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알람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브런치의 글쓰기를 클릭합니다.
하얀 화면에 껌벅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봅니다.
하얀 화면에 껌벅이는 커서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뭘 하는 거지?>
<나는 이 시간에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속에서 답답함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무언가를 갈망합니다.
갈망하는 무언가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머리도 나쁘고 천부적인 어떤 글쓰기 능력이나 삶을 바라보는 깊은 이해력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기를 갈망합니다.
밀려오는 답답함에 목구멍이 조여옵니다.
하얀 화면에 껌벅이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봅니다.
두 손은 키보드 위에 시간이 멈춘 듯 멈춰 있습니다.
<무엇을 쓰고 싶은가?>
<네 안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무엇이??...>
<그것은......>
<무시무시한 권태가 있습니다.>
<이것은 코로나19도 울고 갈 정도의 전염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를 숙주로 삼아 혈관을 따라 몸 곳곳을 휘젓고 다닙니다>
<마침내는 머릿속까지 흘러 들어가 쭈글한 뇌의 주름 속까지 파고들어 저의 모든 생각까지도 잠식해 버립니다>
<일도 사랑도 모든 인간관계도 권태로움에 전염되어 버렸습니다>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그마저도 권태의 늪에서 허우적댈 뿐입니다>
<실체가 없는 갈망, 아니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무력함>
<희망을 노래하고 싶지만, 막연하게 알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그렇게 찾아 헤매도 모든 것은 단순한 우연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질 뿐, 아무것도 없다고>
<그래서 노래할 희망이 없다고>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삶의 의미를 찾겠노라고, 무언가 있을 거라며...
때로는 무언가를 찾은 듯 번개를 맞은 듯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권태는 찾아들었고, 너의 깨달음은 착각이고 네가 만들어낸 착시현상이라며 조롱하는 권태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건지...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그들처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나는 그렇게 삶의 정수를, 삶의 의미를 반드시 찾아 너희들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이름 모를 자만심이 깔려있음을 말입니다>
<권태의 조롱하는 웃음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합니다>
<삶의 의미는커녕 너는 권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호흡기로도 공기로 혈액으로도 감염되지 않습니다. 그냥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치 숙명처럼, 떼어낼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요>
<내 안에 그득한 권태는 글을 쓰고 싶게 만들지만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지금도 권태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냥 쓰지 말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애를 쓰는 거야?
김신지 작가님이 [평일도 인생이니까]란 에세이에서 신세 한탄이나 하며 매일 글쓰기로부터 도망치던 작가님에게 룸메이트가 책상 앞에 이런 쪽지를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작가란 오늘 아침 글을 쓴 사람이다.”라는.
김신지 작가님은 이 메모를 보고
최고의 작가가 되기는 어렵지만,
매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세계에 속한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지치게 하고 권태에 빠지게 하는 것은
어쩌면 무언가 되려는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요.
최고의 작가? 글을 잘 쓰는 사람?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인정을 얻는 글을 쓰는 사람?
막상 생각하고 보니 최고의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방인들, 주변인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요.
그들의 감정을 어루만져주고 소통의 통로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방인이고 주변인이기 때문이죠.
작가보다는 글을 쓰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겠다고 결심해봅니다.
모르겠습니다. 또다시 숙명 같은 권태의 카오스 속으로 빨려 들어가 멍하니 키보드 앞에서 석상이 되어 굳어갈지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인걸요.
권태와 한바탕 사투를 벌인 끝에야 오늘의 글도 이렇게나마 마무리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