나 자신에게 건네는 주문이자 순결 같은 약속이란다.
간밤에 별일 없이 웃으며 아침을 맞이한 너와 나.
그 평범한 모습이 내겐 기적이거든. 학교에서 무사히 돌아온 너를 바라보며 ‘다행이다.’ 하고 안도하지. 그 순간 엄마 마음은 또 감사로 가득 차.
가을바람이 불면 놀이터로 달려가는 너.
주방 창문을 열고 저녁을 짓다 멀리서 들려오는 너의 맑은 웃음소리에 따듯함이 번져. 엄마 가슴에 닿아 포근함과 뭉클함이 동시에 스며들지. 너의 해맑은 웃음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식탁에 오르고, 국물 한 숟가락을 떠먹으며 맛있다고 말하는 너. 그 순간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감사라는 온기가 우리를 감싸는 시간이란다. 따듯한 국물 속에 녹아든 평온이 식탁 위에 내려앉아 더 깊은 행복을 전해 줘.
네 웃음은 오늘을 살아낼 힘이 되어 준단다. 그래서 엄마 마음에는 잔잔한 파동이 일고, 내일이 기다려지게 해.
네가 없는 오전 시간, 엄마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노트와 팬을 꺼내. 책을 곁에 두고 글을 쓴단다.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그 평범한 일상조차 감사해. 아직 엄마에게 힘이 남아 있다는 증거니까.
어느 날은 물감과 붓, 이젤 위 흩어진 캔버스를 마주하며 어린 시절 꿈꾸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해. 암흑 같던 삶에 핑크빛 물감이 번지는 순간, 마치 눈부신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아려와. 작은 풍경들이 모여 큰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엄마는 잊지 않으려 해.
꽃 시장에 들어서면 온 세상이 색으로 물드는 듯해 뜨거운 여름만 빼고 늘 찾게 된단다.
꽃잎에서 은은히 번지는 향기는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게 해. 붉게 타오르는 장미, 햇살을 머금은 리시안셔스, 향기를 품은 국화, 소곤소곤 속삭이는 듯한 하얀 안개꽃의 향기에 엄마의 발걸음을 멈추게 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은 고요해지고, 엄마 가슴 안에서 작은 파동이 일렁인단다. 내가 살아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시간이야.
꽃다발을 품에 안는 순간에는,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눈부신 축복처럼 느껴져. 꽃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아이 발걸음처럼 가벼워. 별거 아닌 듯 보이는 소소한 일상이 주는 안락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야.
저녁 햇살과 바람이 창가에 스며들고 바람이 커튼 끝자락을 흔들 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어 환한 웃음이 얼굴 가득 채워져.
엄마는 아파본 사람이고, 지금도 아픈 몸으로 살아가지만, 살아서 숨 쉬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맙고 벅차. 아픈 이에게는 먹고, 자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소중한 소망이거든.
엄마는 가끔 미래를 상상해 보곤 해. 넓은 들판 한가운데 지어진 하얀 집 한 채.
햇살이 창으로 들어오고, 창밖에는 바람에 일렁이는 풀들이 파도처럼 넘실대지. 집 안은 온기가 가득 차 있고, 웃음소리와 따스한 밥 냄새가 베이는 풍경. 그 집 창가에 앉아 너와 함께 차를 마시는 장면을 떠올리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어. 그런 상상조차 용기 나게 하고, 엄마의 삶을 더 단단하게 붙들어 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순간, 결코 우연이 아니야. 살아 있음이 곧 기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이 삶을 더 빛나게 해.
여니야,
감사함을 잊는 날에는 불행이 조용히 스며든단다. 삶은 우리가 값어치를 지불하며 걸어가는 여정이야. 그 여정 위에서 감사는 등 뒤의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이라는 걸 잊으면 안 돼.
감사는 불행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먼저 살아본 엄마가 증명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