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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생 중에 기억에 남는 찰나의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마치 영상처럼 뇌리에 새겨진다...


어느 날  동료가 눈을 빛내며 말을 띄웠다.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해가 길어져 밝아진 퇴근길에 그 앞을 지나는데 바람이 벚꽃나무들을 흔들고 간게지.

옅은 분홍빛의 벚꽃잎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꽃비를 뿌렸다고. 그 순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고...


동료는 얘기하는 그 순간에도 마치 벚꽃잎들이 흩날리는 가운데 선 소녀처럼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띄웠다. 흩날리는 벚꽃잎들 사이로 바람이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어냈고, 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회오리치던 모습을 동료는 흥분하며 묘사했다.


나도 모르게 그 순간에 감정이입이 되어 상상하고 있었다. 그때 동료가 느꼈을 순간의 충만함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그 많은 시간들 중에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되는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은 뇌리에 새겨져 언제든 재생이 가능하다.


어둡고 추운 어느 겨울밤이다. 인적이 드물었고 눈이 펑펑 내렸다. 어둠과 정적을 밝히는 가로등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눈방울들이 가로등 불빛에 뽀얀 자태를 뽐내며 쏟아진다. 느리게 자꾸만 느린 속도로 쏟아진다. 10년도 더 된 기억이지만 지금도 뇌리에서 재생이 가능하다.


인천에 영종도라는 육지와 연결된 섬이 있다. 걸어서 다 돌아도 3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그런 섬이었다. 머물던 곳에서 공원을 통해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쉬는 날엔 어김없이 공원을 거쳐 바다로 향했다. 잠자리가 낮게 날아다니던 한적한 공원길을 걸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상쾌하다. 햇살이 따사롭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행복감가슴속에서부터 차 올랐다. 이렇게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에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도 그 순간을 재생한다. 지복의 순간이다.


그가 운동화를 사주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그는 직접 운동화를 신겨 주었다. 그리곤 신발끈을 조용히 매어 주었다. 그런 그를 지그시 바라본다.  투박하지만 꼼꼼하고 야무진 그의 손 매무새가 사랑스럽다. 아픈 순간들은 어느덧 잊히고 이 영상만 뇌리에 남았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검정 비닐봉지가 바람을 타고 펄럭이며 날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는 장면이 떠올랐다. 단순히 검정 비닐봉지가 흩날리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영상에 찍히는 순간, 그것은 존재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인생의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선물 같은 아름다운 순간들이 뇌리에 새겨진다. 퍽퍽한 삶 속에 이러한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처럼 아름다웠던 장면들이 언젠가 이 세상 마감하는 날 나의 마지막 기억이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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