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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속에서 배운 삶의 힘

텅 빈 손이 가르쳐 준 풍요의 의미

by 치유빛 사빈 작가

오랜 고민 끝에 ‘가난’이라는 이야기 할까 싶어. 사람들이 수치로 오해하는 그 단어 말이야.


엄마가 살아보니 어느 날은 풍요로움에 기뻐하다가도, 어느 순간 빈곤이 찾아와 마음이 허우적거리는 날이 있더라. 그건 누구에게나 반복되는 일이지.


하지만 오래 곱씹어 보니, 진짜 가난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의 빈곤이었어.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족이나 친구와 연결되지 못할 때 사람들은 ‘가난하다’ 느끼는 거야.


결국 가난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텅 빈 마음의 공간이었어.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자연이 건네주는 빛을 알아보는 순간, 빈 공간은 서서히 채워졌어. 풍요는 돈을 쫓아가서가 아니라, 나를 바로 세울 때 따라온단다.


엄마는 친구나 우정이 없어도 사랑이 허전하지 않아. 왜냐하면 엄마 자신이 친구이니깐. 사람들은 사랑을 받아야만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할 때 비로소 충만해지더라. 돈도 결국 충만함을 따라와.


그러니 여니야, 빈곤하다 느낄 때, 나부터 사랑해 봐. 충만감이 주는 감동은 가슴이 벅찰 거야.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은 오직 나에게 있단다.


대가 없이 맹목적인 사랑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일 거야.


돈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따라 다가오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해. 엄마는 자기 계발서를 읽다가 배웠단다. 때론 돈을 좇으면 도망가고, 때론 아무 대가 없이 베푼 것이, 돈이 되어 찾아오더라.


돈을 좇지 않고, 돈이 나를 쫓아오게 해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거야. 학창 시절 할머니가 손에 쥐여 준 100원으로 문방구에서 다양한 불량식품을 즐기던 소소하고 행복했던 값어치를 엄마는 지금도 기억해.


결혼 후에도, 혼자가 된 지금도 돈은 엄마를 시험했지만, 필요한 순간마다 돌아와 주었단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았어. 적은 돈일지라도 모녀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부분이었으니까.


홀로서기하던 시절, 지원을 받지 못했던 날도 엄마는 포기 대신 ‘다시 기회가 있을 거야’라는 희망을 마음에 품었단다.


좁은 집으로 이사한 날, 너는 불평했지. 짐이 많아서 좁아 보이는 거지 절대 작은 집이 아니라고 말했던 엄마를 기억할 거야.


돈이 많아도 마음이 지옥이면 그건 가난이고, 가진 게 적어도 마음이 편안하면 그건 진짜 부자인 거야.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때의 행복 가득한 미소. 더러운 옷을 깨끗이 세탁해 입는 기쁨은 마치 새 옷을 입는 거 같은 느낌을, 지저분한 운동화를 깨끗하게 빨아 신는 것만으로 가벼운 발걸음이 되어 내가 어디를 가던, 자신감이 묻어나는 것처럼, 이건 마음이 부자인 거야. 가짓수가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아.


명품이 행복을 안겨줄 거라는 생각으로 엄마도 명품을 가져봤지만, 막상 행복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았어. 그냥 자기만족에서 그쳤지.


엄마에게 명품은 여니가 엄마라고 생각하고 그려 준 에코백이었단다. 세상에 하나뿐인 그 가방처럼, 마음이 가득 차 있을 때 삶은 더 빛났어.


엄마는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 오히려 가난은 엄마를 단단하게 만들고, 지금의 삶을 풍요롭게 채워 주고 있거든. 엄마는 나, 지신이 명품이라고 생각해.


온전한 가정이 아니라서 기죽을 필요도 없어. 다양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공동체에서 정답은 없거든.


가난이 네 자존심을 갉아먹는 기생충이 아니라 너의 마음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영양제야. 가난이 있기에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삶에서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거란다.


지금은 지원으로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엄마도 자립하면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풍성함을 안겨줄 거라 믿어.


삶이란, 고통 속에서 부자 싹을 틔우는 거야. 이건 아마도 죽을 때까지 긴 여정이 될 것이고, 모험이 될 거야. 모험은 결코, 헛되지 않게 내 삶을 윤택하게 할 거야.


사랑하는 여니야.

너의 마음에 피어난 부자의 싹을 마음껏 틔워보렴. 그 싹이 자라서 나무가 될 것이고, 너를 지켜줄 큰 그늘이 되어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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