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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과 나, 그리고 조용한 위로

엄마 인생 가을 편 11월호 - 상처 속에서 나를 다독이는 시간

by 치유빛 사빈 작가

배신이라는 감정이 찾아올 때, 나를 들여다볼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내가 쏟아낸 시간 속에 녹아내린 감정과 믿음, 신뢰의 견고한 성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 앞은 보이지 않고 숨이 쉬어지지 않게 된다.


억지로라도 이럴 땐 잠시 나에게 쉼을 주어야 한다. 이런 나를 들여다보고 다독여 줄 시간을 가져야만 숨을 쉴 수 있다. 흔히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그러나 이때 만난 사람은 온통 상처투성인 체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이다.


상처로 얼룩진 나를 온전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자책과 채찍질이 아닌 아파하는 나를 온전히 어루만져야 할 시간이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잠시 사람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시간은 귀하다.


배신은 마음 깊은 곳까지 고독하게 만드는 가장 큰 상처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배신에 잡히지 않고, 나를 다 잡아 나를 아는 그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가야 한다. 나는 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어린 딸아이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오래전 나는 약의 힘을 빌리더라도, 일어서야 할 이유를 찾았다. 배신으로 가슴 가득 채워진 분노와 원망을 참지 못해 나는 약의 힘을 빌려야 했다.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뛰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나약한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서는 안 될 거 같아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혼자 일어설 수 있고, 혼자 지낼 수만 있다면, 크나큰 파도가 덮쳐도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탓으로 돌린다면 큰 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는다.


용서할 용기가 생길 때 하면 된다. 용서할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이어야 한다. 그 후, 나를 배신한 그에게 원망보단 ‘그럴 수 있겠지.’라고 이해하면 그건 큰 용서를 한 거다.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놓인 상황이 배신이라는 선택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배신한 그는 두 갈래 길 앞에서 유혹을 놓을 수 없을 뿐이다.


상처를 마주하고 놓아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길 때, 용서하고 모든 걸 털고 일어나면 된다. 11년 전 내가 배신했고, 5년 전 상대가 나를 배신했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배신을 당하고 보니 11년 전 내가 배신한 상대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용서를 구했다. 상대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나를 다독이지 않고 사람을 만난다면, 나와 같은 상처를 끌어안고 자신을 바라보지 않은 사람이 곁에 다가온다.


지금 나는, 나를 온전히 바라보며 느낀다. 아파했을 그때 나에게 손을 내민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다른 사람의 온기로 덮으려고 사람을 만난다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숨을 쉬고 있는 나를 느끼고, 창가로 스며드는 그날의 햇살을 마주하는 여유가 생긴다면, 충분히 당신은 잘 살아 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배신을 하고 배신을 당한 날, 함께 울고 웃으며 비로소, 품어주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 마음 한 자락을 내어줄 여유가 이제야 생긴 것이다. 상대를 귀하게 여긴 시간만큼 나도 그 시간만큼 시간을 써야만 과거로부터 홀가분해진다. 나처럼.


열정을 쏟아낸 시간만큼 쉼도 가져야 한다고 누군가가 말했을 때, 알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충전의 시간이라고.


술에 의지하는 건, 나를 회피하려는지도 모른다. 고통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잠시의 즐거움을 선택하는 행동이다. 우울한 날엔 캐모마일 차로 나를 달래며 상처와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나에게 닥친 고난은 더 나은 삶을 선물 받기 위해 잠시 시련이라는 여행이 시작된 거다.


그러니 마음껏 힘겨워하고 아파했으면 한다. 강물이 자연스레 흐르듯 마음 물이 흐르도록 그저 지켜봐야 한다.


애쓰고 버텨줘서 고마웠다고, 살포시 손을 내밀어 마주 잡았을 때,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된다.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진 사람이라면, 이제 내 차례다. 누군가가 건넨 위로에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위로를 받을 시간이라고, 고통을 줬는지도 모른다.


요즘 유난히 마음이 힘들어 보였던 한 사람이, 나를 글 앞으로 데려왔다. 그에게 이 글이 닿지 않아도, 이 글이 그를 향한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그에게 글이 닿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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