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임 유어 파더

번잡한 시가지 사이로 뻗은 사방의 아스팔트 위로 한낮의 폭염이 뜨겁게 피어오른다.

앞에 앉아있던 노신사의 커피잔 위로도 옅은 김이 피어오른다.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주름진 손 위에 얹힌 고급형 시계가 창가로 스며든 빛에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이제야 네 앞에 나타나서."

그는 애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많이 힘들었지. 이젠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 이 아비가 너 힘들지 않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순간, 억눌려있던 나의 서러움은 눈물로 터져 나왔다.


꺼이꺼이, 울다가 눈을 떴는데…

반지하 창문으로 기어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기어이 아침임을 알리고 있었다.


(희미하게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얼마 전에 [작은 아씨들]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재벌은 비현실적이기에 우리의 흥미를 끌기 쉬운 드라마 소재다. 물론 이 드라마에도 재벌은 등장한다. 단, 스토리의 중심은 정반대 편에 서있는 지극히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을 징그러울 정도로 처절하게 묘사한다.

극 중에 누군가 물었다.

정말 돈이 많으면 무얼 하고 싶냐고.

샷시가 잘되어 있는 아파트에서 안전하게 동생들과 살고 싶다는 주인공의 말에 상대방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아..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돈은 우리에게 이것을 허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아.. 갖고 싶다. 이 권리.



처음에 쓰인 글은

[열 줄 소설]에 응모했다가 보기 좋게 낙선한 글이다.

어딘가에 숨어있던 부자 아빠가

[I’m your father]하며 두둔하고 나타나

인생 역전하는 상상.

누구나 반은 우스개로, 반은 진심을 가득 담아

이 즐거운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수면 밑과 위가 모두 바삐 움직여야만 생존이 가능한 이 비극적 현실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수면 위에 떠있을 수 있는 즐거운 상상.


꺼이꺼이, 두려움을 한가득 안고

가느다란 목숨 동아줄을 부여잡기 위해

현관문을 매일 나서는 나에겐 즐거운 상상.

이전 03화 글을 쓰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