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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빨래방에서 책 읽기

퇴사 1개월 차 시간 보내기 노하우

아침에 일어나니 초겨울의 날씨를 녹일 만큼의 따사로운 햇살이 창가 커튼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반가운 햇살에 기분 좋은 기지개를 늘어지게 켰다. <백슈야! 일어나!> 알람과 함께 백수의 하루도 시작됐다.

그렇다! 난, 퇴사 1개월 차 백수다.


하루는 공평하다.

직장인에게도 백수에게도 공평하게 24시간의 하루가 주어지니 말이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주어진 하루를 시작해본다.


오늘은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낼까?

<그래, 날도 좋은데 밀린 이불 빨래를 해보자!>

물론, 물을 받아 발로 밟으며 하빨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거운 이불 빨래는 셀프 빨래방을 이용한다.


퇴사 후 내게 주어진 특권이라면, 평일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말의 셀프 빨래방은 이용자가 많아 불편하다. 따라서, 나의 특권을 십분 활용해 평일 오전을 셀프 빨래방에서 보내기로 했다.


셀프 빨래방의 세탁기는 대형 18kg이 가장 작다. 그러니 한번 갈 때 이불을 포함해 빨래가 가능한 것은 모두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침대 매트 커버를 포함해 이불 커버, 베개 커버, 쿠션 커버, 소파 커버, 무릎 담요까지! 담을 수 있는 모든 빨래 거리를 챙겨서 빨래방으로 향했다.

(우리  유일한 인형인 도깨비 인형을 깜박한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어떻게 날 잊을 수 있는거냐구! (꼬질꼬질)




가는 길에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참으로 빨래하기 좋은 날이구나~!' 속으로 중얼거렸다.(긍정적 자기 최면 중이다)



역시 예상대로 월요일 오전의 셀프 빨래방은 텅 비어 있었다. 휘파람을 불며, 가져온 빨래를 세탁기에 넣었다. 결제를 하고 시작 버튼을 누르니 귀잉~ 소리와 함께 세탁이 시작됐다.


세탁하는데 30분, 건조기로 빨래를 이동시켜 건조하는 데 35분. 그렇게 빨래가 끝나려면 1시간 넘짓의 시간이 걸린다. 바로 그 시간이 월요일 오전 백수에게 부여된 황금 같은 시간이다!


아무도 없는 셀프 빨래방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읽는 시간.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는 백색소음으로 오히려 책 읽는 집중력을 배가시킨다.


최근에 글쓰기에 도움을 받고자 구입한 <강원국의 글쓰기>를 펼쳤다. 새 책이 주는 설렘과 읽어야 한다는 옅은 무거움이 세탁기 속의 빨래처럼 뒤엉키는 것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귀잉~ 귀이잉~

스락~ 스라락~

가끔 나도 모르게 책 속의 문장을 중얼거린다. 그러다 맘에 드는 문장이 나오면 샤프로 스윽 그으며 책을 읽어 나간다. 지복의 순간이다. 백수라는 현실도 잊힐 만큼 행복한.


순간, 생각했다.

이 순간을 글로 기록해야겠다고.

그렇게 이 글이 쓰이고 있다.




책 속의 인상 깊었던 문장 몇 개를 옮겨본다.

글을 쓰면 써진다고 믿고 써야 한다.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자신을 토닥여줘야 한다.
'그럴 수 있다. 누구나 그런다.'
그러다가 한 줄 내디디면,
'고생했어. 대단해. 지금처럼만 해.'
수시로 칭찬하고 고무하자.
글 잘 쓰는 비결을 말하라면 학습, 연습, 습관의 3습을 꼽는다. 단순 무식하게 반복하고 지속해서 일상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밑 빠진 독에서도 콩나물은 자란다.
글이 안 써지면 잘 써지는 곳으로 이동해서 글을 쓰면 된다.

작가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쉬운 문장으로 알기 쉽게 책을 썼다. 빨래가 다돼갈수록 더욱 그의 글쓰기에 몰입했다.


어느덧 건조까지 끝난 보송보송한 빨래를 차곡차곡 개어 담아왔던 가방에 정리해서 넣었다. 그렇게 월요일 오전 백수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하늘도 여전히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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