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묻은 눈물, 천천히 흘려보내는 시간
삶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 순간들이 있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해도 마음 깊이 쌓인 슬픔을 끝내 삼켜 버릴 수는 없을 때가 있는데, 그걸 이야기해 볼까 해.
엄마도 그랬어.
언니들과 이별해야 했을 때, 가슴속에만 슬픔을 묻어야 했고, 네가 태어나기 전 두 아이가 별이 되어 떠났을 때도 다 흘려보내지 못한 채 살아내야 했지. 그러나 이모가 더는 우리 곁에 머물 수 없었던 날, 장례식장 입구에서 영정 사진을 보며 끝내 주저앉아 목놓아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어. 슬픔의 크기가 컸거든.
사람은 슬픔을 외면하면 할수록 더 고단해진단다. 엄마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고 슬픔은 그림자처럼 곁을 떠나지 않았어. 결국 혼자가 되었을 때, 터져 나온 울음은 오래도록 쌓아 둔 고통이 흘러나오는 소리였단다.
슬픔을 억지로 삼키지 않고, 그대로 마주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거였어. 외면이나 무시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면서 스스로 다독여야 해. ‘괜찮아’라고 말할 때,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더라. 그리워하며 눈물을 쏟아내면, 그 순간만큼은 무게가 덜어졌어.
이모가 떠난 뒤, 엄마는 그림으로 슬픔을 흘려보냈어. 다채로운 물감들이 캔버스에 물들일 때마다 이모가 미소 짓는 것만 같았고 이제는 아프지 않으니 걱정 말라는 위로의 메시지 같았어. 마음에 난 빈자리를 색으로 채우며 하루, 한 달, 그리고 해가 바뀌고 두 해가 지나니 슬픔 대신 새로운 기쁨이 앉았어. 이젠 이모를 떠올려도 아프지 않아. 그저 그리움만 남았지. 조금 더 우리들 곁에 있었으면,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그리움이었을 거야.
때론 글로도 흘려보내기도 했어. 방 한쪽에 마련한 책상에 노트와 펜을 들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꾹꾹 눌러 감정을 풀어내거나, 어떨 땐 하늘이 이쁜 날 이모가 엄마를 보고 있을 것만 같아 이모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어.
그러곤 ‘오늘은 슬프더라. 하지만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해, ' ‘충분히 슬퍼하고 있어.’라고 나에게 위로하면 그리움도 보고픔도 조금은 사뿐히 가라앉아.
엄마는 두 번의 큰 이별과 수많은 시련 속에서 밤마다 글을 쓰며 견뎌 냈어. 글이 엄마 숨통이었고, 흘려보내야 살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소통의 길이었어.
여니야, 어느 날, 네가 말했지.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억울해서 노트에 글을 썼다고. 감정을 토해낸 종이를 찢어 버렸다고. 여니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엄마는 정말 기뻤어. 엄마를 따라한 네가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어.
여니가 크고 나면 엄마가 알려준 방법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법이든 슬픔을 흘려보낼 줄 아는 건 참 소중한 힘이란다.
혼자 여행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여행도 괜찮고, 목청껏 울어도 좋아. 혹은 새로운 취미를 찾아 슬픔을 흘려보내면 돼. 탓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고난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마음을 살리는 길이야.
그리고 알아두어야 해. 자연은 언제나 좋은 위로가 되어 준다는 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듣고, 흙냄새를 맡으며 걸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슬픔은 바람을 타고 조금씩 흩어져.
계절을 느낀다면, 지금 네가 숨 쉬고 있다는 증거야. 그리고 차분해진 네 감정을 들여다보는 용기는 한 뼘 더 성장하고 있음을 알리는 거란다.
때론 엄마는 카페 한 모퉁이에 앉아 창밖을 보며 책을 읽고 사색에 잠기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슬픔을 품고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위로가 되기도 하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감정을 종이 위에 쓰다 보면 이 슬픔도 나름 행복을 안겨준다는 걸 알게 돼.
엄마는 이런 순간, 마음속 울렁임이 잦아들어. 슬픔은 없어지는 게 아니야. 다만, 흘러가면서 조금씩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되는 거지.
딸아, 눈물을 참지 말고, 때론 눈물을 숨기지 않고 흘러 보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흘려보낼 때, 웃음이 다시 돌아올 자리로 오는 거야.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어도 좋아. 엄마에게 다가온다면 너를 따스하게 품어줄 거야. 서로의 온기로 슬픔과 눈물을 나누다 보면 다시 웃을 수 있어.
슬픔은 삼키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거야. 오늘은 울어도 괜찮아. 내일은 또 새로운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